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이라는 덫에 걸리다
중세라는 기차역을 지나온 근대는 합리성의 시대, 이성의 시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표상했다. 과학의 진보를 앞세워 모든 것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하면서 중세의 무지몽매함에서 벗어났고,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위대한 시대였다. 그러나 실용성을 앞세운 문화는 개성의 발현을 억누르고, 평등을 구현한 화폐는 가치전도현상을 이끌면서 비판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근대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서양의 시대 구분에서 볼 때 현대 바로 직전의 시대를 말합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는 각각 그 시대를 규정하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지요. 중세는 영지(토지) 소유를 중심으로 신분과 지위가 엄격히 나뉘었던 봉건제 사회였고, 근대는 자본주의 태동을 특징으로 한, 신분 구별이 없는 평등한 시민사회 형성이 그것입니다. 사실 각각의 시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는 나라별로 차이가 커서 단순화해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이상하리만큼 ‘근대’의 윤곽은 중세나 현대와 비교하면 훨씬 희미합니다. 시기를 둘러싼 논의가 다양한 것도 이유의 하나고, 또 하나는 인문 담론에서 빈번하게 거론되는 ‘근대’ 혹은 모던, 모더니티의 문제가 시대 구분의 의미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층위에 걸쳐 논의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 담론에서의 ‘근대’는 대략 ‘합리성’의 시대, ‘이성’의 시대, 나아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라는 상징성을 갖습니다. ‘전근대적’인 것이 낡은 것, 권위적인 것이라면, ‘근대적’인 것은 새로운 것, 진보적인 것의 의미로 대별되지요.
“아버지의 그런 사상은, 할아버지가 주장한 전근대적인 가풍에 반발하기 위한 건 물론 아니었다.”_이문구, 《관촌수필》
근대, 근대사회, 근대국가, 근대 시민계급 등 ‘근대’라는 개념이 폭넓게 쓰이는 만큼 ‘전근대’란 말도 자주 쓰이는데요, 전근대는 말 그대로 근대 이전의 색깔을 벗어던지지 못한, 합리적이지 않고, 권위에 주눅 들고 항복하는, 낡고 오래된, 어떤 방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전근대와 비교하면 근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새롭고 멋진, 그야말로 ‘모던’한 시대 혹은 성향입니다.
근대에 대한 시대 구분은 잠시 미뤄두고 보면, 분명히 근대는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합리성으로 무장한 새로움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쪽에서는 마치 ‘전근대’처럼 낡은 것, 고리타분한 것 취급을 받습니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근대에 대한 개념이 흔들리고는 합니다. 근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먼저 시대 구분으로서의 근대를 살펴본 후, 이성과 합리성의 시대로 불리는 근대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듬어보려 합니다.
우리들이 근대의 상(像)을 또렷하게 갖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근대로 볼 것인가 하는 시기 문제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중세 다음이고 현대 바로 전 시대인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16,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를 근대라고 부르려니 머뭇거려집니다. 중세는 대략 9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진 시대인데, 근대는 이렇게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중세 봉건사회가 끝난 다음에 근대가 전개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근대의 출발을 어디서부터 보느냐를 두고 다양한 견해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선 중세의 공동체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나’라는 개인의식이 성립한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에는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이후인 15~16세기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형성과 시민사회 성립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에는, 17~18세기 이후를 근대의 출발로 봅니다. 이밖에 산업혁명이 시작된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를 근대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요. 이 경우에는 중세부터 산업혁명 이전까지를 근세라고 따로 구획지어 부릅니다. 이렇게 근대의 시작을 어떤 관점에서 파악하느냐에 따라 시기가 저마다 달라서 근대에 대해 물어보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럼 이번에는 근대의 일반적인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근대사회의 특성을 꼽으라면 보통 '인간중심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합리주의라는 이념적 토대를 기반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시민사회가 막 형성되기 시작한 때'라고 말합니다. 이 설명을 가만히 뜯어보면 근대의 싹은 봉건제가 끝나면서 펼쳐진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기에 비롯된 인간중심주의, 합리주의적 의식 속에서 움트기 시작해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20세기 중반 무렵 완전하게 성장해 정착된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근대’라는 시대 구분보다 근대 사회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근대의 시대 구분과 관련해 한 가지 더 감안할 점은, 이러한 논의가 서양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서양은 외부의 압력 없이 자체 발전에 힘입어 근대를 열어나갑니다. 하지만 동양의 경우에는 서양에서 촉발된 근대에 대한 충격이 한참 지난 다음에야 작동하기 시작했지요. 즉 동양은 외부의 충격과 압력 속에서 근대를 출발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 쇄국의 문을 열면서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이후 일본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근대화의 과정 자체가 굴절됩니다. 한국사회가 겪는 현재의 여러 가지 정치 사회적 모순의 일차적 원인이 바로 굴절된 근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신의 주무(主務)가 아닌,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한 인간중심주의 사상과 합리주의 정신은 분명 근대 사회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고, 그래서 근대를 이성의 시대, 합리성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합리성의 시대’란 참으로 새롭고 근사한 타이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근대적 합리성이란 어떤 것일까요?
