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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Jun 22. 2016

아큐, 근대 중국의 일그러진 자화상

루쉰, <아큐정전>

“아Q는 죽었다. 아Q는 비록 여자가 없었지만 그러나 비구니가 저주했던 것처럼 자손이 끊기지 않았다. 고증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아Q에게는 후손이 있었다. 후손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아주 번성해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81년 루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영화 <아Q정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대사의 여운이 날카롭게 가슴에 남는다.  <아Q정전>은 1921년 발표된 루쉰의 중편소설로 제국주의 침략으로 반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던 중국 사회의 내적 모순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루쉰은 날품팔이꾼 아Q를 내세워 변화의 폭풍에 휘말려 있는 20세기 초의 중국 사회에서 사명감도, 목적의식도 없이 거만한 중화사상으로 무장한 채 무기력하고 비겁하게 살아가는 중국 민중을 질타하였다. 

20세기를 훌쩍 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루쉰의 아Q가 국경을 넘어 시대를 넘어 우리들 속에서 생존을 계속하며 후손을 낳아 번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아Q의 정신승리법과 아Q주의는 인간의 어떤 속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가? 아Q가 불사신처럼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아집과 이기적 자아의 껍질에 싸여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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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아Q정전>은 역사적 맥락을 전혀 모르고 읽어도 ‘아Q’라는 전형적인 인물에 대한 빼어난 묘사로 소설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래서인가. 20세기 초의 아Q는 현대무용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새롭게 재탄생하여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우리 안에 어떤 아Q가 숨어 있는지 묻는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두 명의 아Q를 만나게 되는데, 신해혁명(1911년) 직후의 중국사회를 살아간, 중국 민중의 전형으로 창조된 아Q가 하나이고,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으로서의 아Q가 또 하나다. 루쉰이 매스를 버리고 선택한 붓으로 중국 민중을 깨우치기 위해 창조해낸 아Q를 만나려면 아Q를 낳은 당시 중국의 시대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루쉰의 삶을 관통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중국은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인 암울한 시대였다.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정치, 사회적 혼돈이 심화되고 경제적 궁핍이 나날이 극심해져 중국 민중은 생존 자체가 힘겨웠다. 드넓은 중국 대륙은 서구 열강들의 잔칫상이었고, 봉건적인 폐습에 젖어 있는 민중들은 변화의 폭풍 앞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희망의 불씨를 일궈내지 못하였다. 그 와중에 일어난 신해혁명은 청조를 무너뜨리고 최초로 공화제를 수립, 중화민국을 발족하기에 이르지만 이마저 서구열강을 등에 업은 위안스카이 정권의 등장으로 반제국주의, 반봉건이라는 과제는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신해혁명이 성공한 뒤 북경의 교육부에서 일했던 루쉰은 기대를 걸었던 신해혁명이 역사적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고 좌절하자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중국사회와 중국사상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마침내 <광인일기>를 시작으로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간다. 1921년 세상에 나온 ‘아Q’는 바로 중화사상에 기반을 둔 공허한 영웅주의와 자기만족, 그리고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정신적인 만족에 심취해 현실을 외면해버리는 우매한 중국민족 자체였다. 루쉰은 중국 민중이 아Q를 보면서 각성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길 절절히 염원했다. 문예를 무기로 삼아 각성하지 못한 대중을 치료하고자 창조한 아Q! 그를 만나러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자.


날품팔이 아Q의 일대기

일정한 직업 없이 웨이주앙의 사당에서 살아가는 날품팔이 아Q. 사람들은 아Q를 바쁠 때는 기억해냈지만 한가해지면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린다. 아Q의 이름이 뭔지 아무도 모른다. 이야기의 시작은 사뭇 희극적이다. 이렇게 하찮은 인물의 이야기에 거룩한 위인에게나 어울릴 ‘정전’이라는 제목을 쓴 것 자체가 그렇다. 

