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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Dec 23. 2023

김밥 싸는 남자


우리 집엔 김밥 싸는 남자가 있다. 주로 요리 담당을 맡고 있기에 그가 김밥을 싸는 일은 우리 집에선 흔한 일이다. 나보다 평소에도 일찍 퇴근하는 남편이다. 토요일도 크리스마스인 월요일도 나는 출근한다. 그는 크리스마스연휴 때문인가 금요일 오전만 일하고 퇴근 후부터 토일월화요일까지 쉰다. 부럽다. 그래서 남편에게 밥을 하는 기회를 많이 준다. 일보다 밥 하는 게 더 부담이 큰 나로선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낫다고 세뇌시켜 본다. 그래도 부럽다.






토요일 저녁으로 남편은 참치김밥을 싸기로 마음먹었다. 퇴근을 하니 이미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딸들도 잘 먹고 나도 남편이 만들어주는 김밥을 너무 좋아한다. 첫째는 맛있고 둘째도 맛있다. 셋째는 사랑과 정성이다. 우열 가리지 않고 그냥 다 좋다. 여느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남편이 싸주는 김밥이 제일 맛난다. 그래서 김밥을 잘 사 먹지 않는 편이다. 재료 구입부터 김밥 만들 준비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남편의 김밥엔 당근과 양념어묵이 제일 중요포인트이다.(으레 짐작) 특히 당근은 식감과 모양 색상까지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채칼로 얇게 썬다. 어묵은 살짝 매콤하고 빨갛게 볶아주고 댤걀은 넓게 자른다. 우엉과 단무지는 시판을 이용한다. 김밥의 단면에 초록색이 좀 허전하지만 깻잎으로 대체한다. 오이나 시금치를 넣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생각도 없다. 주면 주는 대로 먹어야지 태클을 걸면 안 된다.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이를 생각해 그에 맞는 칭찬만이 답이다. 요리에 있어 세상 귀차니즘 마누라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



재료 준비가 다되면 폭풍액션과 함께 사진을 마구 찍어댄다. 오빠는 정말 손이 빠르다며 혼자서 뚝딱뚝딱 만드는 걸 보고 있으면 진정 경이롭기까지 하다. 수고의 보상은 칭찬과 맛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입씩 오물거리며 역시 아빠 김밥이 최고다라는 말만 연신 내뱉는다. 물론 정말 맛도 있지만 이 말 한마디에 남편의 김밥 만드는 기간 점점 짧아지고 있다.






김밥을 만들며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언젠가는 다가올 퇴직 후를 그려본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김밥맛에 대해 무한 칭찬을 들은 남편은 어느 날부터 자신감에 차올라 농담반 진담반 김밥가게를 차려볼까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럼 나도 장단에 맞춰 밥 가격과 가게 상호를 지어본다. 아빠의 정성으로 만드니 아빠김밥? 너무 단순한가. 이 맛이 나려면 재료도 아낌없이 골고루 넣어야 한다. 파는 입장에서는 조금 더 비싸게 받고 싶지만 만만하게 사 먹는 입장에선 그리 비싸서는 안된다. 이미 내일모레 개업 할 것처럼 고민하기 시작한다.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멀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남편이 우리 가족 먹이려고 싸기 시작한 김밥이 어느 순간 가장의 무게까지 느껴지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좋아서 하기 시작한 것도 직업으로 받아들이면 부담으로 오기 마련이다. 퇴직 후에도 김밥을 싸지마라고는 못하겠다. 대신 이 김밥으로 도시락을 싸서 여유 있는 노년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제2의 직업으로 이어갈 것인지는 간단히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앞으로 계속 더 먹어보면서 진중히 상의해 볼 일이다. 오늘도 남편의 김밥을 우걱우걱 씹으며 미래의 김밥가게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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