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Mar 16. 2023

송두리째 사라졌다

응답하라 1653


절단 났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하얀 백지장이 되었다.


테이블 위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드는 순간 미끄러져 떨어뜨렸다. 모서리에 박고 의자에 떨어졌는데 뭘 대수롭지 않게 터치하여 지난 톡을 확인다.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문질러도 응답 없는 너.

아 껐다킬게. 만능대처방법을 써본다. 꺼지지도 않는다. 왜 그래 이러지 마.


나의 일거수일투족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다시피 하는 네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중지손가락 끝에 온 힘을 모아 화면과 대면해도 꿈쩍도 않는다. 어찌하면 좋을까.


당장 무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오늘 뭐 해야 되지? 인증을 할 수가 없으니 운동할 맛도 안 난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없이 사는 하루를 상상해 본  없다.





집은 이사한답시고 미니멀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휴대폰 세상맥시멈  자체다.

하나라도  알기위해 새겨들어야 세상 정보들을 캡처하고 저장했다. 


분신 같은 휴대폰이 있어야 돌아가는 세상. 어느 만큼 운동을 했는지, 읽을 책 목록들, 새겨 들어야 할 명언, 온갖 사이트들의 아이디와 비번들(*을 곁들여 나만의 암호로 저장해 두었다),  지나온 추억과 은밀한 다짐까지 알려줘야지 이렇게 갑자기 입 꾹 다물어버리면 어떡하라는 건지.



어서는 안 될 보물 1호급  아이들과의 기록들 이것만은 안된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하다. 지금 무얼 먹고 있는지 이 느낌 그 찰나의 순간을 하나같이 사진으로 저장해두며  안심했던 지난날이 한순간에 허망해졌다.  평소 자주 보지도 않으면서  못 본다 생각하니 더 보고 싶다.  

과거로 돌아갈 방법은 썩은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어렴풋이 생각나는 기억들 뿐이다.  미리 노트북에 옮겨놓을 걸 후회한다.



일요일이라  방도가 없다.  다행히 공폰이 있어 급한대로 심폐소생하여 카톡만은 살렸다. 카톡은  복구 되었지만(지나버린건 안녕) 혹여나 되지 않았을 상황이었으면 아찔하다. 잃어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만하면 다행이다.



손바닥만 작은 전자네모모든 것 들어 있다.  이곳에 의지했던 내가 한순간의 실수로 추억과 정보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눈 앞에 두고도 볼 수 없다. 아무것도 할  다. 이제 미리미리 대비하자.라고 말은 하지만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겠지.






이번일로 새삼 느낀다. 언젠가는 한번 더 들여다보겠지 하는 것도  미련일 뿐. 현생살기 바빠 지난 과거 들여다 볼 겨를이 없다. 3일동안 두고두고 볼 정보들이 없어 아쉬우면서도 뭔가 후련하다.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수첩도 잘 보관해야 함은 물론!! 2차 멘붕이 오는 일이 없기를. 휴대폰이 아닌 내 머릿속 메모리를 더 확장시키고 싶다(한 줌의 견과류에  의지해서 될 일인가) 날이 갈수록 기억력 저하되는게 너무 아쉽다. 결국엔  전자네모에 또 의지를 할 수밖에 없겠지만.



3일 동안 당장 쓸 운동앱외엔 아무것도 깔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으니 찾지 않게 되더라. 세번 볼거 한번으로 줄었다. 여유가 생겼다. 재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지금을 살아야기에 중고폰을 들였다. 빡빡한 앱들과 사진, 메모와 일정. 지난 4년간의 기록들이 다시 돌아왔다. 숨이 턱 막힌다. 그리고 평소 쓰지 않았던 앱들을 삭제한다. 물건만이 나를 붙잡는게 아니다. 지난 기록들과 각종 앱들이 자기들한번 더 보라고 난리다. 휴대폰도 미니멀을 원한다. 앞으로의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예쁜 아이들은 노트북에 잠시 옮겨두기로 한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미니멀이 시급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