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Mar 07. 2024

행복의 요소


커피 한잔의 여유에 걸맞은 빵을 가위로 잘랐다. 옥수수 크림이 빵 으로 삐죽 나오는 것이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새어 나오는 것만 같다. 오랜만에 거실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얼마만의 여유로움인지.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영혼을 기쁘게 하는(유튜브제목) 피아노소리마저 나를 위한 작은 연주회 같다. 커피 한 모금에 문장 하나를 곱씹는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이다. 눈치 없이 빠른 초침은 찍 소리도 없이 스르르 잘도 지난다.   


자잘한 걱정거리들은 잠시 구겨두고 지금을 온전히 만끽한다. 현재가 너무 감사하니까. 아침에 해야 할 일을 했더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무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에서 오로지 내 생각, 느낌,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는 금이 좋다. 내가 만들어낸 행복의 요소들만 바라본다.






중2 첫째의 알람이 두 번 울렸다. 피곤했던 큰아이는 바로 일어나지 못했고 일곱 시에 출근하는 아빠의 말에 눈을 떴다. 등교시간으로 봐선 아직 여유롭지만 본인이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늦게 일어났다.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 혹여나 기분이 상해 아침밥을 패스할까 봐 화장실 문밖에서 조심히 물어본다. 어제 미리 정해놓은 시판용 볶음밥을 줄까 사과 줄까 물어보니 밥 볶아 달란다.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아침은 그렇다. 프라이팬에 볶음밥을 넣고 이리저리 익을 때까지 밥알을 굴린다. 달걀도 두 개 구웠다. 예쁘게 구우려고 애쓴다.(어제 계란을 못 구웠다는 소릴 들었다;) 첫째랑 둘째의 밥그릇 위에 구워진 계란을 하나씩 올려주었다. 밥이 많다는 큰딸. 먹을 만큼만 먹고 남기라고 했다. 아이가 등교를 한 후 싱크대를 보니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이거지. 흐뭇하다. 설거지할 맛 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영어영상을 트는 둘째 역시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비록 기업의 손을 빌렸지만 굶고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둘째가 나갈 준비를 한다. 현관문 앞에서 배웅을 하며 머리 위 하트를 만들었다. 6학년 둘째도 똑같이 하트를 그린다. 이내 두 손 모아 하트, 엄지손가락 하트 3종세트를 날린다. 주고받는 하트 속 몸짓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등굣길이 따뜻했으면 한다.


예전 같으면 같이 등굣길을 나서서 공원 한 바퀴를 돌았을 테지만 그럴 여유보다는 조용한 정적을 느끼고 싶었다. 얼른 설거지를 하고 미리 돌려놓은 빨래를 다. 눈에 거슬리는 물건들은 대충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정돈된 거실을 보며 앉아있으니 모든 게 평화롭다. 아침에 해야 일을 끝낸 기분이다. 특히나 아이들 아침 주는 게 나에게 가장 큰 거다. 당장의 행복은 엄마의 손 끝과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분명 무엇을 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크게 티 나지 않는 오전이었다. 벌써 여섯 시간이나 지난 게 믿기지 않는다. 창문 열기조차 엄두가 안나는 모양새지만 이곳에선 상관없다. 모든 것이 흡족하다. 씻고 준비해서 카페 가는 시간도 아깝다. 태양이 구름이랑 숨바꼭질하느라 꼭꼭 숨어 버렸다. 아무렴 어떨까, 그런 모습 자체도 좋은걸. 간혹 얼굴을 내밀어 우리 집 거실 안까지 환하게 비추어 주는 찰나마저 뭉클하다.



작은 변화♡


하교를 한 둘째에게 전화가 온다.

(진단평가가 있던 날)

"나 시험 망한 거 같아"

"그래, 잘했어(?)~ 고생했어"

마음의 평화에서 나온 말이랄까. 직장에서 받지 않아 다행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계단으로 올라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