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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Sep 21. 2023

주부 9단님들은 제발 클릭하지 마세요

저 지금 많이 뿌듯하거든요



~돼~~~~~




나보다 일찍 퇴근하는 남편은 저녁담당을 맡고 있다. 그런데 늦는단다. 받아선 안 될 통보가 전해진 것처럼 머릿속은 이내 뭐 먹지? 가 맴돈다. 희한한 게 남편 없이는 배달을 시킨 적이 없다. 아이들은 이때다 싶어 라면을 찾을 때가 있지만 아빠 없을 때 라면만 먹는다는 낙인은 찍히기 싫었다.




신혼 때 빨래를 널면서 온갖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속옷 양말 와이셔츠인데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입은 빨래를 널면서 그런 감정이 솟구쳤다니 말 다했다.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그땐 그랬다. 당연스레 숨 쉬듯 엄마가 해주었던 일들을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는 자체가 버거웠다. 밥은 말해 무엇하랴.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딱 한번 이유식을 사 먹여본 것 외엔 나도 믿기지 않지만 둘째까지 손수 이유식을 다 해 먹였다. 그때 모성애를 다 쏟아부었나 보다.



결혼 15년에 7년 차 워킹맘이다. 이제 적응도 할 법한데 아직도 집밥이 낯설다. 이러다 평생 낯가릴 판이다.




저녁은 순두부 계란찜을 만들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오늘내일하는 순두부 2팩을 얼른 처리해야 다. 냉장고에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순두부는 사실 유통기한이 조금 지났다. 지금 멀쩡하니 상하진 않았나 보다.



초간단 요리라지만 요(리) 똥(손)에게 쉬운 건 없다. 세상은 참 친절하다. 클릭만 몇 번 하면 달걀개수와 전자레인지 몇 분 돌려야 되는지도 다 가르쳐준다. 간단한 메뉴라고 대충 가르쳐주지 않는 활동파 블로거들이 계신다. 그대로 따라 하고 싶지만 재료가 다 갖춰진 것도 아니고 똑같은 메뉴가 뚝딱 나오기까지는 어디까지나 나의 손에 달렸다. 



그래! 감칠맛엔 육수지! 나 요리하는 엄마라고! 냉동실에 화석처럼 존재하는 육수팩도 있다. 달걀을 깨고 양파를 다지는데 둘째가 옆에서 쫑알쫑알 말을 건다. 특히나 요리(?)할 때 말까지 건다면 내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떠나 버릴지 모른다. 둘째야, 엄마 지금 심각하거든. 잠시만 기다려주라.




육수 내고 달걀을 풀며 순두부를 잘라 넣는다. 나름 건강 생각하며 잘게 다져진 양파와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먹일 생각에 내 마음도 같이 말캉해진다. 당근과 파가 없어 고운 색을 못 낸 것이 이내 마음에 걸린다. 이렇게 집밥에 진심이었던가. 



뜨헉...

공을 들인 거에 비해 칫했


망한거 아니예요^^;


전자레인지 돌리다가 중간에 저어줌을 잊지 않았기에 비주얼까지 다 잡을 없었다. 빨리 해먹일 어미마음에 돌리기 전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나름 봐줄 만했는데. 맛은 장담 못해도 영 놓치지 않겠다 했다.



모처럼 엄마의 저녁준비지만 기대 1도 없는 아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두 딸의 그릇에 순두부달걀덮밥이라는 명칭을 새겨 넣고 밥 위에 살포시 올려둔 후 간이 약할 것 같아 간장도 살짝 물들여준다. 일본식 덮밥에 새우튀김이 올라간다면 순두부달걀덮밥엔 오이기둥을 꽂아주었다.




얼굴판이 두꺼운 어미는 아이들에게 맛평가를 부탁한다. 요즘 유독 배려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사춘기 접어든 중1심사원.  저학년 때 격려의 뜻(?)으로 자체 요리상까지 내려준 5학년 둘째 심원의 말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먹을만하단다. 맛있다도 아니고 먹을만하다에 마음이 놓이는 나란 엄마란. 맛없다는 말보다는 씬 백배 고맙다. 그리고 더 확실한 건 내 그릇의 계란찜을 탐하며 숟가락을 대는 첫째. 이것보다 확실한 게 있을까?!! 하하하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준 딸들이 오늘따라 세상 착해 보인다. 맛도 나쁘지 않고 건강까지 챙겼으니 더 바랄 게 있을까. 사실 우렁각시(시엄뉘)가 준 김치와 쥐포도 한 몫했다. 순두부달걀찜에 최적화된 사이드메뉴였다. 말 완벽한 저녁식사였다. 순두부와 달걀만 있다면 한 끼 정도 후다닥 차려먹을 수 있겠다는 알 수 없는 근자감까지 생겼다. 뚝딱뚝딱 스피드까지 겸했다면 더할 나위 다.




주부 9단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알지요. 요리라 말하기도 민망한 이 정도는 눈감고도 만드신다는 거. 그래도 앞뒤 다 자르고 아이들이 잘 먹어주는 것에 감사함은 같은 마음이라 믿는다. 이거 하나만으로 많이 뿌듯하기에.  



이것이 진정한 자뻑이다.







매번 가족들을 위해 심려를 기울여 식사를 준비하는 모든 어머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주부 9단은 절대 시간만 지난다고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었어요. 요리는 온 마음을 기울여야 완성되는 사랑임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사진출처: 햇님이반짝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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