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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r 01. 2023

도시숲과 함께 나에게 취한다.


"걷고 올게"

그저 편한 복장을 하고 이어폰을 챙긴 후 그냥 나온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오로지 나를 위한 걷기를 시작한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에  걸을 때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각각의 매력이 있어 꼭  시간에걸으세요라는 법은 없다.  걸을 수밖에 없는 3색의 매력이 있다.

새벽공기를 맡으며 걷는 길은 하루의 시작과 함께  긍정의 에너지를 한 몸에 받는다. 점심의 걷기는 따사로운 햇살을 듬뿍 받으며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제대로 흡수한다.  저녁의 걷기는 하루를 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해 준다. 언제 걸어도 이상할 일 없고 옳고 그름 없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이 길이 참으로 좋다. 마음 불편할 리 없는 이 길이 좋다.




저녁에 걸어야 만날 수 있는 친구 같은 아이가 있다.  나에게 착 달라붙어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하는 내 분신과 같은 존재다.  그 모습을 계속 보여주지는 않는다. 가로수 등불이 내  뒤를 환히 비추면  어느새 스르르 내 앞으로 다가와 나의 본모습은 이렇다고 이야기한다. 그래놓고  어두운 길로 들어가면 이내  꽁꽁 숨어버리기도 하는 수줍음 많은 아이.  너에게 혹은 나에게 이야기하듯  너도 밝은 곳좋아하는구나 어딘가 숨지 말고 나오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뭐든지 하란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그 아이는   그림자.



미운행동을 하게 되면 금방 들켜버린다. 때리는 시늉을 해본다. 무섭다. 울고 있으면 어느새 나와 같이 어깨를 들섞여준다.  마음이 어떻든 간에  변함없이 함께 걸어주는 이 아이덕에 오늘도 외롭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정말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해가 진 저녁길을 걷고 있자니 검은색 도화지에 금색물감을  뿌려놓은 것만 같다.  반짝이는 별들이 수없이 콕콕 박혀있는 것 같다.  자연스레 길이가는 이곳은  하늘이 아닌 걷고 있는 도시숲공원.

떼려야 뗄  없었던 절친을 만난 느낌이다. 추운 겨울 동안 내 몸 사리느라 외면했던 공원  너무 그리웠나 보다. 이렇게 나오자마자 할 말이 많았던 거 보면.  언제 나와도 늘 그 자리에 있어주고 반겨주는 곳이 있어 좋다.  그 냄새와 느낌을 잊지 않는다.  잔잔한 작은 호수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한결 차분해진다.




미세먼지 벗겨 난 에 마스크도 벗어본다. 코가 살짝 시려 콧물이 밖으로 나올 대기준비를 하고 있지만  기분만큼은  상쾌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심봉사 눈이 번뜩 뜨일 만큼의 눈부신 공원 속 조명이 앞 길을  화려하게 비춘다. 마치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에 온 듯하다. 드레스와 구두 없이  체육복과 운동화만으로 무도회장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이 있어 또 세상 복에 겨운 만끽을 누려본다.




오랜만에 나온 보람이 있다. 글이 막 술술 나온다. 몇 줄 적어놓고  혼자 제대로 자뻑이다.  알코올 한 방울 없이 이렇게 취할 수가 있나.  이러려면 또 내년에 나와야 할까 보다. 잠시 스쳐 지나간 글쟁이다운 나의 모습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에게 반할 뻔. 이 말 나에게 나만 할 수 있다.



깨기 싫다. 계속 걸을까보다.

도시숲과 함께 나에게 취한다.






사진 출처 : 햇님이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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