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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살 아빠의 수술

by 햇님이반짝

아빠는 오른쪽 볼 옆에 혹이 생겨 몇 달 전 대학병원에 수술날짜를 잡아놓았었다. 혹보다 전신마취가 더 걱정이었다. 여든의 연세에 입맛도 없다 하고 부쩍 살도 빠져서 수술을 진행하기가 부담되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거라면 안 했으면 좋겠다고 설득했지만 점점 자라는 혹이 신경 쓰인 아빠는 결국 수술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월요일 오전에 수술이 들어가고 한 시간 뒤 끝났을 거라 생각하고 언니에게 물어보니 아직 수술 중이란다. 예상시간보다 지연되자 엄마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단다. 그 후로 한 시간 사십 분 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잘 깼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시름 놓았다. 엄마 목소리도 밝았다.

퇴근 후 언니와 형부랑 아빠를 보러 갔다. 걸어도 다니고 식사도 했단다. 무엇보다 밥을 잘 드셨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아빠도 아빠지만 엄마가 더 걱정이었다. 분명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었을 건데 말만 잘 먹었단다. 저녁 같이 먹으려고 왔는데 완강히 배부르다며 괜찮단다.


목요일 오전에 퇴원을 하였다. 금요일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안 받는다. 한 시간 뒤 해도 안 받는다. 나중에 통화를 하니 역시나 긴장이 풀려 몸살이 났다고 한다. 자다 일어난 목소리였다. 어제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였다.

울산에 사는 큰언니는 토요일 대구에 왔다. 오전에 언니 둘과 엄마, 남편이 두 딸을 데리고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다. 나는 안 갔다. 오랜만에 혼자 있고 싶었다. 마트 좋아하는 남편이 대신 갔다. 장 보고 오는 길에 친정에는 같이 가기로 했다.


오전 내도록 삶은 달걀 두 개와 커피 한 잔 마신 게 다였다. 배가 고파 친정에 오자마자 아빠 수술부위 상태 확인 후 얼른 부엌으로 향했다. 소고깃국도 있고 된장찌개도 있다. 행복한 고민이다. 머 먹지. 둘 다 먹고 싶었지만 소고깃국을 먹기로 했다.

남편이 코스트코에서 초밥이랑 피자를 샀다고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피자야 먹고 싶을 때 언제든 사 먹으면 되지만 소고기 국은 다르다. 소고기 국도 사 먹을 순 있지만 엄마가 끓인 거와는 다르다. 급했는지 팔팔 끓기도 전에 퍼 담았다. 흡입하고 있는데 큰언니와 작은언니 엄마와 조카가 들어오면서 사 온 음식들을 펼쳐놓는다. 피자보다 소고기 국이 더 맛있었다. 입맛이 점점 구수해져 간다. 된장찌개는 집에 갈 때 싸달라고 했다.

할아버지 수술로 한 주 동안 할머니를 보지 못한 둘째는 할머니에게 보고 싶었다고 했단다. 둘째가 나 대신 할머니에게 이쁜 말을 해준다.

배부르게 먹고 한참을 떠든 후 집에 가려고 일어섰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배웅해 주려 나선다. 마음 고생한 엄마를 안아주었다. 수술 전보다 얼굴이 편안해진 아빠를 안아주고 싶었다. 아빠가 나를 더 꼭 안아주었다.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했더니 낯설지만 뭉클했다. 옆에 있는 큰딸이 할아버지를 안는다. 덩달아 남편도 나의 아빠를 안았다. 허그 릴레이인 줄. 그 모습이 왜 찡한지. 손녀와 사위가 당연히 안아줄 수 있는 건데 그냥 고맙게 느껴졌다. 무사히 수술 끝난 것도 감사하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과 이 모든 상황이 감사했다. 한꺼 번에 만나 우르르 헤어지지만 일주일 뒤 또 만날 예정이다. 어쩌다 이번 달 만날 일이 많아졌다. 여든 살 아빠 수술에 모두가 마음 졸였다. 더 이상 수술 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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