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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Feb 12. 2024

억지로 운동을 시작했더니


밤 아홉 시가 넘었는데 걸음수를 보니 천보가 안된다. 오후에 시댁행사로 칠순잔치 다녀온 게 다다. 걷기든 실내자전거든 라도 움직여야 되는데 만사가 귀찮다. 저녁 시간도 늦었고 남편도 상갓집에 갔다. 추워서 걸으러 나가지 않는 이유를 초6, 중2아이 둘만 놔두고 나갈 수 없다며 애써 모성애를 끌어당겨본다. 설연휴 동안 양가집을 다녀왔다. 가방에 책은 부지런히 넣고 다녔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오늘은 가만히 앉아 책 속으로 눈동자만 굴리고 싶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자연스레 해야 하는 것임을 안다. 운동도 안 하면 글쓰기처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만 같다. 몸은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마음이 계속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 이유는 SNS에 운동인증을 하기 때문이다.






매일 운동인증하던 게 있어서인지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내 몸은 앞으로 더 움직이기 싫어할 것을 안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인증도 있지만 빵과 라테커피 때문이다. 집에 커피머신을 들여놓은 날부터 이제 고 싶을 때마다 라테를 마신다. 낮이든 밤이든 마음만 먹으면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얻게 된 건 정신건강과 뱃살을 함께 가질 수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함. 그렇다고 커피 향과 부드러운 카스텔라의 유혹을 떨치기엔 금주까지 하는데 이것마저 끊기엔 너무 가혹하다. 이런 날이 쌓여갈수록 더 운동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대로 눌러앉으면 책은 더 읽겠지만 지방도 같이 축적된다. 앉아만 있는다고 책내용이 그대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 일단 자전거 탈 신발부터 신는다.



오늘도 라테와 크림빵을 흡입했다. 더 이상 운동을 미룰 수 없어 시간을 정해두었다. 아홉 시 반이면 벌떡 일어나 실내자전거를 타겠다고 결심했다. 시간이 다가오지 않길 바랐지만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갔다. 스피드스피닝자전거는 서서 타는 운동기구다.

몸은 힘들지만 눈은 즐겁다. 이때만큼은 마음 편히 TV나 유튜브를 볼 수 있다. 글을 쓰고부터는 TV시청도 많이 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능만 보기엔 왠지 시간낭비인 것 같았다. 할 일을 다해놓고 보면 차라리 낫다. 할 일은 끝이 없다는 게 문제다. 스피닝자전거를 타면서 미우새를 봤다. 이동건배우가 절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술 앞에서 고민하는 당사자를 보니 그 심정 너무 잘 알기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이동건은 결국 절주결심이 무너져 순식간에 인삼주를 원샷하고 말았다. 그 어려운 금주와 동시에 운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더 뿌듯하게 느껴졌다. 한 시간 동안 페달을 쉬지 않고 돌리다 보니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땀이 나도록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글감이 날아갈까 봐 중간중간 기록도 놓치지 않는다. 






운동 후 샤워는 역시나 하길 잘했다는 결론을 내려 준다. 운동은 해야겠고 마음이 찝찝하다면 애써 모른 척하지 말고 일단 움직여보자. 시작은 억지일지 몰라도 오늘도 '했다'라는 두 글자가 내일 또 나를 일으켜 세워 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시간 61:27             칼로리 327.8             거리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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