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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Nov 18. 2023

서투른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생일날 친정 간다는 말을 남편에게 미리 전달하지 못했다. 혼자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나 보다. 생일 전 날 시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에 별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대답한 건 나였다. 평소에도 묻지 마 방문이 잦으셔 어련히 오시는구나 싶었다. 굳이 번복하지 않았다. 상관은 없다. 없는데 무슨 기분인지도 알 수 없었다.






퇴근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다고 미리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몇 년 전부터 생일 당일은 친정에 가서 저녁을 먹고 케이크에 초를 불었다. 혹시나 내심 기다리셨을까. 오늘 가지 못한 이유와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뭐해예~??

그냥 있지~~

아빠는?

아직 안 들어왔다.

저녁은 먹었으예?

아빠 오면 먹어야지

오늘 어무이집에 갈라했는데 내가 미리 말을 안 했네. 시어머니 오신다네. 나 맛있는 거 해준다는데 그냥 샐러드 사달라 했다. 생일당일은 같이 저녁 먹으려 했는데 오늘 못 가예~



시어머니는 평소에도 먹고 싶은 반찬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 하라고 하신다.(잘 부탁을 안 드려서 그렇지) 그냥 오늘은 간편하게 먹고 싶었다.


급하게 찾아온 겨울저녁은 매서웠지만 바로 집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렇게 집 앞 골목을 서성이며 통화를 이어갔다. 집엔 이미 시어머니가 와계신다. 그곳에 집중하기 위해선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올라가야 했다.






내일모레 팔순을 앞둔 부모님은 최근 병원을 자주 다니신다. 병원 다녀온 이야기와 직장에서 점심으로 나온 미역국도 먹었다며 엄마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늘 우리 집을 오고 가시지만 딸 얼굴 한번 볼려없이 사위 오기 전에 집으로 가는 엄마다. 굵고 짧은 근황토크가 끝났다. 오늘의 미션이 남았으니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추운데 붙들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이게 뭐라고 생각만 해도 벌써 눈가가 촉촉 온다. 목이 메어  듯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문을 여는 순간 이미 흐르고 있는 눈물을 들켜 버릴 것만 같았다. 입가에 맴도는 말을 겨우 내뱉었다.



어무이,  나 낳는다고 고생했으예.



통화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다 말 다한다.

웃는울고 계신대화가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때 남아있는 제를 해치우 듯 얼른  말로 이어갔다.



(사)사랑해예.



사실 엄마가 무슨 답을 한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뜨거운 줄기로 볼이 따뜻해졌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얼른 급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도 시어른 기다리신다고 얼른 들어가라고 재촉한다. 다가오는 주말에 볼 거면서 꼭 통화로 전달하려니 더 복받쳐 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셋 중 둘째 언니와 10년 터울의 막내딸인 게  만큼 애교라는 게 없다.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을 만큼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시는 모 보고 자랐다. 꼭 말로 배우지 않아도 나이를 먹으며 내 아이를 키우면서 표현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마음으로 안다지만 때론 직접적인 표현이 더욱 오래 남는다. 여전히 마에게 불만을  철없는 딸이지만 이제 겨우 마음을 담은 서투른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면 나의 둘째 딸 생일이다. 크게 생일잔치 한번 열어준 적도 없는데 벌써부터 혼자 설레한다. 엄마 휴무일이라고 좋아한다. 이 아이는 12년 전 내가 고생한 걸 알기나 할까. 그런 거까지 다 알아차리려면 최소 2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감사는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도 나의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마음을 전달하기까지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까. 그래도 엎드려 절 받기는 싫지만 빈말이라도 듣고  하다.



어머니,
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감사해요♡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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