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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Jul 12. 2016

야만의 세계에 빠져든
문명사회의 소년들

015.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오랑캐들 사이에서 큰 함성이 터졌다. 돼지는 소리쳤다.

“규칙을 지키고 합심을 하는 것과 사냥이나 하고 살생을 하는 것, 어느 편이 더 좋겠어?”

다시 함성과 휙 하고 날아오는 소리. 소음에 지지 않고 랠프가 다시 외쳤다. 

“법을 지키고 구조되는 것과 사냥을 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좋으냔 말이야?” -<파리대왕> 중에서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의 모험담’이다. 하지만 소년들의 모험이 진행될수록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문명사회에서 건너온 이 영국소년들은 처음에는 문명의 교리에 맞게 지도자를 세우고, 민주적 대화의 방법을 찾고, 위험을 헤쳐나갈 현실적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위태롭기 그지없던 이 문명적 질서는 어느 순간 광기에 휩싸인 소년들에 의해 파괴되고, 소년들은 야만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이 한 편의 모험소설은 모험소설의 범주를 뛰어넘어 심오한 상징이 녹아 있는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년들이 보여준 집단적 광기는 우리에게 혼란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문명세계의 소년들이 그렇게 쉽게 야만의 세계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집단적 광기로부터 인간은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을까? 우리에게 내재해 있다고 믿었던 문명의 가치는 왜 그리 속절없이 무너져버리는 것일까? 인간 사회가 가진 수많은 결함들은 결국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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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의 이야기’라면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15소년 표류기>가 떠오를 것이다. 읽은 지가 수십 년이 지난 내게도 삽화 한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산발한 머리에 지푸라기로 몸을 가린 한 소년들 한 무리가. <파리대왕> 역시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는데 읽어내기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를 찾아내기 무척 어렵다. 책을 열심히 읽는 열렬 독자여서 책 말미의 작품 해설까지 읽어내야 어렴풋이 주제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단순히 소년들의 모험소설에 국한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파리대왕>의 저자 윌리엄 골딩은 미국판을 낸 미국 출판사의 공개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답하면서 이 소설의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 사회의 형태는 개인의 윤리적 성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지 외관상 아무리 논리적이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정치체제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모랄이다.”


옮겨 적고 보니, 마치 고전의 한 대목을 옮겨놓은 듯 의미 파악이 어렵다. 조금 설명을 보태자면 골딩은 사회가 결함이 있다고 보았고, 이 결함을 인간의 본성이 가진 결함 때문으로 보았다. 그는, 사회 형태라는 것이 겉보기에는(이론적으로 보면) 모두 훌륭하지만 그 정치체제나 사회체제를 이끌어나가는 인간의 윤리적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고 본 것이다.  

무인도에 표류된 소년들이 집단적 광기에 휩쓸려 야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이 이야기를 통해 골딩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일까? 

골딩은 1940년에 영국 해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이 경험은 그를 새롭게 각성시켰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대규모 살상인 전쟁, 그리고 나치와 그 추종자들이 저지른 반문명적인 악행을 목격하면서 문명의 질서 속에 숨어 있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의 본성에 깊게 회의하게 된 것. “벌이 꿀을 만들어내듯 인간은 악을 만들어낸다.”는 신념을 갖게 된 골딩은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을 통해 인간의 야만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1953년에 출간된 <파리대왕>은 발간 당시에는 크게 눈길을 끌지 못하다가 미소 냉전의 위기와 그에 따른 세계 핵전쟁의 위험성이 고조되던 1960년대에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폭넓게 읽혀 ‘캠퍼스대왕’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일군의 소년들, 과연 그들은 어떤 일을 겪었으며, 그 사건들이 품고 있는 우화적 상징은 무엇일까? 단순할 수도 있는 ‘모험소설’이 상징적인 우화소설이 되어 세대를 넘어 현대판 고전으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소도구인 사물들의 상징성이 뛰어난 것도 한몫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좇아가기에 앞서 주요 등장인물과 사물들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숙지한다면 작품 이해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은 크게 ‘잭’과 ‘랠프’의 대립이 빗어낸 긴장감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두 인물이 대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읽어나가자. 


