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Oct 21. 2023

6천 원의 행복

워킹맘의 속전속결 한끼 메뉴


저녁담당인 남편의 퇴근이 늦을 시 반드시 미리 나에게 이야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건 아주 중대한(?) 일이다. 바로 저녁메뉴선택이 걸린 문제다.






저녁 7시 즈음 두 딸들에게 번갈아가며 전화가 온다. 제일 궁금한 것은 단연 저녁에 무얼 먹을지에 관한 것이다. 그때쯤 학원에 마치는 아이들과 비슷한 시각 귀가를 한다.  8시 10분에 둘째의 화상영어할 시간이라 얼른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마음만 촉박하다. 요리할 의욕도 없는 데다가 손까지 느려 무얼 만들려고 하니 벌써부터 지친다. 우렁각시 찬스도 매일의 이벤트는 아니라 냉장고 사정이 여의치가 않을 땐 마지막 최후의 선택을 한다. 반찬가게다. 고민을 하다가 역시나가 되었다. 먼저 선수 치지 않으면 또 라면을 먹는다 하겠지.



어김없이 둘째에게 전화가 다.



오늘 아빠 늦게 오시는 거 알지?
시장 들렀다 갈게. 기다리고 있어.


또? 그거?



시장에 들른다고만 했는데 이미 눈치를 챈 둘째는 세상놀람을 표한다. 그렇다. 그거는 오색찬란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6종 나물되시겠다. 단돈 6천 원.(이것도 근래 천 원 올라 조금 슬프다) 건강은 물론이요. 색색마다 보기에도 좋은 영양만점 나물이다. 직접 만들 생각조차 엄두도 못 내지만 혹여나 시작했다면 오늘 내로 저녁구경도 못할 것을 예감한다.


남편 저녁메뉴는 고기가 주로 메인이다. 내가 직접 준비하지 않으니 이래라저래라 할 없다. 음식준비의 수고로움을 아니까. 꼭 기다렸다는 듯이 틈새를 공략한다. 한 번이라도 더 나물을 먹이고자 하는 어미의 큰 뜻을 알아주길 바란다.




커다란 양푼이 그릇에 세 명이 먹을 따끈한 밥을 먼저 덜어놓는다. 그 위로 6종 나물을 올려 가위로 먹기 좋게 쫑쫑 자른다. 무리 보기 좋고 영양이 있다지만 맛이 없다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우리 집엔 비밀병기 삼총사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달걀과 참기름, 간장만큼은 떨어지게 두지 않는다. 혹여나 나물이 없더라도 삼총사 비밀병기와 맛들어진 김치만 있다면 한 끼 뚝딱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현재 메뉴는 좀 (많이) 오버해서 진수성찬이라 우겨본다. 인원은 3명이지만 계란프라이는 4개를 굽는다. 넉넉히 참기름을 두르는 호화스러움은 덤이다. 척척 비벼낸 나물밥을 세 개의 밥그릇에 옮겨 담는다. 시간조차 속전속결이다.



단돈 6천 원에 세 명의 한끼 식사가 완성되었. 그것도 한 끼만 해결되느냐. 내일까지도 먹을 수 있다. 이 얼마나 알뜰살뜰한 주부인가. 저녁 한 끼가정경제까지 지켰다라고 생각하니 어깨 뽕이 절로 솟구친다. 1석 3조의 득템을 한 것처럼 내심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다. 이런게 바로 6천원의 행복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인 건지  못마땅한 아이들에게 이거 한번 먹어보라며 정성스레 비빈 나물밥내밀어 본다. 혹여나 먹기 싫다고 반항이라도 한다면 극단적인 어미의 성격상 싱크대로 바로 밥그릇이 직행할지도 모른다. 이왕 먹을 거 인상 좀 펴지. 밥 한 톨 안 남기고 잘 먹을 거면서 그런다. 아니나 다를까 좀 많이 비볐나 하는 걱정도 잠시 리필까지 해서 먹는 아이를 보니 역시나 나의 감이 맞았다는 생각에 다시금 시장행을 예고해본다.



다음번 시장갈 일 있으다른 종류의 나물과 떡갈비도 같이 추가해 줄게. 그럼 아이들의 얼굴에도 조금의 웃음꽃이 피겠지? 너희도 좋고 나도 좋은 선택 하도록 할게.  이제 시장간다하면 너무 놀래지는 말아 주길. 인상은 좀 돌아갈지언정 언제나 부족한 어미의 한 끼를 잘 먹어줘서 고맙다.






관련글








사진출처:햇님이반짝 갤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