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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pr 06. 2021

미국에서 크레딧(Credit)이란?

미국에 처음 왔을 때의 일이다.

2003년 정확히 4만 불(그 당시 한화로 4천만 원)의 종잣돈을 가지고 당당히 미국에 입성했다. 3년이라는 체류기간을 정하고 왔기 때문에 솔직히 어느 정도가 적정한 종잣돈인지 가늠이 가지 않은 완전 생초보로 그 정도 돈이면 뭐 몇 달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그런 생각도 없었나 보다. 그저 정착에 필요한 돈이라고 해두자.


암튼 4천만 원을 가지고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가구를 사는 일이었다. 침대며 식탁이며 소파 등등을 사야 하는데 카드는 당연히 없고 몽땅 현금으로 결재를 하고 스탠드 두 개를 옆구리에 끼고 조용한 아파트에 불을 밝혔다. 그다음으로.. 아뿔싸! 이곳은 대중교통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곳이라는 것도 모르고 왔으니 일단 일을 해야 하는 남편 차를 사야 했다. 현금으로 천만 원 이상을 주고 중고차 시장에서 차를 샀다. 그때는 현금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았겠는가? 그 다음날 중고차를 파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차를 다시 반납하란다...


참나, 한번 팔았으면 끝이지 어떻게 다시 가져오라는 거야? 처음엔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은 줄 알고 갔지만 정말 차를 다시 내놓으란다. 기가 막혀서.. 이유인즉 천만 원 이상의 현금은 국세청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쪽에서 할 수 없다면 줄 수 없다는 말과 우리의 크레딧 점수로는 차를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돈을 빌리는 것도 아니고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건데 왜 내 크레딧이 필요하다는 거야???


미국에선 가만히 있어도 코를 베간다는 말이 우리한테 딱 들어맞는 순간이라고 생각되었다. 돈을 줬는데도 다시 내놓으라니 더군다나 우리는 현금을 주고 샀는데 현금으로 돌려주지도 않고 체크라는 수표를 주는 게 아닌가? 체크는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데 그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고 현금으로 돌려받지 못한 분한 마음에 괜히 미국에 왔다는 둥 우리가 영어를 못하니까 무시하는 거 아니냐며 다시는 그곳에서 차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더랬다.


사실 지금도  명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다시 리턴을 하라고 했는지는... 하지만 마고 그중에 하나는 우리에게는 절대 있을  없는 신용 점수일 것이고  번째는 생초짜 소수민족이라는 꼬리표일 것이다. 미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는데 어찌 신용이 있을  있을까? 소수민족의 꼬리표는 처음엔   없고 살면서 알게 되는 슬프지만 진실이라는 사실이  힘들다.


하지만 현금을 주고 체크를 받았다는 건 우리에게 굉장한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만불(천만 원 이상)이 넘으면 미국에서는 검은돈으로 생각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봐야 하는 일이었고 세무조사가 들어가면 법적으로 골치 아픈 일이기에 아주 꺼리는 일중에 하나가 현금으로 거래하는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야말로 우리는 검은돈처럼 보이는 현금을 주고 환골탈태해서 공식적으로 쓸 수 있는 은행돈으로 받은 셈이다.


다시 차를 살 때는 은행에 정당하게 들어있는 내 돈으로 당당하게 지불했고 리턴하라는 일은 없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는 신용이 없었다는 일이다. 우리에게 신용이 있었다면 단 $1 필요치 않았던 일이었다. 적어도 미국인들에게는 그렇게 말한다. 그들이 말한 내용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신용이 1도 없는데 차를 줄리는 만무한데도 현금을 준다고 하니 세일즈맨이 욕심이 생겼는지 현금을 모두 받고 우리에게 키를 건넨 건데 알고 보니 회사에서 그렇게 큰돈을 현금으로 받는 건 안 되는 상황을 알고 다시 리턴해야 하는 일이 되었나 싶은 크레딧에 관한 에피소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처럼 미국에서 신용은 굉장히 중요하다.


직업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신용이 없으면 절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용의 등급이 매우 중요한 나라다. 크레딧이라고 했을 때 처음엔 대중적으로 쓰고 있는 크레딧 카드만을 연상했었다. 당신의 크레딧 점수가 몇 점인지 정확히 나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말이 되는가 싶기도 했다. 개인의 신용등급이 대충 상중하로 나뉠 거라는 예상을 한국에서도 했었다. 은행에서 VIP 고객은 지점장실에서 특별 대우를 받는 정도로 생각된 신용등급 말이다.


그런 신용등급을 생각한다면 여기에선 오산이다. 


그냥 상중하로 메겨지는 보편적인 두리뭉실한 수준이 아니라 딱 점수로 개인의 신용을 보여준다. 간단명료하다. 300점부터 850점까지 있는데 보통 720점 이상이면 A등급으로 차를 살 때 돈 한 푼 내지 않고 키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점수라고 한다. 650점부터 719점은 B등급으로 이민 초기 대부분의 경우에 이 등급에 속한 게 되는데 신용이 나빠지기 전에 주는 기본적인 신용 점수고 여전히 좋은 이자와 좋은 프로그램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고 낮은 이자율로 차를 살 수 있는 등급이다.


