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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Sep 18. 2019

예쁜 언니

#09ㅣ존재 자체를 무시한 언니가 절대적 존재로 되어가는 기막힌 사연

      언니, 언니는 거울 보면서 언니 얼굴이 미워 보인 적이 있어?

 

고등학교 때인가 언니가 거울을 보며 치장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언니에게 물어본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쁜 여자 얼굴의 기준은 우리 언니처럼 얼굴형이 갸름하고 눈이 꽃사슴처럼 크고 눈망울이 맑고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자그마한 여자다. 거기에 다리는 일자로 길고 가느다랗고 팔도 얇고 길어서 꼭 젓가락처럼 마른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이다. 

    

어릴 때부터 난 못난이로 통했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커버렸지만 그전엔 식구 중에 나만 엄마를 닮아 키가 작다고 걱정했고 딸들이 다 이쁜데 막내만 다르게 생겼다며 혹시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게 아니냐며 놀리던 어떤 할아버지 말에 진짜 다리 밑까지 가본 적도 있다. 그 말이 그 어린 나이엔 믿을 만한 게 언니들 모두 이름의 맨 앞 자가 돌림자인데 하필 나만 영 딴 이름으로 불리고 얼굴도, 성장 속도도, 거기에 이름까지 다르니 그 짓궂은 할아버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식구 중에 믿을 사람은 아빠밖에 없었다. 내가 막내이기도 하지만 아빠가 시키는 피아노 연습을 꼬박꼬박열심히 하고 유명한 피아노 선생님이 내가 아주 잘 따라 한다니 아빠한테는 내가 너무 기대되는 이쁜 막내딸이었다. 딱 한 번의 반항을 빼고는 7살부터 꼭 중학교 3학년까지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하루 6시간씩 연습을 해대니 어찌 피아노를 못 치겠는가? 

  

음악성은 없지만, 연습량이 많아 베토벤, 바흐, 쇼팽, 리스트 등 더 이상 진도 나갈 피아노 책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탓에 아빠는 무조건적이고 편협적인 사랑을 나에게만 퍼부으시며 나의 못난 코도 복 코라며 우기셨고 그런 아빠의 전폭적인 사랑은 두 살 터울인 언니의 마음에 깊은 외로움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우리가 커서야 나누는 대화에서 알게 되었다.

  

피아노를 빼고는 나의 유년 시절을 얘기할 수가 없다. 밖에서 들려오는 여자아이들의 고무줄 치기며 줄넘기 놀이며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에 마음이 심하게 유동 쳤지만, 연습시간을 칼같이 지켜야 ‘변소’ 행의 벌을 받지 않기에 눈물을 참으며 피아노를 치고 또 쳐야 했다. 지금도 언니들은 그때 그 소리 듣는 게 지긋지긋해서 자기 아이들한테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런 면에서 언니는 놀이동산의 자유권 티켓을 받은 셈이다. 아빠의 눈 밖 세상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지 땅 치기를 하던지 아무런 통제 없이 자유로이 노는 모습이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음도 나중에 서로의 다른 관점에서의 유년 시절을 얘기하며 안 사실이다.

    



내가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언니는 나를 이뻐할 리가 없었다. 언니는 나를 친동생이 아니라 옆집에 사는 앙칼지고 욕심 많은 아이쯤으로 여기고 나를 그냥 없는 존재처럼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무시해 버림으로써 아빠에 대한 무언의 반항을 나를 상대하지 않는 걸로 복수를 한 셈이다. 존재 자체를 무시당한 기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난 언니를 너무도 좋아했다. 

    

언니가 입는 옷들은 무조건 이뻐 보여 나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몰래 입다 엄청 혼나고 언니의 신발이며 액세서리, 심지어 언니의 학교 친구나 남자 친구도 내 친구 이상의 관심 대상이었다. 연예인의 연애 상대가 일반인들에게는 큰 이슈가 돼 듯이 언니의 일 거수 일투족이 궁금하고 꼭 닮고 싶었다. 그러나 외모만은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언니의 갸름한 얼굴형에 비해 나는 턱이 약간 나와 있고, 언니의 도톰하고 오뚝한 코에 비해 나는 낮고 작은코를 가졌고, 언니의 자그마하고 옅은 분홍빛 입술에 비해 나는 커다랗고 진한 입술을 가졌다. 키도 언니는 크지도 작지도 않아 힐을 신으면 너무도 이쁜데 나는 언니보다 큰 키여서 힐을 신으면 껑충하게 보여 싫었다. 

      

내 존재 자체를 싫어했던 언니가 급기야 나를 남에게 보이기도 싫었는지 대학 졸업식에 오지 말라고 선언 했다. 지금 같으면 에이 자존심 상해하며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간다고 당당히 말했을 텐데 그때는 그냥 말없이 식구들 틈에 끼어 갔던 언니 바라기였다. 지금에 와서도 내가 그날 신고 간 구두에 불룩하게 나온 발등이 살쪄 보여 미웠다고 말하지만, 그 구두조차 언니가 신으면 너무 이뻐 나에게는 작지만 억지로 발가락을 구두에 끼워 넣었으니 발등이 구두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건 모를 것이다.

