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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r 07. 2023

미니멀이 시급할 때


한 달 뒤 이사를 간다. 이것보다 더 급할 때가 있을까.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쓰레기더미와 함께 이사를 가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은 버리지 않고 글만 쓰고 있는 나.  지금 버리고 싶은 것은 오로지 짐뿐인 건지 의문이 든다. 그 외 다른 생각으로 버리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건을 버리고 싶은 건지 아님 애초에 버릴 생각이 없는 건지  그렇다고 미련만 가득한 채  덕지덕지 붙은 정들과 추억이라는 이유로  다 짊어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빠른 결단을 내야 할 때이다. 이대로 모든 걸 다 떠안고 간다 생각하면 진심 절망적일 것 같다.


이곳에 미련 가득한 이유를 굳이 대자면

결혼 후 전세 두 집을 거쳐  마련한 생애 첫 내 집마련을 한 곳이다. 5년 동안  아이 초등생활을 함께한 이곳인 만큼  책이며 장난감 나부랭이  잡동사니들이 많다. 특히 물려받은 책들이 한 몫한다.  


첫째 언니와 띠동갑,  둘째 언니와는 열 살 터울이 나기에  조카들의 대물림 책들과 학용품들이 많다. 덕분에 책으로 소비하는 일은 거의 없이 어릴 적 나름 책육아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책육아할 시기는 꽤나 지나 버린  같다.

벌써 중학생이 되어버린 큰아이는 더 이상 책에 몰두할 시간이 점점 없어진다. 겨우 추슬러 남겨진 책들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도 읽어주면 감사할 일이다.

현재 거실전면 책장이 분리되어 이사 후 각자방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가장 비우기 힘들지만 한편으론 정리대상 1순위인만큼 진짜 이것만은 꼭 읽어줬으면 하는 책들로만 남기기로 한다. 어린이집 때 받은 책을 지금 정리한다는 것도 안비밀할게요.


더군다나 이사 갈 곳은 집안에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더 난감한 상황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버리고 정리한담 앞이 깜깜하다. 그렇다고 여태 자칭 미니멀을 하겠다고 속으로는 외쳤지만 위치만 옮겨졌을 뿐 정리된 물건은 . 이제는 진짜 결단을 내야 할 때.






이러곤 시간이 흘러  이사가 이 주 뒤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남편과 함께 마대자루에 지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발목을 붙잡은 묵은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물건들은 내 집에서 나가는 조건을 내세운다.


신혼 초 가전 살 때 받았던 내 취향과 전혀 상관없는 그릇 세트와 접시들. 지금껏 사용했음 됐다. 그리고 10년 넘게 사용하지 않은 그릇들. 이제는 보내주려 한다. 우리 집 같은 공간에서 여태껏 자릿세도 없이 오랫동안 눌러앉아있었구나. 이제 진짜  좋아하는 그릇들로만 함께하기로 한다.


책과 함께 조카들의 옷도 참 많이 물려 입혔다. 받은 옷양에 비해 입는 옷은 한정되었다. 빨고 옷장 안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또 꺼내 입고 그만큼 하나를 입어도 마음에 드는 옷들을 애정 있게 입었다. 구멍 나고 어져 다 늘어난 옷도 편하다고 입는 아이들 덕분에 내복 사는  건 사치였을 만큼  아이들 옷에도 크게 투자 한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안 입는 옷이나 작아져  입게 된 들도 충분한 사랑을 줬기에 후회 없이 버릴 수 있었다.  이제는 제법 자기들만의 스타일이 있기에 원하는 옷만을 구비하면 또 열심히 번갈아가며 닳도록 입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어느새 키와 체격이 나와 비슷해진 첫째는 안 입는 옷이 있으면 자기 달란다. 아침에 손이 잘 가지 않는 분홍후드티 하나를 꺼내주니 바로 입고 등교하는 우리 큰 딸.   덕분에 나는 강제 미니멀하게 생겼다.


집을 정리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너도 나에게 최선을 다했고 나도 너에게  마음을 다해 질리도록 사용한 해진 물건들은 미련 없이 버렸다. 앞으로도 끈끈한 우정으로 배신하지 않을 물건들로만 남긴다. 그냥 한 번씩  마음 떠보는 물건들은  우리 서로 미련 따위 두지 말고 깔끔하게 헤어지자며 선포한다.


정이 많이든 아침햇살 가득했던 우리집 & 일출과 독서를 한번에...이제 안녕


시원 섭섭했던 물건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  장소는 새로운 곳으로 가지만 지나간 추억과 마음만은 그대로 간직한 채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이곳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추억 가득 쌓은 만큼 앞으로의  보금자리에서도 열심히 살아보고자 한다.




지금 버리고 정리한 건 물건뿐만 아니라 지난 내 묵은 마음과 정신들이다. 늘 마음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제자리일 뿐이다.  글을 매일 쓰진 못해도  조금이라도 더 읽고 써야 되겠다는 생각은 아직 한결같다. 새벽에 쓸까, 점심 먹고 쓸까, 퇴근하면  써야지.


지금 쓰지 않으면 이사 가고 쓸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겠지

지금 쓰지 않으면 나중에도 쓰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지금도 쓰고 이사하고도 계속 쓰는 마음이 중요하다.


미니멀로 만들 공간이 있으니 바로 작가의 서랍. 현재 맥시멈상태. 서랍의 글을  미니멀하게 정리하여 얼른  바깥세상으로 발행한 글들로 맥시멈 하고 싶다.



새로운 보금자리..  이제 몸도 미니멀 해볼까


결혼 15년 만에  정수기를 집에 들이던 날.

방문설치해 주시는 기사님을 만나러 독서도 할 겸 커피  잔과 함께 먼저 도착했다.  이사하기 전이라 아직 그렇다 할  물건들이 없으니 빈 공간이 주는 공허함 그 자체만으로 그냥  앉아있어힐링공간이 되었다.



미니멀이 대세인 요즘(유행 지나갔나요?) 정말 물고 늘어져야 할 것은 지난 과거가 아닌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지금 오늘을  글로서 붙잡아야 것 같다. 버리기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 듯, 건강한 몸과 마음  그리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물건들로만 가득 채울 이곳을 진정한 미니멀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곳이다.






사진 출처:제목 픽사베이, 햇님이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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