머리에 부스럼창이 나 있는, 허드렛일로 겨우 먹고사는 아Q는 사람들의 멸시 천대에도 자존심 강한 특이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신기한 묘법이 있었으니, 아무리 명백한 패배도 그의 정신만 거치면 승리로 뒤바뀌었으며, 어떠한 고난도 그의 앞에서는 맥을 못추었고, 누구에게도 꿀릴 게 없었다. 그 묘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 아Q가 보는 아Q는 ““옛날에는 잘살았고” 견식이 높았으며 게다가 “정말 일을 잘했”으므로 원래는 거의 ‘완전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주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짜오 노어른과 치엔 노어른도 그의 눈에는 대단할 게 없었으며, “웨이주앙의 주민 전부 그의 눈에” 차지 않았다. 따라서 자신을 어떻게 보든 아Q는 전혀 상관할 게 없었다.

둘째, 노려보기 주의다. 아Q는 원래 상대를 평가해보고서 어눌한 자 같으면 욕을 했고 힘이 약한 자 같으면 때렸는데 왠일인지 자꾸 손해보는 때가 많아져, 방침을 바꾸어 화난 눈으로 노려보기로 했다. 

셋째, ‘정신상의 승리법’이다. 건달들이 놀리고 때리면 아Q는 잠시 선 채로 “자식에게 맞은 셈 치자. 요즘 세상은 정말 개판이야.” 하고 생각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넷째, ‘약한 자에게 화풀이하기’다. 아Q는 자신이 혐오하는, 치엔 노인의 큰아들 ‘가짜 양놈’에게 맞은 후 ‘망각’이라는 보물로 치유한 다음, 자신보다 약자인 정수암의 젊은 비구니에게 침을 뱉는다. 

그런 아Q지만 처음으로 인간적 절실함이 묻어나는 일이 생긴다. 정수암의 젊은 비구니의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성적 욕구가 생긴 아Q가 짜오 노어른 댁의 우마에게 구애하는 장면이다. 에피소드 전체에서 유일하게 아Q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행한 일이었지만 결국 이 일은 아Q의 생존을 위협, 성내로 떠나게 한다.  

그렇게 웨이주앙에서 사라졌던 아Q는 그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정신적 승리법으로 대표되는 위기에 대한 대응방식이 세상에 대한 약삭빠른 변신으로 발전한 것이다. 도둑질로 얻은 부를 교묘하게 숨겨 상인으로 성공한 것처럼 꾸민 아Q는 혁명이 가진 힘에 반해 혁명에 가담하려 한다. 하지만 이마저 거부당하고 결국에는 대갓집의 폭도로 오인받아 사형에 이르고 만다. 사뭇 엽기적이어 보이는 희극적인 행적을 보여온 아Q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런 아Q의 죽음에 대해 웨이주앙 사람들은 “총살은 참수만큼  구경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하며 불만스러워했다.” 

“사람 살려!” 하는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죽어간 아Q. 처음부터 끝까지 희화화된 아Q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대단원을 맞는다. 


무엇이 아Q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드는가

아Q의 일대기를 따라가 보면 아Q의 비극적인 최후는 일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아Q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였다.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Q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다만 동그라미를 동그랗게 그리지 못한 것만은 그의 ‘행장’에서 하나의 오점으로 남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죽음조차 그와 무관하게 그 주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다 비로소 무시무시한 ‘늑대의 눈’을 떠올린다.


“사년 전에 그는 산기슭에서 굶주린 늑대 한 마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늑대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멀리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한없이 그의 뒤를 따라오며 그의 고기를 먹으려고 했다. (중략) 그 늑대의 눈은 영원히 기억에 남았다. 흉악하면서도 겁을 내는 그 눈은 두 개의 도깨비불처럼 빛나면서 멀리서부터 그의 살가죽을 꿰뚫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는 또,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더욱더 무시무시한 눈을 보았다. 둔하면서도 예리한 그 눈은 이미 그의 말(話)을 씹어먹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육신 이외의 것들을 씹어먹으려고 하면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영원히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 눈들은 하나로 합쳐지는 듯하더니 어느새 그의 영혼을 물어뜯는 것이었다.”


아Q의 삶을, 존재를 물어뜯을 듯 차갑게 바라보는 늑대의 눈, 그것은 다름 아닌 아Q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눈이었다. 아Q의 일대기는 결코 동정 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의 어느 누구도 아Q에게 돌을 던질 만큼 떳떳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아Q의 비극적 최후는 너무도 당연한 것일까? 아Q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든 것은 비단 ‘정신승리법’으로 대변되는 아Q 자신만의 탓일까? 

