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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Feb 10. 2024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오전에 시댁에서 내일 쓸 설차례음식을 준다. 오후에는 우리 집으로 가기 전 친정에  다른 물건을 갖다 주러 가는 길이었다. 우리 집과 시댁, 친정은 삼각형 구조로 각각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동서네도 시댁이랑 가깝다. 나의 둘째 언니도 우리 집 근처에 산다. 울산이 옆동네인 듯 거의 한두 달에 한번 오는 큰언니도 자주 보는 편이다. 명절분위기는 딱히 찾아볼 수 없다. 런 점에서 남편은 볼멘소리를 했다.



어릴 때는 명절만 기다렸는데 어른 되니 명절 같지도 않고 내 시간도 없고 이래서 설 추석이 싫다.


차에서 몇 시간씩 보내는 것보단 낫잖아.


자주 보니까 반갑지도 않고 그냥 그렇다.


오빠는 어머니 만나면 반가워하면 되지. 나는 우리 엄마 보면 반가워해야지.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남편은 웬일로 수긍하는 듯 끄덕이며 맞네라고 했다. 내가 말해놓고도 제법 그럴듯한 발상에 꽤나 흐뭇했다. 연휴기간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집에 비하면 복에 겨운 소리.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집을 생각한다면 비교가 되었다. 지금 놓인 상황에서 감사함을 잊으면 당연한 게 되고 당연함은 무료해진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늘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며 동요되지 않으려 다.








엄마집에 들렀다. 울산 큰 언니네가 와 있었다. 언니와 첫째 조카는 외출했고 형부와 둘째 조카, 부모님이 계셨다. 올해 고3인 둘째 조카는 오랜만에 봤다. 게임을 즐겨하던 조카가 공부할 거라며 문제집을 꺼내길래 깜짝 놀랐다. 키가 너무 커서 분명 내 앞에 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가워 혼자 재잘거렸다. 내일이면 또 올 건데 하면서 짧은 시간 머물고는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에 전을 계속 주워 먹었더니 속이 니글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기다리다 브런치스토리에 영작가의 글을 읽던 중 '지금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아! 맞다! 우리 엄마 보면 반가워해야지 했는데 오랜만에 본 조카만 챙겼다. 익숙함에 묻혀 버렸다.



반가운 표현을 생각하며 목소리 톤은 솔을 유지하며 '내 왔으예~~'하며 꼭 안아주려 했었다. 마를 보는 순간 늘 그렇듯 솔은 레로 나왔다. 쓸데없는 잔소(다 엄마를 위한)도 덤으로 나왔다. 불과 몇 분 전에 나눴던 대화조차도 그새 깜박해 어차피 내일 또 볼 건데 하며 무심히 버렸다. 평소 같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한 일을 남편에게 난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며 큰소리로 말한 게 생각나 헛웃음이 났다.








행동과 생각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지라고 해도 금방 잊힌다. 나도 남편과 같은 생각이었던 거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늘 하던 대로 행동하게 된다. 돌아서면 자주 깜박하는 이유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다.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제일 중요한 것인데.



별일 아닌 일을 별일로 만들려 한다. 설날 당일 새벽에 글을 쓰고 있다. 음력으로 1월 1 일인 만큼 다짐하기 딱 좋을 때다. 하루에 하나라도 꼭 해야 할 일을 저장해 둬야겠다. 깜 박을 방지하는 데는 알람만큼 유용한 게 없다. 그중 오늘 오후엔 반드시 팔순 된 우리 엄마를 꼭 끌어안고 올해도 무탈하고 건강하라고 전해야겠다. 입이 떨어진다면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세상 무뚝뚝한 셋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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