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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Oct 04. 2024

시험 점수가 인생 점수?!


점심을 먹고 직장 뒤편 작은 공원으로 나왔다. 인근 고등학교에 있는 여학생 다섯 명이 쪼그리고 앉아 시험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시험기간인가 보다.

"한문 22점!", "국어 72야! 아오 씨발"

시험 점수 이야기하는데 참 살벌하다. 두 명은 신나게 그네를 타고 세명은 여전히 시험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점수 확인을 끝낸 친구들은 미끄럼틀을 타고 노래도 불렀다. 이 순간만큼은 그저 해맑은 여고생들이었다.


아담한 공원이라 한 바퀴 도는데 2분도 안 걸린다. 그새 여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지나가게 되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고 눈은 핸드폰만 주시했다. 

 "야 평균 20점 나올 것 같아!"  학생이 소리쳤다. 풀밭을 유심히 보던 친구는 곤충을 잡은 모양이다. 냅다 들고뛰는데 네 명의 친구가 비명을 지르며 양사방으로 흩어졌다.




여고생들을 보고 있으니 잠시나마 그 시절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시험 점수가 당장 나의 인생 점수인 줄 알았다.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까. 친구도 가족들보이는 점수대로 나를 판단하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그렇다고 치열하게 공부하여 누구나 원하는 대학을 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갈 수 있는 무난한 대학에 갔다. 딱히 성적 스트레스도 없었던 거 같다. 기대하는 사람도 없고 기대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부모가 되었다. 나의 두 딸이 시험점수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 6학년 때 100점을 받아오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알았다. 중등세계의 점수는 다양했다.  50점을 받아와도 그 이하 점수를 받아와 한 번도 혼낸 적 없다.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하고 싶다. 답한 심정도 안다. 이미 결과는 나왔고 받아들이고 부족한 건 본인이 깨달아야 한다. 공부가 다가 아니지만 부모가 되어보니 할 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수에만 연연하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다. 성적 때문에 딸과의 사이가 틀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공감은 해주되 그 대가는 오로지 딸의 몫이다. 나의 엄마가 그랬듯.




엄마는 이제 확한 답이 있는 시험은 없다. 다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지 없는 대단원의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결혼 후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문제집을 받았다. 두 개의 부록이 들어있다.  부록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부록은 자식이고 문제집은 부모다.  4단원이 있다.

1단원유아기 키우는 시기

2단원초, 중 고등학생 키우기

3단원성인이 된 자녀 내보내기

4단원춘은 다시 시작된다




몸은 힘들지만 가장 행복했던 1단원을 끝내고 현재 2단원 중간 단계다. 현재 부록과 문제집을 같이 풀고 있다. 부록만 바라보기엔 문제집의 진도가 많이 밀릴 것 같았다. 같이 풀어 나간다. 나의 인생 점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 3단원부터는 좀 쉬웠으면 좋겠다. 4단원은 나만 아는 정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시험 점수가 미래를 결정짓는 인생 점수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시험 점수는 학교에서 채점하지만 인생 점수는 나만이 매길 수 있다. 내가 나를 잘 알아주지 못하고 방황하면 시험지에 비가 온다. 어려운 문제는 고치고 또 고쳐서 내 것으로 만들어 간다. 아직도 풀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결국 답은 독서다.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가 오늘 한 일의 결과는 미래 나온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기쁘고 설레는 감정이 뒤엉켜 크고 작게 나타난다. 마흔이 넘으니 조금 알 것 같다. 마냥 꽃길만은 없다는 것을. 나의 두 딸이 꽃길만 걷길 바라지 않는다. 좌절도 해보고 너무 기뻐 세상을 다 얻는 기분도 만끽해 봤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나에게 왔을 때처럼. 나는 옆에서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고 싶다. 거저 얻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더 소중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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