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한테오랜만에 아이들이랑 앞산에 가보자고 했다. 앞산에 가려면 차로 20분 걸리는데지금 가야 가을의 절정을 느낄 수 있을것 같았다. 분명 일요일 아침 여덟 시에 출발하자고 호기롭게 말했는데 눈 뜨니 아홉 시였다. 일찍 갔다 와서 오후에 쉬려고 했는데 의욕이 꺾여버렸다.
아침부터 퍼질러있으면 하루가 나른해진다. 오전에집 앞에 있는 진짜(?) 앞산인두류공원이라도 걷고 오자고했다.한창 아침잠이 쏟아붓는 중2, 초6 두 딸은 아침인지 한밤중인지 분간도 없어 열 시에 겨우 깨웠다.
나: 와 예쁘다
남편: 어디 어디?
나: 그냥 다 예쁜데. 얼마나 예뻐. 찾지 말고 그냥 보이는 곳이 다 이쁘지.
남편과 아이들은 별 감흥이 없어 보이는데 나 혼자 들떠 있었다. 앞산은 못 갔지만 두류공원에는 해발 139m인 금봉산이 있다. 여기라도 올라가자고 했다. 평소 운동할 시간을 통 내지 못하는 첫째를 위해서라도 올라와야만 했다.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했다
둘째가 확답을 기다린다.
2년 전만 해도 공원 가자 하면 오히려 앞장서던 아이들이 이제는 같이 가자고 하면 왜 가야 하며 숙제해야 한다. 음악을 듣게 해 달라. 아이스크림을 사달라. 이런저런 조건들이 따라붙는다. 이렇게 해서라도 같이 나와주는 거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내가 좋아하는 숲 속 길을걸었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자주 오지 못했다. 최대한 천천히 걷고 싶었다.
푸른 나무만 봐도, 둘째랑 눈만 마주쳐도 "어머니는 오늘 너무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둘째가 그 말을 듣더니 극 F라고 한다. F든 T든 다 좋다. 오늘따라 유독 마음이 몽글거렸다. 두 딸도 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산을 오르니 얼굴은 일그러질지언정불만은 쏟아내지 않았다.흥얼거리는 여유는 덤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앞뒤 맥락 없이 무조건 따라와야 한다고 강요하지 못한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방법을 같이 고민하게 된다. 두 딸은 정해진 날짜에 내 키보다 커진 게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부쩍 자라 있었다.오늘이 소중한 이유다.
세잎클로버가 소복이 펼쳐진 길목에서 남편이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옆에 있던 둘째가 말하기를.
네잎클로버는 행운이고 세잎클로버는 행복이에요.
아버지는 행복을 찾아요. 행운은 행복에서 오는 거야.
남편은 아무 말없이 둘째를 꼭 안아주었다.내 마음이 고장 난 듯 뭐라고 설명할 길 없이 벅차올랐다.한 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이 내 앞에서 펼쳐질줄이야.이 순간을 꼭 남겨둬야겠다 싶었다.예전에 네잎클로버에 관한 비슷한 글을 읽었지만 둘째가 아버지에게 직접 전해준 말은 또 다르게 다가왔다.
굳이 차를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오늘 나는집 앞에서행운을 발견했다.내가 만난 행운은 늘 옆에 있어 느끼지 못했던 우리 가족이었다.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오늘의행복한 시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