이진경은 《모더니티의 지층들》에서 근대적 합리성의 성격을 ‘계산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근대적 합리성조차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르게 정의된다. (중략) 그러나 그러한 정의 모두를 관통하는 것을 들라면 무엇보다 ‘계산가능성’(Calculability)이란 개념을 들어야 한다.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예측하고자 했던 것이 근대 과학이라면, 그런 과학을 통해 신이나 신비적인 것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 근대적 이성이었고, 그런 계산을 통해 삶의 방식을 통제하고자 했던 것이 ‘근대적 생활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근대라는 배를 출항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17세기 무렵의 과학기술 혁명입니다. 그 전까지 자연현상은 형이상학적인 것 혹은 종교적 절대자의 목적에 따라 좌우되는 신비로운 영역에 속해 있었지요.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획기적인 사건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불리는 지동설이었어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이 그 위에 살며, 달 위의 천상계는 신의 영역이라 믿었던 중세의 우주관이 산산조각 나는 혁명적인 발견이었으니까요. 천동설은 1300년 동안이나 일식과 월식, 행성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예측하개 헤주었고, 그리스도교 이념에도 충실한 이론체계였지요. 그래서 기독교인이었던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자신의 발견에 전전긍긍했습니다.
1616년 로마 가톨리교회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으며, 지동설이 받아들여진 것은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서였어요.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천체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수정 보완한 이후였지요. 코페르니쿠스가 뿌려놓은 과학혁명의 씨앗은 이후 케플러, 데카르트, 뉴턴 등의 과학자들로 이어져 자연현상에서 법칙을 발견해내고 이를 수치화하는 17세기 과학혁명을 추동해냅니다. 신의 손길과도 같았던 물의 힘, 유속의 변화, 바람의 힘과 속도 등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바꾸어냈던 것이죠. 신의 섭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낸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현상의 수학화는 인접 학문과 예술, 사회 전반에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모든 영역에서 수학화, 수치화에 대한 강박이 생길 정도에 이릅니다. 이제 인간의 이성은 과거 신비로운 영역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것들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변환하려 애썼지요. 그리하여 계산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범주 밖에 있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즉 계산가능성이 합리와 비합리를 가르는 기준이 된 것이죠.
이처럼 근대과학 혁명은 계산의 중요성을 인류에게 일깨워주었고, 이러한 계산의 중요성은 시장과 상업이 발전해가면서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제 계산은 인류의 삶의 방식을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된 것이죠.
삶 속에서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킨다.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 아마 ‘당연히 많다.’고 대답할 겁니다. 그런데 샌델의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의 확고한 대답에 의문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텐진에는 사과를 대신해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에 돈을 내면 서먹해진 연인이나 관계가 틀어진 동업자 등에게 대신 사과를 해줍니다. 인간의 중요한 행위인 사과를 돈으로 살 수 있는 놀라운 사회, 현재의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것에도 함부로 가격을 매기는 행위가 결국은 우리들의 삶을 오염시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무서운 가치전도 현상이 괴물과 같은 우리의 현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지요. 꽃 같은 학생들의 안전보다 해운회사의 이익이 먼저 앞서는 사회, 거대한 바다가 아이들을 집어삼키는 그 순간에서조차 돈의 논리가 우위에 선 사회, 세월호 참사는 가치전도 현상이 인간사회를 어떻게 변질시키는지 보여준 참혹한 예입니다.
