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아홉 시가 넘었는데 걸음수를 보니 천보가 안된다. 오후에 시댁행사로 칠순잔치 다녀온 게 다다.걷기든 실내자전거든 뭐라도 움직여야되는데 만사가 귀찮다. 저녁시간도 늦었고 남편도 상갓집에 갔다.추워서 걸으러 나가지 않는 이유를 초6, 중2아이 둘만 놔두고 나갈 수 없다며 애써 모성애를 끌어당겨본다.설연휴 동안양가집을 다녀왔다.가방에 책은 부지런히 넣고 다녔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오늘은 가만히 앉아 책 속으로 눈동자만 굴리고 싶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자연스레 해야 하는 것임을 안다. 운동도 안 하면 글쓰기처럼 해야 할 일을 하지않은것만 같다.몸은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마음이 계속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 이유는 SNS에 운동인증을 하기 때문이다.
매일 운동인증하던 게 있어서인지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 움직이지않으면 내 몸은 앞으로 더 움직이기 싫어할 것을 안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인증도 있지만 빵과 라테커피 때문이다. 집에 커피머신을 들여놓은 날부터 이제 먹고 싶을 때마다 라테를 마신다. 낮이든 밤이든 마음만 먹으면 마실 수있게 되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얻게 된 건 정신건강과 뱃살을 함께 가질 수 있었다. 기분이좋으면서도왠지모를 찝찝함. 그렇다고 커피 향과 부드러운 카스텔라의 유혹을 떨치기엔 금주까지 하는데 이것마저 끊기엔 너무가혹하다. 이런 날이 쌓여갈수록 더 운동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대로 눌러앉으면 책은 더 읽겠지만지방도같이 축적된다.앉아만 있는다고 책내용이 그대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일단 자전거 탈 신발부터 신는다.
오늘도 라테와 크림빵을 흡입했다. 더 이상 운동을 미룰 수 없어 시간을 정해두었다. 아홉 시 반이면 벌떡일어나 실내자전거를 타겠다고 결심했다. 시간이 다가오지 않길 바랐지만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갔다. 스피드스피닝자전거는 서서 타는 운동기구다.
몸은 힘들지만 눈은 즐겁다. 이때만큼은 마음 편히 TV나 유튜브를 볼 수 있다. 글을 쓰고부터는 TV시청도 많이 줄였다.아무것도 하지 않고예능만보기엔 왠지 시간낭비인 것 같았다. 할 일을 다해놓고 보면 차라리 낫다. 할 일은 끝이 없다는 게 문제다.스피닝자전거를 타면서 미우새를 봤다. 이동건배우가 절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술 앞에서 고민하는 당사자를 보니 그 심정 너무 잘 알기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이동건은 결국 절주결심이 무너져 순식간에 인삼주를 원샷하고 말았다. 그 어려운 금주와 동시에 운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더 뿌듯하게 느껴졌다. 한 시간 동안 페달을 쉬지 않고 돌리다 보니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땀이 나도록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글감이 날아갈까 봐 중간중간 기록도 놓치지 않는다.
운동 후 샤워는 역시나 하길 잘했다는 결론을내려 준다.운동은 해야겠고 마음이찝찝하다면 애써 모른 척하지 말고 일단 움직여보자.시작은 억지일지 몰라도 오늘도 '했다'라는 두 글자가 내일 또 나를 일으켜 세워 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