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Dec 26. 2023

우리 집엔 더 이상 산타가 오지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보드게임을 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했다. 상품을 걸고.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일찍이 산타의 존재를 알아버린 딸내미들. 끝까지 믿는 척이라도 하는 연기력은 없는 듯하다. 남편과 나도 그 감성을 지키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았다. 산타의 존재가 탄로 난 우리 부부는 아직 초등아이가 있기에 선물은 주기로 한다. 준다 해도 비싸거나 그런 선물은 없다. 딸들도 크게 가지고 싶은 물건은 없는듯하다(생각) 중1인 첫째는 예전부터 만드는 걸 좋아한다. 큰아이는 머랭쿠키 만들기 재료를 사고 초5인 둘째는 연예인 카드 넣는 을 샀다. 나름 적정선에서(?) 마무리되었지만 이대로 끝내기엔 좀 허전한 감이 있었다.






조카들에게 물려받은 보드게임은 넘쳐나지만 평소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 않는다. 아주 가끔 보드게임을 하지만 인생게임이나 부루마불만은 피하고 싶다. 정말 긴 여정이다. 특히나 인생게임이 더 힘든 이유는 이미 난 결혼을 했고 두 자녀가 있는데 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자녀를 네 명이나 태우고 가야 유리하다. 분명 게임인데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 건지.



스플렌더
스페이스 카우보이즈에서 만든 카드게임. 보석을 구매하여 카드를 모아 승점 15점을 먼저 모으는 사람이 이긴다. 펀딩판부터 시작해서 인기를 얻었다. 간단한 구성물과 직관적이면서 이해하기 쉬운 룰로 보드게임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테크트리를 설계하는 동시에 상대방 빌드를 견제하는 등 고려할 것이 많아 쉬운 룰이면서도 치밀하게 작전을 짜서 즐길 수 있는 게임.(네이버참조)


그중 내가 좋아하는 보드게임은 스플랜더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둘째가 보드게임을 하자고 해서  아빠도 꼬드겨 다 같이 참여했다. 그렇게 몸풀기로 시작한 게임의 일등은 내가 차지했다. 역시 게임은 이겨야 제 맛이다. 이미 늦은 시간이기도 하였고 오랜만에 하니 또 재미있었다. 내일 다시 하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다음날 스플랜더게임만 두 판 더 하자는 거였는데 일이 크게 될지 몰랐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나만의 시간이 사라질지도 모른 체.


일등은 아무거나 먼저 고를수 있고 이등은 오른쪽 상품만 선택가능.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거 날도 날인만큼 제대로 하기로 했다. 내가 출근한 사이 남편은 첫째와 상의하여 상품을 준비한다. 평소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학용품간식으로 구성된 18종이었다. 일등과 이등만이 가져갈 수 있다. 이게 뭐라고 승부욕이 불타오른다. 게임은 진심으로 덤벼야 한다. 그래야 더 재미있다. 우승에 눈이 멀어 잠시 언성이 올라갈지언정 누구 하나 봐주는 이 없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스플랜더랑 루미큐브 하는 시간은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이다. 저녁도 해결해야 하므로 찜닭이 오면 경기는 잠시 중단한다. 한창 게임이 진행 중이던 6인테이블은 건들면 안 되므로 찜닭은 바닥에 사각테이블을 놓고 옹기종기 앉아 먹었다. 이마저도 즐겁다. 식사를 마친 선수들은 각자 일사천리 정리를 하고 경기에 다시 집중하였다. 내심 아이들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과 지기 싫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상품을 손에 쥐게 되었다.



마지막엔 원카드 무한굴레...그나마 빨리 끝난다.



우리 집엔 더 이상 산타가 오지 않는다. 대신 산타의 선물보다 귀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 당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비록 큰 상품들은 아니지만 소소한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만큼은 확실히 알게 된 날이다. 행복이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사춘기 따위 사르르 눈 녹듯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났다. 우리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증명해 주었다. 아직은 순수하게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는 아이들에게도 고맙다. 나만 조금 더 의욕을 낸다면 이렇게 별거 아닌 행복이 품 안에 들어오는데. 뭘 그렇게 내 시간 찾겠다고 눈에 불을 켰는지. 내일이면 또다시 나의 시간을 찾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어머니는 보드게임도 같이 안 해주고라는 말 쏙 들어가게 원 없이 해주었다. 아니 누구보다 함께 즐겼다. 가끔 해야 더 빛을 발한다. 기쁨이 배가 된다. 이제 산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우리 가족계획이 궁금해지는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란다. 내년엔 상품이 더 업그레이드되길 기대하며.


내가 탄 상품. 새콤달콤 포도맛이 빠졌네.







작가의 이전글 김밥 싸는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