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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Nov 04. 2023

중독은 또 다른 중독을 부른다

금주 23일 차


오후 5시가 되면 슬슬 퇴근 후에 뭐 먹지 고민이 시동을 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유별나게 바쁜 날이면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주는 그분이 절로 생각이 났다. 날이 좋으면 좋은 데로 기분이 가라앉는 날엔 우울하다고 맑은 이슬이 영롱하게 따러진다. 햇볕이 강렬히 내리쬐는 날엔 정신까지 쨍한 살얼음 맥주생각이 간절하 비가 오면 바싹 구운 김치전에 뽀얀 막걸리가 절로 그리워졌다. 주종마다 변경되는 안주생각에 31가지 아이스크림 골라먹듯 일이 축제인 날들이었다.



그렇게 한순간의 행복을 위한 나날들이 연이어졌는데 어쩌자고 금주하겠다며 온 동네방네 소문이란 소문은 다 퍼뜨려놔서 주워 담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첫날부터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마트 사장님과 절친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결국 오늘까지 23일째 금주 중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현재의 심경으로는 먹고 싶지만 먹고 싶지 않다. 이 무슨  알다가도 모를 말인지. 계속 생각나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극심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불쑥 그분(알코올신)이 찾아오긴 한다.






언니 두 명과 남편이 있는 그룹채팅방에 친정엄마의 뒷담화(엄마가 상처받는 건 싫으니. 내가 화를 내면 남편은 자연스레 장모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열일 중이었다. 화산폭발 이모티콘을 열심히 쏘고 있던 중 남편은 먹을 걸로 날 진정시켰고 괜스레 술핑계를 대며 삐죽거렸다. 모든 음식이 반주가 되었던 지난 과거를 되뇌며 대신에 술과 관련된 이모티콘으로 대리 만족 할 수 있었다.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임티들을 마구 쏘다 보니 은근 희열감이 있다. 직접 마시는 거에 비할 바 못되지만 그에 못지않은 시원한 쾌감을 느꼈다. 문득 알코올중독대신 임티중독에 빠져들어도 괜찮을 거란 단순한 원리를 깨우쳤다. 그래 3900원이면 피쳐값인데 한번 먹고 끝나는 것보다 한 달을 누리는 게 훨씬 나아 보인다. 이런 아직까지도 임티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설마 임티 끝나는 날 다시 알코올로 갈아타랴.



임티중독♡





마누라의 행실이 중증으로 이어지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남편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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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습관을 각인시키는 시간은 최소한 21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직 완전한 습관으로 자리 잡히기엔 아직 이르다. 이러다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밑밥인가) 그전에 중간 점검의 의미로 한번 더 기록으로 남겨둔다.






삼겹살에 촉촉한 이슬이  상되면 임티 한번 더 보내고 노가리에 맥주의 짜릿하게 타들어가는 그 첫 모금이 생각날 때마다 나가서 뛰었다. 그리고 그 유혹을 떨쳐내기 위해 브런치에 더 파고드는 중이다. 독은 또 다른 중독을 부른다. 하나씩 늘어나는 새로운 중독거리들이 내 삶을 바꿔놓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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