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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Nov 02. 2023

운동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줄넘기 천 개하면


무엇을 쓸지 생각나지 않아서 아예 새로운 글쓰기창을 열어버렸다. 수요일 밤의 시간은 째깍째깍 잘만 지나가는데 무엇하나 내놓은 게 하나 없다. 이미 쓰다만 글들이 무수히 넘쳐나는데도 이어지지가 않았다. 서랍을 뒤져서 한 달 두 달 심지어 작년 글까지 내려가보았지만 이미 그때의 식어버린 온기는 다시 오르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파고들어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 이 글도 세상 밖으로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오늘을 잡기 위해 어떤 글이라도 남겨본다. 집착 아닌 집착이 되어버렸다.








혼자 세상 심각하게 타닥타닥 두드리고 있지만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자정이 다가오자 급한 마음에 애꿎은 노트북만 부여잡고 있었다. 진도는 나가지 않고 허기만 져온다. 저녁으로 먹은 떡이랑 커피가 이미 운동으로 소화된 지 오랜지였다. 배가 고파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당장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내일은 휴무니까 괜찮아라며 이내 안심시켰다.



냉장고 위 작은 컵라면이 보인다. 속으로 오늘은 너다라며 주의 깊게 응시하고 있던 중 큰아이가 다가온다. 잠도 안 자는 중딩이.(라이벌 등장) 꼭 이럴 때 주지도 않은 텔레파시가 통했나. 컵라면을 바라보며 내일 자기가 먹겠단다. 오늘 둘째가 방과후에 라면파티한 것을 안다. 그래서 내일 먹어야겠단다. 너는 왜 잠도 안 자고 갑자기 나타나 컵라면 타령이니. 요즘 운동이라곤 숨쉬기와 등하교뿐인 아이를 보니 이내 답답함이 몰려왔다. 키는 나보다 조금 더 클동말동하지만 이미 내 몸무게를 넘어선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운동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컵라면은 나의 것이니라 단념시켰다.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니 내가 먼저 먹겠다는 어미와 포기하지 않는 자. 그렇게 오밤중에 컵라면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지로부터 실랑이가 벌어졌다.



내일 줄넘기 천 개를 하면 컵라면을 주겠다며 협상에 들어간다. 이 말에 혹한 중딩이는 천 개는 많다며 줄여달라 호소한다. (올커니 걸려들었구먼. 작년초등까지만 해도 천 개 했었다) 이래나 저래나 어차피 먹게 될 컵라면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인심 한 번 후하다는 소리 들을 만큼 반이나 줄여주었다. 500개. 그러니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하면 무리가 온다며 300개의 딜이 들어온다. 결국 오고 가는 협상 속에 400개로 마무리되며 내일 컵라면을 먹고 저녁에 같이 운동할 것을 약속했다. 중딩이 운동 한번 시키기가 이리 어려워서야. 그리고 방문을 닫으며 한번 더 쇄기를 박았다. 운동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그렇게 째려보았던 마지막 남은 컵라면은 결국 딸에게 쿨하게 양보(?)를 했다.








흐흐흐... 너는 내일 줄넘기 400개를 하고 컵라면을 먹거라. 어미는 컵라면 작은 걸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겠더라. 봉지라면 정도는 끓여줘야지. ㅋㅋㅋ 어미도 내일 더 움직여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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