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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r 10. 2024

중2와 잡기놀이


배가 두리뭉실하게 만져질 만큼 든든한 저녁을 먹었다. 갈수록 김밥 만드는 실력이 늘고 있는 남편은 한번 먹으면 자꾸 손이 가는 마성의 참치김밥을 만들어 낸다. 참치와 마요네즈로 살짝 느끼할 수 있는 부분을 매콤한 신라면으로 엇나가지 않게 잡아주었다. 그러니 배가 안 부를 수가 없다.


오늘따라 각자 끓이고 싶다는 중2와 초6


남편과 나는 산책을 자주 나간다. 배만 부르면 기어이 눈을 마주친다. 문제는 같이 먹은 초6과 중2딸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거다. 같이 나가자고 했다. 이대로 눌러앉아있다간 라면과 김밥이 강강술래로 돌고 돌아 풍선만큼 부풀어질지 모른다. 이 년 전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따라나서던 아이들이 이제는 꿈쩍을 안 한다. 가기 싫다며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여 앉아 집중도 안 되는 영어프린트를 보는 척한다. 둘째도 언니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같은 전략으로 눈을 피한다. 요것들 보소.


 

사실 같이 나가는 것보다 남편과 둘이 걷는 게 더 속 편하다. 데리고 나가면 입이 허전하니 막대사탕 하나 물려달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또 입맛을 연신 다신다. 에라 그냥 둘이 집에 있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순간 남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얼른 옷 안 입고 뭐 하고 있냐며 나날이 튼튼한 포동이가 되어가고 있는 첫째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제 머리도 굵어져 예전같이 잘 따르지 않는 아이다. 아담한 나의 키와 몇 센티 차이도 안 나면서 엄마보다 더 크다며 큰소리 떵떵 치는 중2다. 키만 크면 다행이지만 고만고만한 차이에 몸무게는 보다 5킬로나 더 나가는 게 영 탐탁지가 않다. 이대로 가다간 60킬로를 넘나드는 건 시간문제. 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오르막을 보면 뛴다. 평지는 걷는다. 둘째는 내 옆을 붙고 첫째는 아빠와 걷는다. 겨우 나올지언정 막상 걷기 시작하면 수다쟁이가 되는 딸에게 최대한 영혼 있는 끄덕임으로 응답한다. 사춘기아이의 뇌를 스치지 않는 말 한마디에 속이 상할 때도 있다. 한 번은 같이 걷다가 수가 틀어져 혼자 빠른 걸음으로 먼저 걸어온 적도 있다.


 

공원을 크게 다 돌 무렵이면 커다란 운동장이 나온다. 만보도 채울 겸 한 바퀴 걷자고 했을 뿐인데 둘째가 잡기놀이를 하자고 한다. 이런, 아직도 잡기놀이라 생각만 해도 숨차다. 허허벌판 운동장에서 잡기놀이를 하면 숨이 넘어갈 동안 뛰어다녀도 술래가 바뀌지 않을 수가 있다. 정중앙에 정사각형 공간이 있고 양옆으로 기다랗게 연결된 길이 다. 바깥으로 나가면 아웃이 되니 이 공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고 정해두었다. 정사각형 공간에서 술래를 따돌리지 못하면 막다른 길로 가게 된다. 잡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힘껏 뛴다. 달리는 순간은 진심이다. 중2딸도 안 잡히려고 애쓴다. 막 다른 길로 가게 되면 밖으로 나갈 수 없기에 진짜 빠르지 않은 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술래와 도망자의 쫓고 쫓기는 시간 속에 지방도 같이 태워 보낸다. 






초6과 중2와 잡기놀이를 한다. 내년이면 우리 집에도 초등학생이 없다. 더 이상 잡기 놀이하자고 할 아이도 없을 것 같다. 막상 하자하면 귀찮지만 하는 순간만큼은 아이와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마지막 한 해가 아닐까 싶어 아쉽기도 하다. 공원에 같이 나가는 것도 미션인데 이제 같이 뛰어놀 친구도 아이도 없다고 생각하니 좀 씁기도 하다. 가족과의 산책은 포기할 수 없다. 언제 다시 같이 뛸 날이 올지 모르니 남편과 나는 여전히 배가 부르면 걸으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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