✔ 잭과 랠프, 소년들의 무인도  

핵전쟁의 위협을 피해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던 영국 소년들. 그들이 탄 비행기가 적의 공습으로 무인도에 추락하였다. 대여섯 살부터 열두 살에 이르는 이 소년들은 곧 상황을 판단하고 그들에게 익숙한 문명의 질서를 세우려고 한다. 대장을 선출하고, 규율을 정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세운다. 대장으로 추대된 랠프는 “암소 같은” 소리를 내는 ‘소라’를 불어 아이들을 모은다. 소라 껍데기로 시작된 회합은 제법 민주적인 규율을 만들어내고, 랠프의 지도로 산꼭대기에 봉화를 올려 구조 신호로 삼는 등 체계를 만들어간다. 

한편 성가대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잭은 불 관리를 맡는다. 구조를 기다리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로 오두막을 세우자고 랠프가 제안하자, 잭과 그의 패거리들은 사냥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잭과 랠프의 대립은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잭과 사냥대원들은 멧돼지를 잡아 위세를 떨치고, 랠프의 지도력은 타격을 입는다. 그동안 소년들은 ‘무서운 짐승’이 있다는 두려움에 빠져들고, 랠프는 수색대를 조직한다. 짐승의 실체를 확인하러 떠난 랠프와 잭, 로저는 산꼭대기에서 무서운 형상을 발견하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다시 소집된 회의. 랠프와 잭은 더 격렬하게 대립한다.  “내가 지휘하는 사냥부대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잭의 물음에, 랠프는 “막대기로 무장한 일단의 소년들이지 뭐야.” 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이에 잭은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한다. “난 랠프 패거리의 졸개 노릇은 안 할 테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지루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회의를 느낀 아이들은 랠프를 떠나 잭을 따라 나서고, 이후 잭의 패거리들은 자극적인 사냥에 빠져들면서 점차 이성을 잃어간다. 소설 후반부에 이르러 잭은 ‘대장’이라는 호칭에서 ‘추장’이라는 호칭으로 바뀌고, 골딩은 그들 패거리를 ‘오랑캐’라고 부른다. 잭 패거리는 그들만의 축제를 계속하면서 점점 더 야만적 광기에 휩쓸려 간다. 급기야 무서운 짐승의 정체가 사실은 죽은 시체임을 알려주려고 온 사이먼을 살해하고 만다. 

랠프 패거리에는 이제 돼지(피기)와 쌍둥이 샘과 에릭, 꼬마 몇 명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편 야만의 세계에 빠져든 잭의 사냥패는 진지를 구축하고, 불씨를 만들어내는 돼지의 ‘안경’을 강탈한다. 랠프와 돼지는 절망감에 휩싸여 안경을 찾으러 잭의 패거리를 찾아가고, 잭의 하수인 ‘로저’는 바위를 굴려 돼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결국 랠프는 오랑캐로 변한 사냥패들의 추격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몇 번의 고비를 넘긴다. 잭의 패거리에 랠프가 잡히려는 순간, 연기를 보고 섬에 들른 영국 해군 장교의 구조를 받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왜 소년들은 야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나?

랠프와 돼지가 우연히 손에 쥐게 된 ‘소라’. 그것은  ‘법’과 ‘질서’였다. 소년들은 소라 소리를 듣고 모였고, 모임에서는 이들이 해야 할 수많은 규칙들이 정해졌다. 먹을 물을 공급하는 문제, 오두막을 세우는 문제, 볼일 볼 장소를 정하는 일 등 그들이 살아가고 구조되기 위해서 해야 할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 얘기가 있는 사람은 소라를 들었고, 소라를 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경청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두고 온 문명의 질서였다. 

처음 얼마 동안 소년들은 소라가 상징한 동의의 관습을 존중하였고, 섬 생활에 잘 적응해나갔다. 다행히 배불리 먹을 열매는 지천에 널려 있었고, 목숨을 위협하는 야생동물조차 별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섬을 탐색하던 잭과 랠프, 사이먼이 멧돼지를 만났을 때에 잭은  덩굴에 걸려든 새끼 멧돼지를 너끈히 찌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멧돼지를 찌르지 않았다. “칼을 내리쳐서 산 짐승의 살을 베는 것이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잭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봉화를 지켜야 한다는 임무도 잊은 채 사냥에 몰두한 잭은 마침내 멧돼지 사냥을 해냈고, 멧돼지의 피냄새에 익숙해진 잭은 이제 먹이를 구하기 위한 사냥이 아닌, 하나의 의식으로서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그놈을 죽여라!” 처음 사냥을 주저하던 잭은 더 이상 없었다. 볼과 눈가를 희게 칠하고 다른 한쪽은 붉은 찰흙을 바르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 턱까지 숯으로 검은 선을 그려넣은 잭의 얼굴은 사뭇 위압적이었다.  

