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깨워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너
"식는다. 얼른 먹어"
엄마의 할 일은 끝났다. 제발 일어나라며 더 이상의 질척 거림은 없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한다. 이미 둘째는 나와서 영어영상을 보며 아침을 먹는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느새 아침을 먹고 후다닥 등교준비를 마친 첫째의 목소리가 들린다. 혹여나 씻고 있어 대답이 들리지 않을 시 한번 더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어머니, 학교 다녀올게요"
"어 그래 잘 다녀와, 춥다 옷 좀 하나 더 입지"
"안 추워요"
단답형과 함께 철커덕 문이 닫힌다.
현관문이 닫히기 전 너와 나의 짧은 눈인사를 마주한다. 요즘따라 이 찰나가 애잔하다. 그렇게 일찍 자야 키 큰다며 타일러도 말 안 듣던 너인데 어느새 훌쩍 커버려 나와 똑같은 위치에서 마주하는 너. 초등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한층 성숙해진 너에게 이제 이래라저래라 할 때가 아님을 감지한다.
아이방으로 들어가 본다. 책상에는 어제 필기하다만 과학노트와 프린트물. 바닥엔 잠옷이 널브러져 있고 침대에는 곧 떨어질 이불이 간당하게 뒤엉켜있다.
하.. 분명 간섭 안 한다 했는데 침대 정리 좀 하지라며 욱하다가도 이내 순응한다.
초등때와는 사뭇 다른 일정표와 늦은 시간의 하교. 중등이 되어 처음 가는 수학학원까지 일주일 세 번 다녀오면 퇴근하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저녁 먹고 남은 숙제를 하다 꾸벅 조는 너의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너무 퍼질러 자고 있으면 또 다른 생각이 스멀 올라온다.
그래 너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곤하겠지.
배워야 할 양도 더 방대해지고 학교에서 그만큼 공부하고(집중 잘하는 거 맞겠지) 집에 와서도 내 눈엔 해야 할 일은 많아 보이지만 공부하라고 독촉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편히 쉬어야 된다라고도 말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었다.
그나마 초등까지 놀이터를 참새방앗간처럼 닳도록 들렸고 실컷 뛰어논 경험으로 못 놀아서 후회된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지금부터는 엉덩이 힘도 한번 길러보길 바란다. 지쳐 보인다 싶으면 같이 밖으로 나가자. 같이 공부는 못해줘도 같이 걸어서 체력은 떨어지지 않도록 해줄게.
아직은 엄마 품이 그리웠나.
어젯밤 아빠랑 바통터치하여 잠자리를 바꾸었다.
자기 보고 공부하라 이야기 좀 하라며 너무 안 해서 느슨해졌단다(이건 뭐지) 공부는 본인이 하고자 할 때 왜 해야 되는지를 알아야 절실해진다. 엄마는 잔소리만 하는 사람이라고 낙인 되기 싫다. 지금 너와 나 사이 약간의 무관심으로 크나큰 사춘기 없이 너무나 평온한데 공부로 멀어지기 싫다며 이야기한다. 할머니도 엄마에게 공부하라고 이야기 하지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공부를 안 했다며 난감하지만 도움 1도 안 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얘기해 주었다. 지금은 다르다. 엄마가 하고 싶은 게 생겨 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 각자 할 일은 분명히 있는 것. 나에게 채찍질하기도 모자란 시간이다.
나이 마흔을 넘어 생각해 보니 무슨 일이든 본인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하고 싶은 마음도 하기 싫은 마음도 다 본인 의지임은 분명 하나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유도해 줄 수 있는 역할도 엄마의 몫이다.
무조건 하라고 밀어붙일 수도 없고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지 않는 그 어느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엄마도 처음이다. 중1아이를 키운다는 건. 공부가 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큰 힘이 되어준다는 건 사실이다. 그것만은 확실히 알려주고 싶다. 그다음은 너의 몫이다. 각자가 책임져야 할 인생임을.
아이가 중1이면 엄마도 중1에 머물게 된다. 분명 그 시절을 거쳐왔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중1은 다르다. 같이 크고 있지만 엄마의 자리에서 도움이 되는 약간의 선행은 해야겠다. 너는 그 자리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현행을 하길 바란다.
고1엄마가 되어도 이 마음 변치 않기를.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