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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Dec 14. 2017

이스탄불,
동양과 서양의 격렬한 충돌

성소피아성당에서 본 것, 느낀 것

어떤 도시를 처음 겪게 되면 특유의 심상이 생긴다. 
교토는 고즈넉함으로, 오사카는 변두리 정서로. 그렇다면 이스탄불은?
격렬하고 강력한 동서양의 뒤섞임으로 새겨진다. 유럽과 아시아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문화가 격렬하게 충돌했고, 여전히 혼재한,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기한 매력을 갖춘 도시다.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더 알게 된다는 말...

터키 여행의 팁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지식을 익혀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이스탄불의 유니크함은 지리적 위치 덕이다. 직사각형을 연상시키는 터키 땅(이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아나톨리아라는 대단히 고전적인 느낌의 말로 부른다)의 왼쪽 윗부분 터널처럼 생긴 곳에 이스탄불이 있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양 대륙에 걸쳐져 있는 셈. 동로마 제국이 아시아를 석권하기 위해 지나온 곳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유럽을 점령하기 위해 지나간 곳도 바로 여기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세계인들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느라 이곳을 경유한다. 

지리적 위치가 이렇다보니 이스탄불은 동서양의 굵직한 세계 역사를 한품에 안았다. 서양의 강력한 동로마 제국과 동양의 걸출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역사가 이곳에 뒤엉켜 있는 건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각 진영은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라는 이질적인 종교로도 대별되고, 덕택에 터키의 역사와 문화가 복합적이라 아무리 유능한 가이드의 설명이라도 귀에 쏙 들어오기가 어렵다. 

터키 건축의 위대함을 맛보러 떠난 이번 여행에서 나는 아주 귀중한 것을 얻었다. 듬성듬성 정취만 보고, 북적거리면 쉽게 발길을 돌리던 나로서는 꽤 뜻 깊은 교훈이다. 앞으로 어디를 여행하든,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더 알고자 한다는 말을 되새기리라고. 특히 터키 여행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 지식을 알아야, 혹은 알고자 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내가 주는 터키 여행 팁이다.  

백수의 다리로 불리는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금세 유럽의 분위기가 난다. 거리에서 만난 청년들. 터키  곳곳에서 만나는 알록달록한 빼어난 색감에 단단히 매혹당하다.   



블루모스크와 성소피아 성당이 마주보고 있는

술탄아흐메트 광장


저녁 무렵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호텔 인근에 제법 큰 바자르가 있다는 설명에 저녁식사 전 잠시 짬을 내 산책을 나갔다(그랜드 바자르는 아니다). 바자르는 터키의 눈부신 색감을 담은 보물상자 같다. 알록달록한 조명기구부터 도자기그릇, 갖가지 빛깔의 천들까지. 눈으로만 구경하고 구매는 하지 않았다. 매혹적인 환상을 간직하고 싶어서라는 말은 너무 수사적이다. 대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구수한 군밤 냄새에 이끌려 한 봉지 사들고 오물오물 까먹으며 돌아왔다.  

 다음날 관광객이라면 꼭 들른다는 술탄아흐메트 광장에 들어섰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너무나 유명한 블루모스크와 성소피아 성당이 마주보고 있으니 당연하지. 몇 년 전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설명에 놀란 기억이 난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그 유명한 곳.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 몇 년인지 달달 외운 기억도. 물론 그때 배우기야 했겠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고, 동양의 이스탄불이 서양의 수도였단 사실도 괜히 놀랍고 그랬다. 술탄아흐메트 광장은 콘스탄티노플의 유명한 경마장이었다고. 

나는 이스탄불에 닿기 전, 이미 에디르네에서 동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터키의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아름다운 모스크를 두루 경험했다. (그 얘기는 다음에) 셀리미예 모스크는 스케일이 크면서도 어찌나 단아한지. 얼마 후 이스탄불에서 보게 될 블루모스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기대를 덩달아 품었다. 거대한 돔을 장식한 푸른빛. 햇빛이 깃든 블루모스크를 담은 사진을 본 적이 있었고, 드디어 실물을 내 두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살짝 감격스러웠다.   

과연이다. 원형의 돔을 꾸민 푸른빛 타일 장식은 빛깔로 보나 뭐로 보나 예술적으로 문화적으로 인류가 손꼽을 만한 유적이다. 옥에 티라면 관광객이 너무 많다는 것, 그들의 발냄새가 진동해서 부풀었던 기대와 환상에 흠집을 냈다는 것.(본래 모스크에 들어가려면 우두(Wudu)라고 하는 기도 전 정결 의식을 치러야 한다. 모스크 앞에 수도시설이 놓여 있는 이유다. 이슬람의식에 따라 오른손에서 왼손, 입안, 목덜미, 발 등을 순서대로 씻어야 한다. 그러나 신자가 아닌 관광객들이니 발냄새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들리는 말로는 해 뜰 때 모스크 안에 있으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타일에 반사해 장관을 이룬다지만 여행객이 경험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하룻새에 에디르네의 고적함이 금세 그리워졌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블루모스크의 아름다운 푸른빛, 자연의 빛을 인간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더할나위없는 조화를 이뤄냈다.   

