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친정 간다는 말을 남편에게 미리 전달하지 못했다. 혼자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나 보다. 생일 전 날 시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에 별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대답한 건 나였다. 평소에도 묻지 마 방문이 잦으셔 어련히 오시는구나 싶었다. 굳이 번복하지 않았다. 상관은 없다. 없는데 무슨 기분인지도 알 수 없었다.
퇴근길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다고 미리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몇 년 전부터 생일 당일은 친정에 가서 저녁을 먹고 케이크에 초를 불었다. 혹시나 내심 기다리셨을까. 오늘 가지 못한 이유와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뭐해예~??
그냥 있지~~
아빠는?
아직 안 들어왔다.
저녁은 먹었으예?
아빠 오면 먹어야지
오늘 어무이집에 갈라했는데 내가 미리 말을 안 했네. 시어머니 오신다네. 나 맛있는 거 해준다는데 그냥 샐러드 사달라 했다. 생일당일은 같이 저녁 먹으려 했는데 오늘 못 가예~
시어머니는 평소에도 먹고 싶은 반찬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 하라고 하신다.(잘 부탁을 안 드려서 그렇지) 그냥 오늘은 간편하게 먹고 싶었다.
급하게 찾아온 겨울저녁은 매서웠지만 바로 집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렇게 집 앞골목을 서성이며 통화를 이어갔다. 집엔 이미 시어머니가 와계신다. 그곳에 집중하기 위해선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올라가야 했다.
내일모레 팔순을 앞둔 부모님은 최근 병원을 자주 다니신다. 병원다녀온 이야기와직장에서 점심으로 나온 미역국도먹었다며엄마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늘 우리 집을 오고 가시지만 딸얼굴한번 볼려없이사위오기전에 집으로 가는 엄마다. 굵고 짧은 근황토크가 끝났다. 오늘의 미션이 남았으니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추운데 전화를 붙들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이게 뭐라고 생각만 해도 벌써 눈가가 촉촉해져 온다. 목이 메어 선 듯 말이 나오지 않는다.말문을 여는 순간 이미 흐르고 있는 눈물을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입가에 맴도는말을 겨우 내뱉었다.
어무이, 나 낳는다고 고생했으예.
통화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다 말 다한다.
웃는지 울고계신지 대화가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때 남아있는과제를 해치우 듯 얼른 다음말로이어갔다.
(사)사랑해예.
사실 엄마가 무슨 답을한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뜨거운 줄기로 볼이 따뜻해졌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얼른 급한 마무리를 해야할 것같았다. 엄마도 시어른 기다리신다고 얼른 들어가라고 재촉한다. 다가오는 주말에 볼 거면서 꼭 통화로 전달하려니 더 복받쳐 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딸 셋 중 둘째 언니와 10년 터울의 막내딸인 게무색하리 만큼 애교라는 게 없다. 자라면서부모님에게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을 만큼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시는 모습을보고 자랐다. 꼭 말로 배우지 않아도 나이를 먹으며 내 아이를 키우면서표현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마음으로 안다지만 때론 직접적인 표현이 더욱 오래 남는다.여전히 친정엄마에게 불만을 품는 철없는 딸이지만이제 겨우 마음을 담은 서투른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면 나의 둘째 딸 생일이다. 크게 생일잔치 한번 열어준 적도 없는데 벌써부터 혼자 설레한다. 엄마 휴무일이라고 좋아한다. 이 아이는 12년 전 내가 고생한 걸 알기나 할까. 그런 거까지 다 알아차리려면 최소 2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감사는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도 나의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마음을 전달하기까지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까. 그래도 엎드려 절 받기는 싫지만 빈말이라도 듣고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