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Feb 18. 2024

10년 동안 매일같이 마신 술

금주 129일 차


<미운 우리 새끼>프로그램을 보았다. 이동건배우가 아침부터 술병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10년 동안 매일같이 마신 술을 버리고 있(그 아까운 걸) 이 모습만 보면 굳은 결심이 화면 밖으로까지 느껴진다.


맥주를 만든. 도라지차 보리차 탄산수를 섞는다. 관심이 간다. 색이 그럴듯하다. 그냥 무알콜 맥주를 마시지. 나도 무알콜맥주를 마셔보았지만 처음에만 좋았지 이내 그 느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맥 빠진다 해야 할까..


'그래... 없이도 즐거울 수 있어'란 자막이 나온다. 이건 혼자만의 다짐이다. 처음엔 결코 즐거울 수 없다.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같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 나름 금주선배로서 처음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일주일이 고비다. 생각을 안 하려 할수록 더 생각이 난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을 공허하게 보낸다면 술생각은 더욱 간절하게 된다.


절주 하려는 의지가 이제 겨우 30시간 된 사람이 술자리에 가다니 그것도 술을 좋아하는 절친들에게.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뜻은 아닐 테지만 테스트가 너무 빠르다. 패널로 앉아있는 엄마들과 나조차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늘 먹던 소주 맥주는 잘 지만 인삼주 등장에 눈이 커지더니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탄식의 소리가 들린다. 모두의 머리 위로 화산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마음먹는 대로 바로 주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알코올중독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금주를 하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은 조절이 안 돼서 다짐을 한다. 금주선언을 하더라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설연휴 전 날 10년 동안 알고 지낸 동네지인들을 만났다. 이제는 모임에서도 잘 버틴다. 틴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괴롭지는 않다.

 

나는 지금 술을 먹지 않아도 즐거운가? 아직도 완전 미련을 버리진 못했다. 막 즐겁지도 않다. 단지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게 와닿기에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내가 술을 먹고 싶은지 안 먹고 싶은지 질문은 할 수 있지만 크게 의미가 없다. 먹고 싶다 한들 안 마실 거 아니까. 마음속으로 정한 그날이 있다.


오늘로 금주한 지 129일 차. 그렇다. 그 쓸데없는걸 세알리고 있다. 나를 위한 의미부여다. 눈에 보이는 숫자로 매일의 인증으로 하루하루를 지켜내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50일 정도 금주를 한 적이 있다. 때는 단지 금주 만이 목표였다. 술 외엔 다른 이유가 없었다. 허술한 목표가 한번 무너지더니 다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로 금주를 하고 있다. 다시 돌아가기엔 애써 지켜온 시간들이 단번에 물거품이 될 것만 같다. 가끔 음주를 즐겨도 될 텐데라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쓰려고 작정한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