   

성소피아 성당,

격렬한 두 문명의 충돌이 남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


만일 내가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듣지 않았다면 나는 유명세 있는 유적의 감흥 없음에 대해 꽤 신랄한 유감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특히 성소피아 성당은 그렇다. (성소피아 성당은 아야소피아, 하기아소피아라고 불린다.) 블루모스크를 나와 술탄아흐메트 광장을 가로지르면 성소피아 성당이 나온다. 이슬람 사원 맞은편에 기독교 성당이라니. 이스탄불답지 않은가. 

이방인의 눈썰미로 보자 들면 발냄새는 날지언정 블루모스크가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한 성소피아 성당은 어수선한데다 아름답다는 찬탄의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건축사적으로 성소피아 성당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우선 성소피아 성당은 블루모스크보다 거의 천 년 전에 세워졌다. (세번째 재건이 완성된 게 537년이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아야소피아가 세계 최대의 석조 돔이었다. 그 오래전에 완벽한 건축공학을 실현해냈단 사실에, 그 정교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지나는 객이 보기에는 그 화려한 평가에 호응하기가 어렵다. 돔을 장식한 화려한 문양과 색감에 감동한 눈으로는 실망하기 딱 좋다. 

돔 양식은 엇비슷한데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은 찾아볼 수가 없고 그저 누런 색 바탕에 이슬람 문양이 성의 없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더구나 한쪽 벽은 거의 복원을 위한 구조물이 세워져 있어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 물론 이곳도 관광객의 번잡한 발길에 치이기는 마찬가지였고.  

한창 복원중인 내부. 이슬람 문화를 대변하는 문양과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성화들이 뒤섞여 있는데다 한쪽 면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성소피아성당.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은 본래 그리스 정교회 즉, 콘스탄티노플 시대에 성당으로 쓰였는데,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면서 1453년부터 1931년까지 이슬람사원으로 쓰였다. 종이나 제단은 모두 사라졌고,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 성화는 석회로 발라져 감춰졌다. 

그러니까 누런 색으로 칠한 벽들 안쪽에는 화려한 금빛 장식의 모자이크로 표현된 성화가 가득하다는 얘기다.  드문드문 복원된 모습만으로도 어렴풋이 가늠이 된다. 성당의 모든 천장과 벽에 금빛 모자이크로 된 성화가 있었던 당시에는 창을 통해 빛이 스며들면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찬란했다고 전해진다. 



복원중인 성화. 스마트폰으로 찍어 금빛 모자이크의 빛깔을 담는 데 실패했다. 이슬람 문양과, 복원된 성화, 그 교차하는 동서양의 역사를 후대의 사람들이 카메라로 담고 있다.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격돌하는 이곳에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 사람은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다. 그는 무슬림만 출입할 수 있다는 제한을 폐지했고, 고고학자들이 회칠을 제거하고 성화를 드러나게 하는 것도 허락했다. 그러나 이때 회칠 위의 쿠란 내용이 훼손된다는 반발에 부딪쳐 1931년 회칠 제거를 다시 금지하였다. 다시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와 이슬람 신자들이 맞부딪치자 아타튀르크는 1935년에 이곳에서의 모든 종교행위는 금하고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그리고 지금, 후대의 사람들은 두 문명이 맞짱을 뜬 그 현장을 이렇게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다. 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촘촘하게 자리잡은 창문 새로 햇살이 들고, 그 햇살이 금빛 모자이크 성화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장관을 상상해보았다. 천국과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쉽게 추측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그 찬란한 위용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괜히 아쉽고 그리웠다. 

알게 되어서 생긴 안타까움이, 그리하여 펼칠 수 있는 상상과 마음이, 지금은 미술관으로 개관한 성소피아 성당을 좋아하게 만들었고, 다시 보게 만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 블루모스크

원래 이름은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오스만제국의 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명령으로 1609년 착공해서 7년에 걸쳐 완공됐다(1616년). 내부를 장식한 타일의 빛이 푸른빛을 띠어 블루모스크로 불린다. 17세기 이즈니트 타일의 걸작으로 예술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아야소피아의 역사

330년 5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한 후 30년이 지난 360년 첫 번째 아야소피아가 건설된다. 하지만 이 건물은 40년도 안 지나 폭동으로 소실되고 만다. 그후 11년 뒤(415년) 재건되었지만 120여년 뒤인 532년 대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 두 번째 아야소피아의 흔적은 현존하는 하기아 소피아의 일부 원기둥 등에 약간 남아 있다. 소피아의 세번째 재건은 532년부터 537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글_김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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