물론 가장 큰 요인은 아Q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풍자적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어리석음은 기가 막힐 정도이다. 하지만 또다른 요소를 찾는다면 하나는 지배계급 인물들이 가하는 박해이다. 아Q가 생계의 위협을 받은 것도, 다시 돌아와 번성기를 누리는 듯했으나 금세 추락하는 것도, 강도로 몰린 것도 모두 짜오 어른 때문이었고, 혁명을 금지당한 것은 가짜 양놈 때문이었다. 아Q의 모든 가능성은 그들의 손에 의해 차단당한다. 

두 번째 요소는 같은 민중이면서 앞장서서 아Q를 박해하는 주위 사람들이었다. 우마 사건 이후 웨이주앙 주민들은 아Q에게 외상을 주지 않았고, 사당 영감조차 그를 쫓아내려 했으며, 아무도 그를 불러 일을 시키지 않았다. 은전을 차고 돌아오자 잠시 존경의 눈길을 거두나 그것이 도둑질에 의한 것임을 알자 싸늘히 시선을 거두고 피했으며 종국에 가서는 아Q를 죽어 마땅한 인물이라 평하고, 오히려 즐거움을 주는 참수형이 아닌 것에 실망한다. 이들 역시 아Q의 삶을 비극적으로 몰아간 주인공이다.     

루쉰은 <아Q정전>에서 중국과 중국 민중 전체를 향해 날카로운 펜을 들이댄다. 짜오 어른으로 대표되는 지배층도, 혁명에 앞장서는 가짜 양반도, 부화뇌동하며 아Q처럼 살아가는 민중들도, 청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조차도 그의 펜을 비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아Q주의-불행한 사회를 살아가는 교활한 대응방법 

몇년 전 현대 무용단 ‘댄스 시어터 온’은 ‘아Q’라는 작품을 신작 무대에 올렸다. <아Q정전>의 아Q로부터 모티브를 따와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한 무용극이었다고 한다. <아Q정전>은 중국문학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계 문학 속에 어엿한 고전으로 자리잡았으며 수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읽고 있다. 러시아 작가 고리키는 루쉰의 <아규정전>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연극으로 영화로 무용으로 시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전세계에 수많은 아Q로 재탄생하고 있다. 신해혁명기의 중국 민중을 형상화한 아Q. 그가 시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루쉰이 시대성을 초월하여 인간의 어리석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전형적 인물로서 아Q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쉰의 성공은 문학에 대한 루쉰의 기본적인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루쉰은 비록 혁명을 위한 무기로서 문학을 택했지만 문학을 안이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삼지 않았다. 루쉰은 ‘현재 우리들의 문학 운동에 대하여’라는 기록에서 “작가란 그 어떤 인물을 그리든, 그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자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에 ‘민족혁명 전쟁’이란 꼬리를 달고 그것을 기치로 삼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작품 뒤에 붙인 슬로건이 아니라, 그 작품 속에 깃들여 있는 진실한 생활, 눈부신 투쟁, 약동하는 맥박, 사상과 정열이기 때문이다.”고 술회하였다.

중국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도 <아Q정전>에서 만난 아Q는 생동감 있는 실존 인물처럼 느껴진다. 햄릿형 인간이라는 말이 있듯 아Q형 인간이라는 말을 대비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아Q형 인물이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Q형 인간, 즉 아Q주의란 무엇인가. 아Q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부정확한 현실 인식, 자기 기만의 태도, 강자에게 굴종하고 약자에게 으스대고 고통을 전가하는 노예 근성 등을 묶어 아Q정신, 즉 아Q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Q주의는 피압박 사회, 부조리한 사회에서 삶을 영위해내는 하나의 교활한 대응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아Q주의는 삶의 해법이 아니다. 어떠한 개인도 현실을 떠나 살아갈 수 없다. 아Q주의는 문제의 본질을 판단하지 못하고 문제의 겉모습만 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정체성의 해체라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아Q였지만 혁명에 가담하고 싶어한다. 혁명이라는 역사적 행위가 아Q에게는 한낱 개인적 모면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아Q 역시 역사의 수레바퀴 속으로 끌려들어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고 만 것이다. 역사적 존재로서 무엇이 진실한 삶인가 하는 자각이 없을 때 얼마나 개인이 비참한 죽음에 이를 수 있는지 아Q가 보여주고 있다. (끝)