620에서 679점은 C등급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와 한정된 프로그램 선택이 주어지고 D등급인 619 이하는 아주 높은 이자로 거의 극히 제한된 프로그램이 주어지며 최소한 차 값의 20% 이상의 다운페이를 해야만 차를 가지고 나올 수 있으며 보증인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코싸인이라고 해서 신용이 없는 사람이 보증인을 내세워 사인을 할 수 있는 제도로 한국에서도 보증을 잘 못써서 같이 망하는 일들이 많은데 여기에서도 딱 그 제도와 같다.


나 같은 경우, 크레딧 점수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집은 남편과 공동소유로 되어있고 사업을 하고 있지만 세금을 무조건 떼야하는 직장인에 비해 세금을 덜 내기도 하지만 카드를 많이 쓰는 스타일도 아니다 보니 크레딧을 쌓는 일이 적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남편은 크리딧이 좋은 편이다. 큰 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고 월급의 35%을 세금으로 따박따박 내고 있고 회사 카드를 사용하고 있어 크레딧을 쌓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장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내 차를 내 이름으로 사려면 이자율이 남편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또다시 남편 이름으로 사야 하고 그러면서 남편의 크레디트가 높아진다. 집을 사려해도 내 이름으로는 대출도 잘 나오지 않고 이자도 높아 또다시 공동소유의 집을 구매해야 한다. 크레딧에 대해 알았다면 처음에 조금 비싼 이자율을 감수하고 크레딧을 쌓았다면 남편과 똑같은 크레딧 점수로 발란스를 유지하고 함께 대출에 대한 짐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소유는 공동이지만 대출은 남편만이 지고 있는 셈이고 이는 크레딧 점수가 낮아 신용은 조금 떨어지지만 대출인은 내가 아니라서 대출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을 가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크레딧이 좋은 부모 밑으로 은행 계좌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크레딧을 쌓게 하는 일이다. 크레딧이 없어서 아이 이름으로 차를 살 수는 없지만 졸업을 하면 소유주를 바꾸고 보험도 독립을 시켜야 한다. 어린 나이 때부터 크레딧 점수가 쌓이면 정작 크게 결정할 때 유리한 조건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은 타운 하우스를 사면서 단 $1,300(백오십만 원)을 주고 키를 건네받았다. 물론 처음으로 집을 구매하는 조건이 맞아떨어진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시가로 3억이 넘는 하우스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바로 크레딧 점수가 높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인컴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구하지 않았고 아파트 렌트비를 한 번도 밀리지 않고 크레딧만을 쌓았다. 그래서 막상 첫 집을 구할 때는 보증금이나 보증인 없이 자신의 크레딧만으로 한 달 렌트비도 되지 않는 액수만 지불하고 은행에서 전액 담보를 해주는 조건(0% 다운) 집 키가 넘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크레딧이다.


미국인의 평균 크레딧 점수는 700점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미국 가정의 평균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 이하의 점수로는 미국에서 사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보면 된다. 차를 구입하는 데에도 보증인 없이는 살 수 없고 돈이 많다 하더라고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이자율을 감내해야 한다. 이점수는 미국 사람들의 점수고 우리 같은 소수민족 특히 아시안의 점수는 다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어느 사회건 나의 신용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건 맞는데 문제는 우리 같은 소수 민족은 미국인과 같은 크레딧으로 정당하게 대우받으며 살아가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다. 열심히 모으고 열심히 세금을 내서 우리도 미국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정당당하게 크레딧을 받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미국인의 평균이 700점이라면 이민지들의 평균은 아마 720점으로 생각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미국인과 같은 선상에서 저울질당한다면 당연히 우리가 기운다는 건 걸어가는 똥개도 알 것이고, 우리는 미국인들보다 점수가 훨씬 높아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고 점수다.


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경제적인 크레딧은 각자가 열심히 벌고 열심히 세금 내고 정확한 날짜에 세금을 잘 내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종별 크레딧의 점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아시안을 향한 증오범죄의 수위를 보면 무차별 폭력과 폭언, 그리고 강탈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과연 경제적인 크레딧과 함께 인간적인 크레딧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크레딧이라함은 경제뿐 아니라 인간대 인간의 신뢰가 우선되어야 한다.


코로나로 온갖 잡다한 정신적 문제가 결부되어 별의별 형태의 병명들이 넘쳐나고 있다. 폐쇄된 공간과 우울한 사회 분위기로 더 이상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크레딧에 바닥이 난 상태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관계에서 웃고 우는 사회적 동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절실히 깨달아가고 있는 이때, 경제적인 크레딧에 열 올리며 높이려는 잣대보다 인간과 인간의 크레딧을 쌓으려는 노력이 더 시급한 오늘을 본다. 방금 미국 뉴스에 아시안이 길거리를 가다 미국인에게 맞아 결국 죽었다는 일면 뉴스를 접하며 오장육부가 뒤틀림을 느낀다.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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