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래서이다. 이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려고 쓰는 건 절대 아님을. 육체적인 성장은 이미 예전에 끝난 지 오래다. 키가 조금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은 지금으로선 시간낭비일 뿐이다. 나이만 어른인 나는 정신적인 성장을 원한다. 이런 말조차 오글거려 쓰기를 미뤘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를 1년 뒤 5년 뒤도 중요하지만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 써야 한다. 오늘의 기록으로 하루를 붙잡고 지난 과거는 잠시만 되뇌며 미래의 되고 싶은 나를 상상한다. 현재로선 미래의 나를 위한 가장 최선은 쓰는 것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꿈이 있는 엄마로 보이고 싶다. 이제는 안다. 엄마가 쓰고 있다는 걸.
한가로운 주말 오후. 아점을 먹고 식탁 겸 내 책상인 이곳에서 맞은편 남편은 폰을, 오른쪽 큰딸은 과자를 먹으며 탭으로 독서를 한다. 그리고 나는 커피 한 잔과 함께 노트북을 켰다. 브런치북도 만들어야 하고 글도 쓰고 나름 할 일이 밀려 마음이 급한데 바로 옆 큰딸이 자기 방에 갈 생각을 안 한다.
브런치스토리 화면을 켜니 브런치가 뭐냐고 물으며 햇님이반짝? 이라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놀리는 거 같다.언짢다.(아이들은 알아도 괜찮은데 남편이 찾아볼까 봐 언짢은 거다) 이러다 쓰는 내용까지 줄줄 읽어 내려갈까 봐 얼떨결에 책을 펼쳤다. 일보 후퇴. 그 와중에 읽게 된 내용. 이건 남겨야 했다.
화장실 이야기
"내 안에 똥 있다!"
맨 처음 글을 쓰고 책을 내려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말렸다. 굳이 그런 사적인 얘기를 세상 사람들한테 전해야겠니?
쓰면서 알았다. 배설이 먼저라는 것. 내 안에 가득 찬 분노와 후회와 슬픔을 모조리 쏟아붓고 나서야 지금 내가 어떤 곳에 서 있는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마치 술에 잔뜩 취해 있다가 조금씩 정신이 드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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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나는 매일 글을 썼고, 평가하려는 원숭이를 외면했으며, 오직 비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일상과 문장 사이_이은대
이 전글의 내용을 다듬으며 이렇게까지 얘기해야 하나 의문스러웠다. 어쩌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나만 아는 부끄러움이 보인다. 누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사실을 적으니 현실을 직면할 수 있었다. 감정을 꺼내는 연습을 반복 중이다.
글을 쓴다는 건 시멘트바닥에 딱 달라붙어버린 껌을 가까스로 떼어내는 것. 꺼져가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작은 땔감들을 끊임없이 넣어주는 것과 같다. 가라앉은 감정조각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집안만 미니멀을 만드는 게 아니다. 마음도 글자로 비워낸다. 비우기 전에 채우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일단 뭐라도 내어본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둘 겨를이 없다. 아차 하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오늘 안에 글을 내어놓아야 내일도 비울 수 있다.
쌓이면 또 보내야지하는 마음으로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웃음이 나면 박장대소할 수 있는 막힘없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비워낸다. 보내니까 후련하다. 발행하니 시원하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