>>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혁명. 제1혁명이라고도 한다.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지면서 2000년간 계속된 전제 정치(專制政治)가 종말을 고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 공화 정치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재일본 유학생과 국내 지식 청년층이 참여한  혁명파는 중국 동맹회를 결성하여 비밀 결사인 회당(會黨)과 손을 잡고 민주 공화제를 지향하는 반청(反淸)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혁명파는 10월 10일 우창에서 봉기하여 중화민국 군정부를 설립함으로써 신해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 혁명은 순식간에 전국에 파급되어 한달만에 모든 성이 호응하였다. 1912년 1월 1일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고 난징 정부가 수립, 쑨원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지도 이념으로 한 중화민국이 발족하였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청나라의 황제를 퇴위시키는 조건으로 쑨원으로부터 대총통의 지위를 탈취, 3월에 정식으로 대총통에 취임하여 베이징 정부를 조직하였다. 이때부터 혁명은 급속하게 반혁명으로 전화(轉化)되었다. 정당이 난립하는 중에 혁명파는 혁명 동맹회를 개조하고 소당파(小黨派)를 합쳐서 국민당(國民黨)을 창립, 의회정치의 실현을 희구하였으나, 열강과 입헌파의 지지를 받은 위안스카이는 혁명파에게 무력 탄압을 가하여 제2혁명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혁명파는 제2(1913.7), 제3(1915.12)의 혁명을 일으켜 위안스카이 정권과 대결하였으나, 반제(反帝)·반봉건의 과제는 해결되지 않고 5·4운동 이후의 혁명으로 미루어졌다. 


루쉰(1881~1936)

루쉰(魯迅)은 1881년 중국 절강성 소흥현 출생. 보명은 쪼우수런(周樹人), ‘루쉰’은 <광인일기>를 발표할 때 처음 사용했던 필명이다. 

루쉰은 전형적인 봉건 소지주 집안 출신이었으나 12세 되던 해 조부가 투옥되고 그로 인해 아버지가 중병으로 앓아 눕자 뒤바뀌고 만다. 주씨 집안은 이 투옥 사건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루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살다간 중국인 지성을 대표한다. 근대 중국 사회가 서구 문명과의 접촉으로 근대화에 눈을 뜰 무렵, 집안의 몰락으로 정통적인 입신의 길이 막힌 루쉰은 새로운 세계의 경헙을 위해 남경에서 근대과학의 기초를 배우고, 21세 때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 24세에 센다이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일본 유학 중에 루쉰은 의학에서 문학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되는데, 주된 이유는 바로 중국과 같은 낙후된 국민에게는 건강한 체격보다 강한 국민정신이 더 필요하다고 통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정신을 개조하는 데 문예를 통한 방법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문예운동에 매진할 것을 결심한다. 다음의 글은 루쉰의 이런 생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령 철로 밀폐된 방이 있다고 치세. 전연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방일세. 그리고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곤히 잠들고 있으니 오래 지나지 않아 모두가 다 질식해 죽을 것일세. 그러나 그들은 혼수 상태에서 막바로 사멸 속에 드는 것이라 전연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못하네. 그런데 자네가 지금 큰 소리를 쳐 아직도 약간 의식이 맑은 몇 사람들을 놀라 깨게 함으로써 그들 불행한 사람들에게 도저히 구원의 길이 없는 임종의 고통을 맛보게 한다면 도리어 자네는 그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꼴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미 눈뜬 사람이 몇이라도 있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때려 부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세.”  

-<납함> 서문 중에서


 1918년 루쉰이라는 필명으로 <신청년>에 중국 현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단편 <광인일기>를 발표한 후 이후 <고향>, <아Q정전> 등 3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였다. 루쉰의 사후 마오쩌뚱은 그를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주장)’이라 부르며 “그는 단지 위대한 문학인일 뿐 아니라, 또한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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