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시댁에서 내일 쓸 설차례음식을 준비했다. 오후에는 우리 집으로 가기 전 친정에과일과 다른 물건을 갖다 주러 가는 길이었다. 우리 집과 시댁, 친정은 삼각형 구조로 각각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동서네도 시댁이랑 가깝다. 나의 둘째 언니도 우리 집 근처에 산다. 울산이 옆동네인 듯 거의 한두 달에 한번 오는 큰언니도 자주 보는 편이다. 명절분위기는 딱히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남편은 볼멘소리를 했다.
어릴 때는 명절만 기다렸는데 어른 되니 명절 같지도 않고 내 시간도 없고 이래서 설 추석이 싫다.
차에서 몇 시간씩 보내는 것보단 낫잖아.
자주 보니까 반갑지도 않고 그냥 그렇다.
오빠는 어머니 만나면 반가워하면 되지. 나는 우리 엄마 보면 반가워해야지.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남편은 웬일로수긍하는 듯 끄덕이며맞네라고 했다. 내가 말해놓고도 제법 그럴듯한 발상에 꽤나흐뭇했다.연휴기간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집에 비하면 복에 겨운 소리다.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집을 생각한다면 비교가 되었다.지금 놓인 상황에서 감사함을 잊으면 당연한 게 되고 당연함은 무료해진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늘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며 동요되지 않으려 했다.
엄마집에 들렀다. 울산 큰 언니네가 와 있었다. 언니와 첫째 조카는 외출했고 형부와 둘째 조카, 부모님이 계셨다. 올해 고3인 둘째 조카는 오랜만에 봤다. 게임을 즐겨하던 조카가 공부할 거라며 문제집을 꺼내길래 깜짝 놀랐다. 키가 너무 커서 분명 내 앞에 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반가워 혼자 재잘거렸다. 내일이면 또 올 건데 하면서 짧은 시간 머물고는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에 전을계속 주워먹었더니 속이 니글거려컵라면에 물을 부었다.기다리다브런치스토리에 윤다서영작가의 글을 읽던 중 '지금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아! 맞다! 우리 엄마 보면 반가워해야지 했는데 오랜만에 본 조카만 챙겼다. 익숙함에 묻혀 버렸다.
반가운 표현을 생각하며 목소리 톤은 솔을 유지하며 '내 왔으예~~'하며 꼭 안아주려 했었다.엄마를 보는 순간 늘 그렇듯 솔은 레로 나왔다. 쓸데없는 잔소리(다 엄마를 위한)도 덤으로 나왔다. 불과 몇분 전에 나눴던 대화조차도 그새 깜박해 어차피 내일 또 볼 건데 하며 무심히 나와버렸다. 평소 같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한 일을 남편에게 난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며 큰소리로말한 게 생각나 헛웃음이 났다.
행동과 생각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지라고 해도 금방 잊힌다. 나도 남편과 같은 생각이었던 거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않으면 늘 하던 대로 행동하게 된다.돌아서면 자주 깜박하는 이유도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다.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제일 중요한 것인데.
별일 아닌 일을 별일로 만들려 한다. 설날 당일 새벽에 글을 쓰고 있다.음력으로 1월 1 일인 만큼 다짐하기 딱 좋을 때다. 하루에 하나라도 꼭 해야 할 일을 저장해 둬야겠다. 깜박을 방지하는 데는 알람만큼 유용한 게 없다. 그중 오늘 오후엔 반드시 팔순 된 우리 엄마를 꼭 끌어안고 올해도 무탈하고 건강하라고 전해야겠다. 입이 떨어진다면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세상 무뚝뚝한 셋째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