‘무서운 괴물’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아이들은 랠프의 합리적인 지도를 불신하고 잭의 세계로, 잭으로 대표되는 야만의 세계로 속속 모여든다. 잭 패거리는 알 수 없는 광기에 휩싸여 사이먼을 죽음으로 내몰고, 돼지를 처형하는 일을 해낸다. 

왜 소년들은 문명의 세계를 버리고 야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을까? 그들은 결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지 않았다. 물론 무인도라는 곳에 불시착한 상황 자체가 극한의 상황이라면 극한의 상황이지만, 적어도 배고픔과 맹수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지는 않았다. 먹을 것이 있었고, 물이 있었고, 어설프지만 오두막도 있었고, 구조의 가능성도 있었다. 사이먼과 돼지를 죽일 만큼 야만적 광기에 들뜬 이유는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무서운 짐승’ 때문에 소년들 사이에 두려움이 확산되자, 랠프와 사이먼은 무서운 짐승의 실체를 밝히려 했고, 잭은 멧돼지 머리를 창에 꽂아 짐승에게 바침으로써 아이들을 집단적 광기 속으로 몰아갔다. 불확실한 두려움을 집단에 속함으로써, 강력한 집단의 힘에 자신의 의지를 의탁함으로써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나약함이 결국은 반문명적 광기를 부추기는 하나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광기는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만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전쟁 역시 이러한 광기의 연장선 속에 있는 것이다.


 ‘파리대왕’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인도에서 소년들을 광기로 몰아간 것은 ‘권력’과 ‘힘’에 대한 집착이었고, 이러한 광기는 무인도를 떠나 현대의 문명세계로 옮아와도, 아이에서 어른으로 모습을 바꾸어도 여전히 인간과 인간사회를 떠도는 하나의 망령이다. 

골딩은 문명적 가치와 질서로 포장한 인간사회의 추악함, 인간 사회의 결함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야만성과 폭력성 때문이라고 고발한다. 무인도에서 소년들이 왜 그다지도 야만적 광기에 휩싸였는지 꼬챙이에 찔려 “무서운 짐승”의 제물로 바쳐진 ‘파리대왕’은 사이먼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피범벅이 된 채 잘려나간 멧돼지의 머리에 파리 떼가 극성스럽게 몰려와 붙어 있었고, ‘무서운 짐승’의 실체를 확인하러 간 사이먼은 이를 ‘파리대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파리대왕’은 모든 것이 잘못 돼버린 이유는 바로 ‘자신’ 때문이며, 또한 ‘자신’은 바로 소년들, 즉 인간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문명적 질서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당사자는 바로 문명적 가치를 온전히 내면화했다고 믿었던 소년들, 즉 인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골딩은 무인도의 소년들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회가 내면화한 문명적 가치란 게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이렇게 되묻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문명적 가치는 얼마나 견고한가?-<산호섬>과 <파리대왕>

모험을 무척 좋아하는 ‘랠프’, 현명하고 책임감이 강한 ‘잭’, 그리고 또 한 명의 소년, 피터킨 게이. 이들은 해양 모험 소설의 전형인 <산호섬>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들이다. 산호섬은 이들 세 명의 소년들이 외딴 무인도에서 펼쳐보이는 모험 이야기로, 시종 일관 밝고 활기찬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인육을 먹고 우상을 섬기는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교화시키고자 계속 모험을 강행하는 세 소년. 이들의 노력으로 섬 주민들은 기독교인이 되고, 세 소년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골딩은 왜 이 쾌활하고 활기 넘치는 소년 ‘랠프’와 ‘잭’을 똑같이 등장시켜 전혀 다른 내용의 모험이야기로 패러디한 것일까? <산호섬>의 잭과 랠프는 어쩌다 <파리대왕>에 와서 문명과 야만의 대척점에 서서 잔인한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골딩은 <산호섬>(1858년)이 등장하던 시대의 영국의 제국주의적 호기에 심사가 뒤틀렸다.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아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미지의 땅에 대한 제국주의적 호기심은 수많은 해양소설을 잉태했고, 그 해양 모험소설들에는 밑바탕에 제국주의적 사고를 짙게 깔고 있었다. 원주민들의 낯선 생활방식을 다른 문화로 인정하지 않고, 유럽의 뛰어난 문명과 맞바꿔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닌 거야. 우리는 영국 국민이야. 영국 국민은 무슨 일이든 척척 잘해. 그러니 우리는 온당한 일을 해야 해.”