    두번째 하늘이 무너졌다

   

언니의 신혼집이 하필 내 대학교 근처였지만 언니가 그곳에 산다는 거 자체를 잊어야 했다. 거의 가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는 어느 날, 언니 아들이 3살쯤 되었고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며 결혼 준비를 하던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비보가 비수처럼 날아왔다.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16주 진단이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때 엄마의 부재로 하늘이 무너지도록 울며 무서움에 떨었던 이후 그날, 두 번째 하늘이 무너졌다.

     

한쪽 다리는 천장에 매달려 있고 다른 한쪽 다리는 침대 위 다리 받침대에 올려져 있고 허리부터 양발까지 모두 붕대에 감겨 있었다. 그렇게나 이쁜 눈은 실핏줄이 터져 피가 흥건한 듯 충혈되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 그렇게 오뚝한 코도 입도 보이지 않고 엉덩이뼈가 으스러지고 다리뼈 4개가 부러지고 팔이 빠져버리고 여기저기 찰과상에 그야말로 눈 뜨고 못 볼 참담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추운 겨울 아침에 사우나를 갔다가 아이를 싸안고 아이가 추울까 봐 서둘러 다른 사람에 비해 제일 먼저 찻길 신호등 건널목을 건너려다 미쳐 건널목에서 언니를 보지 못한 티코가 그것도 무보험 차가 언니와 아이를 쳤다. 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아이는 몇 미터 앞으로 날아갔는데 그나마 정말 다행인 건 아이는 두꺼운 잠바와 담요를 덮고 있어서 감싸지 않은 얼굴에 작은 상처만 입었다. 

    

그날로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내가 엄마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데도 당연히 내가 언니 보호자가 되어서 간호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부는 아이를 케어해야만 하고 엄마는 아빠의 식사를 해 주셔야 함으로.. 그렇게 우기며... 언니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엉덩이뼈가 으스러졌기 때문에 꼼짝없이 천정을 본 자세로 24시간 누워있어야만 했기에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누워서 해결해야 했다. 거기에 대퇴부 뼈와 종아리뼈가 다 부러져서 엉덩이뼈가 먼저 조금씩 회복되었어도 퇴원 후에도 오랫동안 걷지 못하고 목발을 짚어야 했다. 

     

언니는 아마 그때부터 나를 동생으로 인식한 거 같다. 내가 먹여주는 밥을 받아먹어야 했고, 내가 갈아주는 기저귀를 눈감고 참아내야 했고, 내가 닦아주는 언니의 몸뚱이를 나에게 맡겨야 했기에 내가 절대적이었으리라.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듣고 내가 하는 행동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정말 오랫동안 옆집에 사는 얼굴만 아는 여자둘에서  보통 가족의 친자매들끼리 나누는 대화처럼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 아빠한테 혼이나 손을 들고 벌서며 서로를 째려봤다는 이야기부터...

     언니와 각자의 철학을 콩떡,찰떡같이 믿는 절대적인 자매

그 후로 우리는 그 어느 집에서도 보지 못한 절대적인 자매가 되었다. 우리 둘이 친자매라고 말해도 절대 믿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하게 서로 닮지는 않았지만 난 언니의 ‘인생의 모든 것이 우주이 법칙’이라는 철학을 찰떡같이 믿고 언니는 나의 ‘이 순간만이 행복’이라는 철학을 콩떡같이 믿는다. 둘 다 나이가 드니 조금씩 닮아가는 면도 없지는 않은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말을 들으면 난 속으로 웃는다. ‘그거 좋은 말이네’ 라고 하지만 언니는 좀 서운하게 들리나 보다 ‘그~래?’ 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언니의 병실을 지키는 두 달 동안 난 결혼 준비를 해야 했다. 가전제품은 전화로 카탈로그를 보며 주문하고 가구는 잠깐 짬을 내 근처 가구점에서 한 번에 일괄 구매하고 예단도 예물도 하루 만에 해결했다. 덕분에 결혼식을 조계사에서 하라는 시어머니의 말씀도 신혼집이 시댁 바로 옆이라는 것도 바로 시원하게 예스라고 대답하는 착한 예비 신부가 되어 버렸다. 

     

 결혼식 날이 언니의 퇴원 날이었다. 아직은 푸르스름한 봄 새벽에 자고 있는 언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너무 애잔했다. 아마 눈 감고 있는 언니의 마음은 허전했으리라. 슬프고도 기쁘게 들리는 피아노 선율의 웨딩 마치는 휠체어에 앉아 희미하게 미소 짓는 언니를 더 이상 간호해주지 못한다는 슬픔과 그래도 휠체어를 타고라도 내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힘들게 참석해준 기쁨이 교차했기 때문이리라...


‘예쁜 언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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