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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Nov 19. 2023

우리 집 수전에서 광이 나기 시작했다

무심해서 미안하다


샤워를 하려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 전 콸콸 쏟아져 나오는 차가운 물이 아깝다. 보통은 곰탕을 끓일만한 양동이에 받아두거나 머리를 먼저 감을 때 찬물을 사용한다. 찬물이 머리를 강타할 때 스치는 약간의 고통은 감수한다. 


 

찬물을 흘러 보내기 전 수전 씻기로 했다. 웬일로 기특한 생각을 해냈다. 자칭 살림은 꽝이라지만 그래도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 더 이상 손으로 밀어내도 나오지 않는 치약을 모아두었다. 치약의 청소효능까지 한번 더 찾아보게 된다. 세정과 살균작용까지 있다니 또 세상 뿌듯하다. 소용 칫솔에 치약을 묻혀 양치를 시키듯 수전 위아래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흰색은 여러모로 눈과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하얀 눈을 쓸어내리듯 찬물로 샤워를 시켜주니 반짝이는 광채를 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나 원래 이렇게 빛나는 아다며 방치하지 말아 달라는 듯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이렇게 밝은 제 모습을 드러내는데 무심해서 미안하다.






우리 집 수전에서 광이 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라 반짝반짝 빛나는 쨍한 모습에 꽤나 기부니가 좋다. 양치를 하고 입을 헹구는 동안 오물거리는 입모양이 수전으로 비친다. 거울 다음으로 내 얼굴을 선명하게 비춰주는 곳이 또 하나 생겼다. 



나를 빛나게 만들 요소들을 곳곳에 두고 싶어졌다. 화장실 수전에서만 빛나는 나의 모습이 보기 너무 아까운 거다. 내가 예뻐서 이런 생각을 한 게 절대 아니다. 내 마음도 치약과 같은 성분으로 누런 때를 벗겨내 을 내고 싶다. 수전만 깨끗이 닦았을 뿐인데 급 눈이 번뜩이며 자동으로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전을 씻으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를 비춰주니 다른 곳에서도 빛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내가 빛날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지금은 비록 화장실 수전에서 시작하지만 현재 매일 습관처럼 하고 있는 행동 속에 나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수전을 씻는 일은 매일의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해놓으니 상쾌하고 기분이 맑아졌다. 이것도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매일 양치를 해야 개운하듯 글도 매일같이 쓰다 보면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눈부시게 광은 나진 않더라도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글을 쓰고 싶다. 수전과 글쓰기 이 둘을 명상하듯 매일 닦아야겠다. 이렇게 를 빛나게 해 줄 공간 하나씩 늘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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