돼지는 ‘소라’로 대표되는 문명적 질서에 대항하려는 일단의 소년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섬에 도착한 해군 장교는 미개인처럼 야만적인 모습을 드러낸 소년들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영국의 소년들이라면… 너희들은  모두 영국 사람이지?… 그보다는 더 좋은 광경을 보여줄 수가 있었을 텐데. 내 말은….”  

골딩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다른 모습으로 출현하고 있음을 보았고, 그러한 야심이 얼마나 반문명적인 것인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년들의 야만과 문명의 대립은 어른들(해군)의 도움으로 종결되었다. 소년들은 해군들이 끌고온 순양함을 타고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지만 그들을 태운 순양함은 어른들의 전투를 위한 파괴의 무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른들과 어른들의 순양함은 구가 구원해줄 것인가?

문명사회는 과연 인류의 야만성을 극복하였나? 그런데 왜 여전히 인류는 전쟁을 멈출 수 없는 것일까? 유사 이래 전쟁을 멈추어본 적이 없는 인류이다. <파리대왕>의 작가 골딩은, 나라와 나라의 전쟁, 나라 안에서 벌이는 부족 간의 전쟁, 권력을 둘러싼 전쟁 등 시대와 상황에 따른 인류의 전쟁을 보면서 그것이 어쩌면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야만성과 폭력성 때문이 아닌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골딩의 물음에 대해 ‘랠프’는 울음으로 답하였고, 랠프와 소년들을 태운 순양함을 또다른 전투를 위해 어딘가로 향하였던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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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 1911~1993)

영국 콘웰 출생. 옥스퍼드대학 졸업 후 교직생활을 시작하였다. 1940년에는 영국 해군에 입대하여 '비스마르크호'를 침몰시킨 전투에 참가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로켓 발사 전함을 지휘했다. 전후 다시 교직에 복귀해 1960년까지 근무했다. 소설 <파리 대왕>은 그의 대표작이자 198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서양의 고전 <천로역정>과 <산호섬>,  <15소년 표류기>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교과서적인 원작들의 내용을 냉소적으로 비틀고, 뒤집으면서 우화적 소설이 갖추어야 할 매력들을 남김없이 보여 준다. 주요 작품으로는, <계승자들>, <핀처 마틴> , <끝없는 추락> <투명한 암흑>, <성인의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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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등장 인물> 

랠프_잘생긴 얼굴, 단단한 체격의 소유자. 합리적 민주주의를 상징하며, 문명의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잭_랠프와 대조되는 인물. 늘 그림자나 어둠과 연결되어 있다. 야만으로의 복귀를 대표하는 어둠의 인물이다.

돼지(피기)_ 몸이 민첩하지 못하고 안경을 쓴 그는  지혜와 점잖음을 갖춘 꼬마지식인. 랠프의 브레인이다.

사이먼_선량하고 순수한 성격의 소유자. 한발 앞선 순교자이다.

로저_잭의 하수인. 악한 성격으로 돼지를 죽이는 등 사형집행인 역할을 한다. 

샘과 에릭_쌍둥이 형제로 잭의 패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랠프와 돼지와 행동을 함께 한다. 하지만 돼지가 죽고 잭 패거리의 강압에 못이겨 그들 패거리에 남는다. 협동을 상징.

<상징적인 사물>

소라_회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함. 지도자 랠프에게 권위를 부여. 법과 질서 의미. 소라의 파괴는 합법성의 파기를 상징한다. 

안경_돼지가 쓰고 있는 안경은 불을 일으키는 근원으로 문명을 상징한다. 안경이 망가지고 깨지는 과정은 문명의 점진적인 퇴조를 시사한다.

봉화_사냥 행위와 반대되는 의미. 구출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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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대왕>의 원제인 ‘Lord of the Flies’ 는 성경에서 온 표현이다. 예수가 예로 든, 마귀의 이름은 히브리어의 ‘베엘제버브’의 뜻이 바로 ‘파리들의 주님’이다. ‘Lord of the Flies’를 윌리엄 골딩이 영어식으로 번역한 것으로 직역하면 ‘곤충의 왕’이란 뜻이다. ‘악마’를 가리키는 이 신랄하고 암시적인 말은 잘못 의역된 말로 오역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된 바 있지만, 어쨌든 그 이름으로 미루어  부패와 파괴와 타락과 히스테리와 공포에 몰두하며, 골딩의 주제에 딱 들어맞는 악마를 가리키고 있다. 골딩은 물론 재래의 종교적 의미에서의 ‘악마’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하고, 도덕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사납게 휘몰아치는 어떤 제어할 수 없는 힘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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