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그래 오늘은 퇴근 후 바로 운동을 가겠어!라고 마음 먹은 후 가방도 개인사물함에 고스란히 넣어둔 채 직장 근처공원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원래저녁을 먹고 주로 걸으러 나오지만 엉덩이 붙였다 다시 떼는 게여간귀찮은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러닝앱을 열었다.뛰다 걷기를 반복하는 인터벌러닝은 몇 번 해보았지만 연속으로 뛰는 러닝은 처음이다. 몇 분 뛰겠습니까? 5분? 15분? 30분? 5분은 콧웃음이 난다. 30분은 너무 길다. 그럼 남은 시간은 단 하나. 15분.딱 좋다. 설정후 준비운동 없이 냅따 뛰기 시작했다. 전속력 달리기가 아닌 가볍게 콩콩 뛰는 거라 크게 부담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 이래 봬도 매일만보 걷는 여자야! 일부러 휴대폰도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시간을보고 있으면 더 힘들어질까 봐.그렇게 러닝 15분첫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일부러 에어팟도 끼지않았다. 오로지 뛰는데만 집중하고 싶었다. 들리는 거라곤 나의 숨소리와 저 멀리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뿐.한참(?)을 뛰었다. 꽤나 궁금하다. 몇 분 지났지? 7분 지났다. 아직 반이나 남았다. 그뒤부터가 진짜였다. 이미 시간은 보았고 꼴랑 7분 총총 뛰었을 뿐인데 이미 내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내 체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현타가 온다. 힘들 때 조금씩 더 빨리 뛰었다. 오르막길만은 피하고 싶었다. 원래 가야 할 길로 가지 않고 약간의 꼼수를 부려 평지만을 뛰었다. 그래서 무사히 마무리할 수있었다.현명한 선택이었다.
드디어 15분의종료알림이 울린다.첫날부터 이런다고? 다리는 후들후들 힘을 주어 걷지않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내 숭구리당당이다. 걷는것과 반동을 주어 뛰는 것은 천지차이다. 온몸에 힘이 실린다.
늘 생각만 했던 러닝을마무리 지으니 이내 뿌듯함이 몰려와 내일도 뛰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를.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혹독한 첫날이었다.
이일차.
이제야 밀려오는 허벅지 당김.꼭 스쾃을 한 것만 같다.앉았다일어설 때 계단 내려갈 때마다 어정쩡한 자세꼴이 여간 우스운 게 아니다. 아이고 다리야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웃음 또한 피식나온다.허벅지근육세포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다며 격렬하게 응원한다.
가소로운 15분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삼일차.
지금 여기서 멈추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제 겨우 긴 겨울잠을 자고 있던 허벅지 근육들을 깨워놨는데 쉽게 포기할 순 없다. 터질듯한 허벅지를 부여잡고 오늘도 나선다. 자꾸 생각이 난다.언제까지 아프나 두고 보자 싶었다.
마침 오늘은 휴무일이라 아침부터 뛰기로 마음먹었다. 한창 단풍잎이 무르익었을 때라 가을을 품고 달리기로 했다. 역주행하여 걷는 사람이 없는 게 다행스러울 정도로 얼굴이 오만상 일그러진다.(못생김 주의)괜찮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2초 뒤면 누가 지났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달리는 동안 귀호강 시켜준악동뮤지션과지루하지 않게 눈호강까지 겸해준 가을에 감사한날이었다.
사일차 되는 날부터 신기하게 허벅지의 고통은 사라졌다. 근육 친구들은 이제 나와 절친이 될 모양인가 보다.
러닝 15분. 절대 거창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미 나에겐 거창한 의미의 달리기가 되었다. 시작하는 마음은 가벼웠지만 이내 숨 넘어 갈듯 가파른 호흡이 저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지금의 나를 일으켜 세운다. 생생하게 전달되는 쿵쾅거림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15분 러닝을 한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만보를 걸으면 거의 한 시간 이십 분이 걸린다. 백날 걸어도 땀방울 하나 나지 않던 내가 15분 러닝으로 얼굴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적신다. 땀이 옷에 들러붙은 찝찝함마저도 뿌듯함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서늘했던 저녁 공기마저이내 열기로 뛰겠다는 열정으로 눌러버리는 시간. 단 15분이면 충분하다. 은근 매력적이다. 당분간 너에게 빠져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