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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Nov 03. 2023

의리 여행을 다녀왔다

어떻게 매번 설렐까


평소 남편은 나의 유일한 평일 휴무날 연차를 잡지 않는다. 몇 번의 눈치를 준 것도 있겠거니와  금요일이나 월요일 쉬어 연 3일 쉬는 게 낫지 굳이 어중간한 목요일 쉬지 않는다. 그건 나에게도 감사한 일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서로 지켜주어야 하는 결혼 15년 차 연애까지 함께한 세월 21년이다. 그렇게 서로 지킬 건 지키는 우리에게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아이들 없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유일한 날이 있으니 세상이 온통 나 가을이에요라며 화려한 색감의 드레스로 갈아입는 계절 단풍이 물들 때다. 어쩌다 보니 열린 행사처럼 이맘때쯤이면 우리가 사는 도시를 떠나 가까운데 단 둘이 콧바람을 쇠러 나간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황매산 정상에 주차를 한 뒤 주변걷자고 했었는데 지금 우리가 앉은 이곳은 어느 바닷가 앞 카페 안이다. 즉흥적으로 바다를 보러 가자며 노선을 바꾼 탓(?)이다. 1층엔 꽤나 사람들이 북적였다. 자리는 있었으나 또 다른 한적한 곳이 있나 싶어 내려와 보았더니 웬걸 텅텅 비어있다. 평일에 외출하니 좋긴 좋구나. 넓디넓은 공간 굳이 죽고 못 사는 커플인양 같은 테이블에 앉을 필요가 있나. 그렇게 우린 각자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 분명 같은 공간인데 서로 다른 자리에서 잠시 개인의 시간을 가졌다.





예전 같으면 오늘의 일과를 두고 잠시나마 힐링시간을 가졌다며 탕탕탕 섣부른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다름을 감지했다. 우리 부부는 휴무와 연차를 써가며 어쩌다 한번 나온 외출인데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시간적 경제적 자유를 이룬 것처럼 다들 여유로워 보인다. 평일인데도 어디서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지. 다른 이들나와 같은 생각일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은 온통 더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한 가지 더. 이럴 시간이 없는데 봐야 할 책이랑 밀린 글도 써야 하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더 진하게 감돌았다. 






현재 남편과의 시간을 온전히 백 프로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소 같음 행여나 운전 길이 지루할까 졸리지 않도록 뭐라도 쫑알댔을 텐데  새벽까지 내 시간 사수하겠다며 늦게 잠든 탓일까.  집으로 오는 길 운전을 하는 남편에게 미안할 틈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권태기가 온 것처럼 이를 극복이라도 하려는 여행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한번 더 지금 상황도 돌아보게 되었다. 어떻게 매번 설렐까. 잠깐의 의리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 둘이서 산책은 자주 하지만 일부러 평일 하루 시간 내어 어디를 다녀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일 년에 한 번 손꼽히는 일마저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만 같았다.( 기다렸던 거니?) 



예전 같으어떻게 가진 둘만의 소중한 시간인데 하며 더 오랫동안 바깥공기를 사수하려 했을 것이다. 이젠 의무든 아니든 아이 둘이 충분히 혼자 있어도 되는 하교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과 글이라도 남겼으니 허투루 보낸 하루만은 아닌 걸로. 남편아 쪼금 미안하다. 그래도 우리 둘만의  의리여행은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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