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고 처음 맞이하는 평일 휴무일이다. 두 달 전만 해도 둘째 등교할 때 같이 나와 공원 한 바퀴를 돌고 샐러드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
일곱 시에 의식은 있었지만 운동은 무슨 잠이 고파 이불과 떨어질 수가 없었다. 초6과 중2 두 딸은 내가 깨워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람을 듣고 일어난다. 어제저녁 미리 사둔 샌드위치도 있어서 알아서 먹고 나갔다. 미안하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소리를 꿈에서 들었다.
아홉 시가 돼서야 일어났다. 더 이상 누워있다간 오전시간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아이들 없을 때 먹는 라면과 TV 보는 맛이 있다. 평일엔 저녁 먹을 때만 가끔 TV를 보지만 진짜 보고 싶은 '나는 솔로'나 '고딩엄빠' 같은 프로는 보지 못했다. 이마저도 퇴근 후 밥 먹고 걷고 책을 읽거나 글 좀 쓰려면 자정이다.
여유 있게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이다. 채널을 돌리다 '나는 솔로' 프로그램을 보았다. 돌싱 편이다.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라면은 이미 뱃속에서 불고 있었다. 상까지 옆으로 제쳐두고 베개에 등을 기대었다.
출연진들은 직업도 사는 곳도 종교도 다르다. 아이도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이별의 아픔도 담고 있다. 여자 출연진들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혼자서 악착같이 일하며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같이 눈물을 흘렀다. 직업과 경력은 내가 원했고 노력을 들여 이루었지만 사람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 많다.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더 신중해야 한다. 결실을 맺어서 끝이 아닌 계속해서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적다 보니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바라보다 아차 싶었다. 점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다행히 돌려놓은 세탁기의 종료음이 울려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햇빛이 쨍쨍한 옥상에 수건을 널었다. 저녁에 빳빳한 수건을 갤 생각에 흐뭇해졌다. 빨래 잘 되는 거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주부 다 됐다.
수건 세탁한 거 외에는 오전 내도록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운동, 청소, 독서, 쓰기도 아무것도 안 했다. 공허했다. 이제는 쉬는 날도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압박이 있다. 오전에 푹 쉬었으니 오후에 끄적일 수 있었다.
'하와이 대저택' 유튜브에서 '행복은 느끼는 사람이 느낀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나는 솔로'에 나온 출연자들도 행복을 찾기 위해 출연한 것이다. 다른 사람 사는 거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미묘한 감정사이를 파고들게 된다. 그나저나 어느 커플이 결혼까지 가게 된 건지도 궁금하다. 정규방송을 못 보는데 다음 주도 오전에 TV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결론만 볼까 보다.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누구도 시키지 않은 할 일들이 쌓여있었다. 머릿속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만큼 흥미로웠다. 자기 계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을 알뜰히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글쓰기까지 오게 되었다. 결론은 행복을 위해 달려간다. 바보상자를 들여다보는 동안 행복과 불안이 공존했다. 충분히 잤고 충분히 공감했으며 무언가 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놓치지 않았다.
다음에 '나는 솔로'를 보게 되면 혼란스러운 마음 받아들여 편안히 만끽해야겠다. 이때만큼은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솔로가 될 테니까. 솔로는 자유롭지만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 평일 휴무일 유일하게 솔로가 되는 시간. 무엇을 하든 대가는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