어쨌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계산가능성’은 합리성을 추동했고, 나아가 화폐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본주의 사회를 열었지요. 드디어 중세를 거치면서 인간은 신이나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누구보다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움과 모던함 속에 불행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중세를 거치면서 영주의 영향력을 벗어난 수공업자들은 하나둘 도시에 모여들게 됩니다. 이들 수공업자들은 상품을 만들어냈고, 자연스럽게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됩니다. 화폐와 시장의 등장은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죠.
여기에도 사람들의 지위나 신분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시장에서 행해지는 교환에서 그들은 단지 한 사람의 상품소유자에 지나지 않았고, 따라서 ‘등가적인’ 존재가 되어야 했다. 화폐가 신분을 넘어서 ‘평등’을 창출했던 것이다!_이진경, 같은 책
화폐가 ‘평등’을 창출했다는 설명이 귀에 쏙 들어옵니다. 근대사회의 또 하나의 특징인 평등한 시민사회는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그 중심에 ‘화폐’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화폐의 등장으로 계산가능성의 의미는 한결 단순해지고, 계산이 인류의 삶을 통제한다는 의미 또한 분명해집니다. 모든 관계와 사물의 가치 평가 중심에 ‘화폐’가 놓이게 된 것이지요. 화폐의 등장으로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것들도 간단하게 우위를 가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사 일, 육아, 농사, 장사 등 인간의 삶을 위한 기본적인 일들은 가치의 면에서 보면 본래 등가의 힘을 갖습니다. 가사나 육아와 장사를 가치평가 하기란 본래 불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화폐’가 끼어드는 순간 이처럼 가치의 우위를 따질 수 없는 것들조차 우선 순위를 매길 수 있게 됩니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일이 집에서 하는 가사노동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돼버린 것입니다. 계산가능성으로 추동된 근대의 합리성은 결국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조차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물론 가치의 우선 순위를 계산가능성, 혹은 화폐를 잣대로 매기는 일은 여러 가지 선택에서 유용성의 힘을 발휘합니다. 복잡한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만일 이러한 매커니즘에 대한 아무런 자각 없이 ‘합리성의 함정’에 안주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아마도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가치들을 어느 순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들처럼. 근대의 합리성이 이끄는 가치전도 현상, 그것은 우리가 각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진짜 괴물의 얼굴일 수도 있지요.
근대를 규정하는 특징이 합리성이 덫에 걸려 어떤 도그마를 만들어내는지, 그에 대한 반작용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다루겠습니다. (끝)
>> 모던, 모더니티, 모더니즘
근대라는 말이 다른 시대구분보다 더 헛갈렸던 이유는, 모던, 모더니티, 모더니즘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예술, 철학, 문학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데, 이를 분간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워서였다. 우선 모던(근대)과 모더니티(근대성)는 ‘새로움’이나 ‘과거와는 다름’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추구를 통해 스스로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모던’ ‘모더니티’는 단순히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현재에도 ‘모던’‘모더니트’는 여전히 ‘새로움’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던’은 시대 구분으로, 말 그대로 근대를 의미할 때가 많다. 하지만 모더니티는 조금 다르다. 근대성이라고 번역되는 모더니티는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적인 사고 체계를 벗어나면서 시작돼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발전돼온 시대정신을 의미한다. 근대성이란 과거와 전통을 중시하거나 이를 어떤 모델이나 규범으로 삼지 않고, 그것과 단절하면서 동시대와 함께 가는 시대정신인 셈이다.
정치, 경제, 철학, 예술 분야마다 근대의 시작을 잡고 있지만, 사상적으로 보면 근대의 시작은, 신이 아닌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개념을 부활시킨 르네상스 시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경제사적으로는 18세기 중엽 산업 혁명부터, 정치사적으로는 18세기 말 프랑스대혁명과 19세기 초의 민족주의로부터, 문학사와 미술사에서는 미학적으로는 19세기 초부터, 양식사적으로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모더니즘은 근대 시기에 시작돼 현대 초중반까지 이어진 사상적 흐름을 일컫는다. 이전 시기와 다른 것은, 이전의 정신이나 유산을 계승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 변혁하려는 사고를 말한다. 한편 문화사적으로 모더니즘은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 서구 문학사에 나타난 특정한 예술운동이나 경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특히 모더니즘은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 서구 문학사를 통해 나타난 특정 예술운동이나 경향을 가리킨다. 즉, 모더니즘은 특정한 어느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절대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