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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Dec 14. 2023

나는 가끔 친구를 초대한다

일석이조의 효과


오랜만에 중등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밥은 밖에서 먹고 공원 한 바퀴를 돈 뒤 우리 집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렇다. 집으로 온다. 집에 외부사람이 온다는 건 꽤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늘 청소가 몸에 베여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불시에 찾아와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예외다. 사람이 살 정도로(?) 유지는 하지만 평소 꼼꼼하게 청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전에 글 쓰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아챈 후 간단히 청소기만 돌리려고 했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매일같이 밀대에 수건을 끼워 바닥을 닦는다. 우리 집을 이렇게 닦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으면서 막상 돌아서면 잘 잊어버린다. 정작 밀대질을 해야 할 집은 항상 청소기만 돌리며 보이는 곳만 대충 물티슈로 닦곤 했다. 현관문 옆 밀대는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쓰임이 없었을 뿐. 드디어 잠자고 있던 밀대를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 통보 없이 오시는 시어머니를 위해 청소는 지 않아도 친구의 방문에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친구를 부른다고 하면 못내 기쁨을 표시하곤 한다.




그냥 버리기 아까운 오래된 수건하나 오늘 아작을 내보기로 한다. 세면대에 수건을 넣고 적신 후 물기가 떨어지지 않게 꼭 비틀었다. 그리고 밀대에 끼운다. 아침마다 직장에서 닦던 그대로 바닥을 위아래로 문지른다. 마룻바닥이라 닦으면 닦을수록 광이 나기 시작한다. 모서리 부분은 각을 잡아 밀대정면을 딱 붙인 후 힘을 주어 좌우로 박박 문지른다. 집중공략할 곳은 오래 머물 거실을 기준으로 서서히 마지막 목표물을 향해 전진한다. 현관이다. 평소 이곳을 쓸고 닦지 않았다. 마침 식구들이 다 외출한 시간이라 내 운동화와 슬리퍼만 옆으로 옮긴 후 빗자루질을 했다. 보이지 않던 먼지와 모래들이 뭉텅이로 한 곳에 모인다. 이 작디작은 공간에 꽤나 쌓였다. 쓰레바퀴로 담아내니 내 마음의 묶은 찌꺼기들도 같이 담긴 느낌이다. 그리고 대기 중이던 밀대를 또 빡빡 문질러댔다. 평소 무관심했던 아이를 돌보는 듯했다. 맞아, 너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지 하며 어루어만져 주었다. 내친김에 둘째의 운동화 한 켤레도 버렸다. 이미 발 앞쪽이랑 발목 주변이 떨어져 많이 해진 상태였다. 새운동화를 신고 다닌 지 좀 되었는데 이제야 정리를 했다. 그리고 조카들에게 물려받은 작아진 부츠 두 켤레도 이참에 버렸다. 속이 다 시원하다.



이렇게까지 청소할 생각은 없었는데 의도치 않게(?) 영역을 넓혀나갔다.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쓸데없이 번지게 된다. 글을 쓰다가도 옆 책장을 보고 있자니 괜히 어질러진 문구용품들이 눈에 거슬려 다 꺼내어 정리를 하니 말이다.








청소에 진심인 사람들은 매일 같이 쓸고 닦으며 집을 정돈한다. 현관은 집안으로 들어갈 때 처음 마주하는 공간으로 풍수지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네이버글 참조) 그런 곳을 여태 방치해 두었다니 집안의 좋은 기운을 막고 있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거실과 현관. 깨끗해진 공간을 보니 평소 친숙한(?) 머리카락 한올까지 눈에 거슬린다. 계속 닦고 싶어 진다.



어쩌다 한번 한 걸레질에 이렇게 진심일 수가. 보통의 의미가 아니다. 혼자 너무 뿌듯한 거다. 이렇게 기록으로 나의 진상을 남긴다. 볼매(보면 볼수록 매력)가 된 현관이 꽤나 마음에 든다. 마지막엔 걸레 빨 힘조차 없어 미련없이 쓰레기봉투로 넣어버렸다. 이미 수건인지 걸레인지조차 분간이 안된다. 몇 년 동안 버리지 못하고 빨면 또 썼던 수건들. 다 이유가 있었다는 핑계를 대어 본다. 비록 몰골은 말이 아니지만 멋지게 자기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고 깔끔하게 사라진 수건.. 아니 걸레. 청소에 능하지 못한 게으른 자는 강제성이 필요하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특효약으로 먹힌다. 평소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한번 더 가니 말이다.(베란다도 살짝 손봤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를 맞이할 수 있었다. 청소도 하고 친구도 보고 일석이조의 효과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친구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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