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오는구나. 금주이야기로 글을 쓸 줄이야. 그것도 백일동안 금주를 했다. 금주란 자고로 최소 일이 년은 해야 말 좀 붙이겠습니다만 현재 이 기간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함이 차고 넘친다. 그리고 지금 적지 않으면 이 기분도 알수 없다. 성인이 된 후 임신기간을 뺀 나머지 내 의지로 백일 간 먹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음주 전성기는아이를 어린이집에보내고 난 후부터였다.술친구를 놀이터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즐거웠다. 영혼의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린이집 모임은 첫째가 중2가 된 현재까지도 가장 활발한 단톡방이다. 바뀐 점이 있다면 내가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밤모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밤모임이 다가 아니었다. 매번 나갈 수는 없으니 남편과도 마셨지만 다행히도 남편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회식이나 모임 있을 때만 마셨다. 그에 비해 나는 집에서 혼자 마시는 날이 늘어났다. 혼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시로 금주선언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전에도 마음을 먹고 며칠씩 안 마셔보기도 했지만 결국 툭 건들면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 같은 결심이 반복되었다. 마음 맞는 사람과의 술자리가 좋아 없던 약속도 불시에 생기면 냉큼 달려갔다. 기분이 좋아도 슬퍼도 마셔야 할 이유는 늘 있었다. 그냥 그 자체로 좋았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술이 나를 부르고 내가 술을 부르는 상황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스며들었다. 혼술의 유혹에 한번 빠지게 되면 굳이 같이 마실 상대가 없어도 상관없다. 어느 날부터 술마시는 시간보다 다음날의 후회가 잔상으로 남는 날이 늘어났다. 후회만 하기는 싫었다. 기나긴 음주여정은 쉼표를 찍는 중이다. 잠시가 될지 이대로 영원히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현재의 마음이 중요하다.지금은 아니다.
23년 10월 13일 금요일부터 시작이었다. 어중간하게 불금부터라니. 기억한다. 이날 남편이 치킨을 시켰다. 1일도 월요일도 아무것도 아닌 날이다. 그렇게 목요일 단톡방에 올린 소주사진을 마지막으로 금주는 시작되었다.남편은 나에게 알코올중독이라 했다. 부정할 수 없었다. 허구한 날 퇴근만 하면 마트로 출동해 그날의 메뉴에 따라 주종이 변경되었으니까. 아이들에게도 미안했지만 그땐 내 마음충족이 우선이었다.
금주선언을 인스타에 공개했다. 1일부터 오늘까지 차곡차곡 쌓였다. 숫자가 눈으로 보이니 계속 더 쌓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보다 더 백일을 기다리며 응원을 받기도 했다.
절대로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앞으로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는 남발하지 못한다. 내일 당장 마음이 바뀌어 예상가능한 빈틈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곰도 사람이 되겠다고 백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견뎠다. 그렇다면 원래 사람인 나는 백일간 금주를 하며깨달은 것이 있지 않을까.목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했다.공허한 시간이 생기면 술생각이 절로 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시간 동안 매진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했다. 퇴근 후부터가 가장 고비였다. 아니, 이미 그전부터 무엇을 먹고자 하는 마음에 시동이 걸린다. 그렇다고 저녁을 안 먹을 순 없다. 간혹 퇴근하자마자 바로 걷기를 하러 공원에 간 적이 있다. 그럴 땐 배가 두배로 고파지기도 하고 일의 고단함과 운동 후의 뿌듯함을 알코올로 다스리기에 최적의 조합이었다. 결국은 의지다. 배가 부르면 술생각은 사라졌기에 저녁 먹기까지만 잘 견디면 되었다.
이제버티는 단계는 지났다. 자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기 전부터 오늘 쓸 글을 생각한다. 글쓰기와 문장수업이 있는 날은 시간이 더욱 촉박하다. 걷기도 해야겠고 글도 쓸 욕심만 생긴다. 이제는 왜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시간조차 아까워지려 한다. 어차피 계속 쓸 테니까. 무엇을 어떻게 쓸 건지에 대한 생각만 하기로 한다.
금주하는 동안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적은 내부에 있다고 가족모임에서 큰언니가 위스키를 가지고 왔다. 맛만 보라며 권유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나를 잘 안다. 한 번의 맛으로 술술 넘어가기 일쑤니까. 앞으로도 몇 번의 고비가 오겠지만 잘 넘겨보겠다.
오늘까지 백일금주인증을 한다. 계속 이어갈지 아니면 다시 혼자만의 다짐으로 가야 할지 기로에 섰다. 아직은 백 프로 안심할 수 없다. 인증이라는 방패막을 잘 이용하여 목표에 도달한다. 금주가 목표는 아니었다. 금주는 단지 쓰는 일상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만약 시작부터 앞으로 절대 먹지 않겠어라고 다짐했다면 며칠 못갔을 것이다.조금씩 날짜를 늘려갔다. 글쓰기도 금주도 다이어트든 처음이 가장 힘들다. 일주일만 잘 버텨보자했다.나에겐 금주가 최상의 난이도였다. 이젠 감히(?) 금주 따위라고 쓰고 다음 대상은 글쓰기다.글을 쓰기 위해 술 마시는 시간조차 줄이기 위함이니까. 지금껏 술을 통해 나와 친해졌다면 이제는 글로 인해 나를 알아가려 한다. 술보다 글에 취하는 시간을 늘려보고 싶다. 술은 순간의 나로 남지만 글은 미래의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백일동안 금주한 보람이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