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가끔 뛰고 싶었다. 처음엔 2분 뛰는 것도 힘들었다. 인터벌러닝(걷고 뛰기를 반복)을 시작으로 서서히 뛰는 시간을 늘려갔다. 3킬로미터를 일정기간 안에 9일을 인증하면 캐시를 주는 챌린지가 있었다. 캐시로 커피를 사 먹을 수 있다. 커피쿠폰에 눈이 멀어 시작한 이유도 있었다.달리기를 시작하고 목표지점에 도착하는 순간나는 뛰어야 되는 사람이라는 걸느꼈다. 작은 것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실행하며 뿌듯해하는 나에게 반한다.
목요일 휴무날, 여전히 덥고 습하지만 쨍하게 비치는해는없었다.오늘따라바람도시원하고꽃도더 화사해 보인다. 뭔가 시도하기 좋은 날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함을 직감했다. 그깟 습기에 지고 싶지않았다. 유난히 몸을 풀었다.
처음으로10킬로미터 목표를 설정했다. 단한 번도시도해보지 않은 꿈의 거리였다. 틈틈이 달리기를 이어오고 있었다. 뛰다 보니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작은 질문이 구르고 굴러 커져버렸다.
3.5킬로미터를 지날 무렵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러닝기록에 오류문구가 떴다. 기록이 사라졌다. 머리가 하얘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그렇다. 인증이다. 인증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기록을 남기려니 처음부터 다시 뛰어야 된다는 생각에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쉽지만 몸풀기했다 치고 마무리를 하였다.미련만가득 안고 집으로 향했다.조만간10킬로미터를 꼭 뛰어야겠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일요일 저녁 남편과 같이 공원을 나왔지만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뛰기로 결심했고 남편에게는 한 바퀴 걷고 먼저 들어가라는 비장한 말투를 건넸다.
걷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사람 한 사람 추월해 나간다. 은근 쾌감 있다. 앞서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뛰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특별해지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아직 의식이(?) 남아있을 때다. 숨이 벅찰 정도로 힘이 들면 절로 무념무상이 된다. 오로지 정한 목표만 생각한다.
달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체력에 한계를 느끼면서 속도를 줄인다. 너도 나도 내 앞을 추월해 나간다. 누구를 뒤쫓을 생각말자. 내가 정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된다. 잠시걷고 있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나만의 속도로 뛰어갈 것이다.
8킬로미터를 지날 무렵 뒤에서 달리기 하는 그룹이 따라오는 것을 감지했다. 혼자만 아는 작은 승부욕이 새어 나왔다. 추월당하고 싶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내었다. 내리막길이어 속도를 더 낼 수 있었다.몸은 앞섰지만 마음은 진 느낌이었다. 이들은 뛰면서도 대화가 가능하였다.
이미 지칠 때로 지쳤지만 혼자만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때 나를 가로질러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웃통을 벗은 탄탄한 근육의 상체가 눈길을 끌었다. 뒷모습에 이끌리듯이 따라갔지만 더는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달리면서 한 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함께 뛴 그들의 도움으로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은 기록에 흡족했다.
나와 한 수많은 약속들중 하나를 지켰다.이 문장을 쓰고 싶었다.
글을 쓰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면서도 주춤하게 된다.인생과 글쓰기는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는 점이 닮았다.잘 가고 있는지 두고 온 건 없는지 돌아볼 수는 있지만 결국은 나아가야 한다. 달리기는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밖으로 나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모한 도전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조금씩 욕심을 내어본다.
10킬로미터를 뛰고 나니 몸이 축났다. 미련하게 뛰었다. 달리고 있으면서도 다시는 뛰나 봐라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오기가 났다. 해보겠다는 집념도 사라지지 않았다.
크든 작든 살면서 내 의지로 무언가 시도해 본다는 자체가 의미 있다. 보통의 일상 속에 나에게 기회를주었다. 다른 이가 아닌 내가 주는 기회와 도전을 놓치지 않으려한다. 생각만 하던 10킬로미터 달리기를 실행했다. 된다. 되는 거였다. 완주만으로 끝이 아닌 무엇이든 의미 있는 시도를 계속 이어가 보아야겠다.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