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이 슬며시 다가오며 말하길
"친구들이 자꾸 물어봐. 너는 왜 카톡이 없어?"라며.
이모티콘을 주고받고 싶단다. 친구들과 카톡창에서 대화하고 싶다 한다. 그게 다라고 단정 짓고 싶다.
5학년인 둘째의 폰에는 카톡이 깔려있지 않다. 아직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집과 우리 집을 오고 가며 소통하는 아이. 친구들과 마라탕을 먹고 스티커사진을 찍는 아이. 맛난 음식과 주말을 기다리는 아이. 유독 둘째에게 극심한 사춘기를 보이는 언니 때문에 자주 스트레스를 받지만 카톡 없이도 늘 세상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 나 빼고 다하는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심 신경이 쓰이긴 한다. 카톡 때문에 크게 언쟁을 한 적은 없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만 했을 뿐. 이것 때문에 계속 투정을 부리거나 질척대진 않는다.
친구들이 다 하고 있으니 호기심이 난 거다. 그럴 나이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이 꼭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깔아주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첫째 아이 때문이다. 첫째는 5학년때부터 카톡을 시작했다. 성급했다. 그래서 둘째가 더 억울한 이유 중에 하나다. 언니는 되고 나는 왜 안되냐며. 그 부분에선 할 말은 없다. 지금 우리 사이 폰 때문에 싸울 일도 없고 원만한데 카톡하나로 신경전을 벌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큰딸이랑 대판 싸우진 않지만 확실히 휴대폰 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딸아이를 못 믿는 건가. 딸은 믿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사람의 나약한 심리를 못 믿는 거다. 어른인 나도 옆에 있으면 유혹당하기 쉬운데 어린이는 오죽할까. 그리고 그리 멀지도 않았다.
중등이 되니 카톡이 필수가 되었다. 선생님과 함께 있는 반톡에서 모든 게 이루어질 만큼 동아리, 반톡 친구들까지 그 범위는 점점 넓혀져 간다.
친구가 말하길 중1에 인스타를 하지 않는 아이는 주위에 처음 봤단다. 그게 나의 큰딸이다. 내 기준은 확고한데 그렇다고 흔들리는 건 아니다. 많이 흔들리니 또 적는가 보다. 그렇다고 당장 허용되는 건 아니다. 마음 같아선 고등졸업까지는 철벽치고 싶다. 친구들은 다 찍는단다 숏츠를. 요즘 아이돌의 안무를 모르면 친구 못 사귀나? 그럼에도 틈만 나면 춤추는 아이. 아직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친구들의 질문에 흔들리는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속상하기도 탐탁지 않기도 하다. 그게 전부가 아닌데 이땐 전부일까? 학교를 입학하면서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친구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상당수 가지고 있었다. 물론 부모와의 연락이 우선이 되어야 하니까. 그때도 딸아인 우리 반에 폰이 없는 사람은 혼자 거나 둘이었다고 했다.
어차피 시간이 더 지나게 되면 하지 못하게 해도 알아서 할 것을 안다. 굳이 등 떠밀면서까지는 해주고 싶진 않다. 아이가 원하니 문제긴 하지만 아직은 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카톡과 인스타 하는 시간에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잘한 건 칭찬하고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싶다. 너와 나 한번 더 눈 마주침이 일상이 되었음 한다. SNS. 우리를 가르는 수단이 될까, 아님 더 돈독해지는 매개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는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듯 당연한 소통공간이 된 지 오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상 카톡은 이미 우리 일상 속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직도 유느님은 카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카톡에게 딸과의 소통을 양보하고 싶진 않다. 너에겐 문자가 있잖니. 한 번 더 물어보면 무작정 안된다고만 하지 않는 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아 시간을 연장해 보아야겠다. 이런 어미마음을 너는 알랑가 몰라.
카톡말이 잠잠해지니 이제는 유튜브를 찍고 싶단다.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더니 본인이 그린 그림에 탕후루를 먹이며 열일 중이다. 자막을 넣으며 편집을 한다. 꽤나 그럴싸하다.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