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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Jul 25. 2016

신고전주의 부그로,
정교하고 고지식한, 정통의 아름다움

실사에 가까운 그림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궁정을 중심으로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유명한 고전주의 작품에서도.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그림 한 점. 사진처럼 정교하지만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세밀한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는 게 많으면 보이는 게 많아질 것이다. 신고전주의 화가 부그로를 소개한다.  



그림에 대한 조예가 특별히 깊지 않은 사람들에게 윌리앙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0, 부게로라고도 한다)는 낯선 이름이다. 그림이라고 해봐야 인상파 화가 몇몇 이름을 알고 있는 게 보통 사람의 상식이다. 그만큼 인상파의 인기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고. 미술사에서 19세기 말은 그야말로 인상파의 시대였고 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새로운 사조의 탄생이 거듭돼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덕이다. 

바로 그 시대, 고전주의 아카데미 회화가 건재해 있었다. 지금에야 인상파 인기가 높지만 알다시피 처음 인상파 전시회가 열렸을 때 전문가들은 시쳇말로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작품으로 치지도 않았다. 정교하지 못한 묘사, 뛰어나지 않은 기교 등 수준이 밑돈다고 보았던 탓이다.(하지만 기교에 얽매이지 않은, 소재도 자유롭게 취하는 인상파의 그림을 대중들은 사랑했다!) 

인상파가 대두되기 전, 유럽 회화의 주류 자리는 프랑스 아카데미파의 작품이 차지하고 있었다. 파리의 살롱에는 이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고. 윌리앙 부그로는 당시에 최고로 평가받던 화가다. 

A Childhood Idyll, 1900

풀피리를 불어본 적이 있다. 소리도 잘 나지 않았지만 풀잎을 뜯어 입가에 대고 볼이 미어져라 불어봤던 기억이다. 솜씨가 별루여서 소리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자매로 보이는 두 아이가 한적한 곳에 앉아 있다. ‘잘 봐’하는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피리를 분다. 동생은  재미있다는 듯, 신기한 눈으로 언니를 바라본다. 옷의 구김이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색의 미묘한 차이를 세밀하게 포착해낸 힘이다. 조금 더러워진 맨발바닥은 어떻고. 흰빛과 옅은 보랏빛이 감도는 치마와 아직 어린 소녀들의 보드라운 머리카락. 손으로 만져질 듯 보드랍다. 신고전주의 화가라고? 내겐 아마도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 화풍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너무나 정교하고 세밀한, 정통의 화법이 빗어낸 아름다움에 놀라고 또 놀랐다. 


가난한 상인의 아들, 신고전주의 화가의 정상에 서다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태어난 부그로는 가난한 상인의 아들이었다. 어릴 때 부그로는 목사인 삼촌에게 맡겨져 라틴어를 배웠고, 그리스 신화와 성서의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스케치를 배우기 시작한 건 13세 무렵. 거의 독학으로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로 유학 갈 형편이 안 돼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학비를 벌어 21세 때 프랑스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했다. 부그로는 말 그대로 절차탁마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정통적인 회화 기법을 익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아 당시의 복식과 생활양식을 연구하는가 하면, 인체와 골상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깊이 있게 해나갔다. 

그의 노력에 상이 뒤따랐고, 4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며 그림에 열중했다. 세상은 그의 진가를 알아봐주었다. 파리의 살롱에서 예술가들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며, 훈장도 잇따랐다. 돈과 명예도 얻었다. 하지만 부그로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로지 완벽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나는 매일 기쁨을 안고 작업실에 갔다. 저녁에는 어쩔 수 없이  어둠 때문에 작업을 멈춰야 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엄격, 형식, 기법, 완벽주의…. 이런 말들은 언뜻 예술의 자유로움을 방해하는 훼방꾼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예술이든 기법과 형식을 익힌 이후에야 자유로움을 펼쳐낸다는 걸 우리는 안다. 또 하나, 예술이 그 고유의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 모든 예술은 장인에 의해 빗어졌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프로디테를 화나게 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던 프시케. 그녀의 남편은 애꿎게도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큐피트)다. 우여곡절로 해서 죽음의 수면에 빠진 프시케를 남편인 에로스가 구출(혹은 납치)하는 장면이다. 잠결인 듯 사랑스러운 표정의 프시케, 둘의 하얗고 고운 피부와 휘감은 연보랏빛 천들. 사랑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그림이다.    

The Rapture of Psyche, 1895

대체 얼마만큼 공을 들여 기량을 닦으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놀라운 경지다. 

부그로는 인상주의의 살롱 전시에 반대했다. 다비드, 앵그르의 신고전주의의 정통적 화풍을 이어온 부그로의 눈에 인상주의는 ‘완성되지 않은 스케치’에 불과해 보였을 것이다. 이에 부그로는 인상파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인상파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부그로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고집불통의 화가로 취급받았고,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후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되었다. 그러다 현대에 와서야 재조명되고 있다.  

부그로가 스케치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작품(인상파)의 아름다움, 부그로가 펼쳐보인 정통의, 완벽주의적인 화풍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이 둘은 견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다른 아름다움이다!    


맑고 부드러운 화풍 속에 담겨 있는 순수한 영혼

부그로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이탈리아 농가의 보통 아이들, 소녀들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부그로는 인상파 화가들의 비난을 피해 이탈리아로 거처를 옮겨 그곳 농가의 일상적인 삶을 화폭에 담았다. 

The Hard Lesson, 1884

숙제하기가 영 힘이 드는 어린 소녀, 조금 피곤한 듯 양말을 벗고 막 목욕을 하려고 하는 소녀, 어린 동생을 돌보는 덜 자란 소녀, 꽤 큰 동생을 엎고 있지만 마음은 기쁜 언니…. 신화와 성경 얘기를 담은 작품들보다 개인적으로 훨씬 마음이 끌린다. 

너무나 어여쁜 소녀들을 신비할 정도로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섬세하게 묘사해서일 것이다. 소녀들의 맑은 피부, 표정, 눈동자, 머리카락. 어린 영혼들의 순수함이 너무나 맑고 부드러한 화풍 속에 스며 있다. 수백 년에 걸쳐 이어져온, 누군가에게는 답답해보일 수 있는 아카데미즘의 회하 기법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얼마나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부그로는 행복한 화가였단 생각이 든다. 눈을 뜨고 맞이한 하루 내내, 온종일 그림에 빠져 살았다니,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평생했다니 말이다. 더구나 당대 대중들이 알아봐주었고, 여든 살에죽음을 맞기 전까지 영예도 충분히 얻었단다. 

인상파의 흥행에 묻혀 있던 그의 그림을 이렇게 보게 된 것은 우리의 행복이다.(끝) 


 

 

Before The Bath,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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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neo-classicism)

18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발전한 미술 사조.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문화의 고전적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장식, 시각예술, 문학, 연극, 음악, 건축 등을 말한다. 18세기 계몽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 19세기 초까지 이어졌으며, 후에 낭만주의와 대립한다. 건축에서는 19세기,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양식이 이어져 오고 있다.

신고전주의는 고전적 내용, 역사적 내용, 엄숙함, 공공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모습, 애국심, 영웅적 모습 등을 강조했다. 

신고전주의 회화의 특징은 연극무대처럼 한정된 공간, 단순한 구도, 건축적 배경이 많고, 등장인물은 적다. 또한 숨어있는 비극적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서 <화가, 귀족, 딜러>의 네트워크는 대중적 취향을 형성하고, 그랜드투어를 가지 못하는 영국 귀족들에게 ‘판매’했다.

참조 발췌_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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