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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pr 24. 2021

손바닥에 적어준 한마디..."꼭 살게"

코로나에 걸리면 한국에선 호텔 미국에선 집콕?, 그 이후...

두어달 전쯤 코로나에 걸린 내 지인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렸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한 분은 한국에서, 한 분은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는데 코로나에 걸린 건강상태는 뒷전이고 그 상황이 너무도 달라 비교하며 나라에서 개인에게 주는 혜택만 이야기하다 '미쳤다'를 만발하며 끝마친 글이었다.


오늘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코로나에 걸린 미국 지인 세 모녀는 집 문을 걸어 잠그고 타이레놀만을 시간에 맞추어 챙겨 먹으며 일주일 정도를 버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났다. 병원에 가기는커녕 의사나 나랏일 하는 양반의 코빼기 하나 보지 못한 채 아무 일 없는 듯 그냥 조용히 감기몸살을 앓다 나온 것처럼 조금 핼쑥해진 모습으로 일터로 향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재검사는커녕 그들의 행동을 제재하는 사람 하나 없었고 자가진단으로 스스로 괜찮다 인식하고 일상생활을 했다. 엄마는 일하는 일터로 돌아가 평소대로 미국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했고 아이들은 대면 수업은 하지 않으니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하면서 간간이 쇼핑도 하고 아이들 나름의 생활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했다. 언제 코로나에 걸렸나 싶게 말이다.


문제는 한국에 있는 내 친구가 코로나 이후 극한 상황에 놓여있다.


아들이 먼저 코로나 확진이었고 그다음이 내 친구인 엄마였다. 내 친구가 시설로 들어가면서 호텔급 시설에서 살이나 빼고 나가야 되겠다는 말에, 나는 그런 시설을 공짜로 이용하고 병원비도 전액 지원을 해주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미국이라면 있을 수 없는 혜택이라며, 코로나로 인한 아픈 상태는 하나 묻지도 않고 그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말만을 남기며 글을 마쳤었다.


그 이후 내 친구는 무사히 퇴원을 했다. 문제는 내 친구가 시설에서 14일 격리를 하는 동안 친구의 남편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 친구와 같은 시설로 가면서부터 며칠 사이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아들이나 아내가 아무 탈 없이 14일 동안 격리하고 곧바로 퇴원하는 걸 보고 남편도 똑같을 것이라 예상을 하면서부터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간의 미열과 근육통이 있었지만, 혼자서 의사한테 묻지않고 타이레놀을 먹으며 코로나 증상이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을 했더란다.


왜냐하면, 남편한테는 회사의 오너라는 타이틀이 있고 하루라도 빨리 퇴원을 해서 집과 직장에 돌아가려는 마음에 조금 아프지만 약을 먹으며 견뎠다 한다. 그러면서 병을 무섭게 키웠고 며칠 뒤엔 급격한 호흡곤란으로 큰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14일만 격리하고 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요량으로 혼자 약을 집어삼켰는데 그게 이렇게 큰 화근으로 올지 그 남편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곧바로 큰 병원의 중환자실로 옮기고 열흘도 채 지나기 전에 위독하다 못해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내 친구는.. 엉엉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을 만큼 자신의 일이 아닌 것 같은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고 그래도 가망이 생겼다는 소식을 전했다.


산소 호흡기로도 가망이 없고 심폐소생술을 받던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을 때 거의 마지막 단계에 해본다는, 과거 삼성 이건희가 사용해서 더 유명해진 에크모(ECOMO)라는 장비를 사용해서 일단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과 함께 생존율이 50% 이상이라는 말도 들렸다. 


이제 살았구나!


너무도 큰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 에크모는 흉부와 대퇴부를 연결하는 관을 삽입하는 과정에서부터 난관이라 한다. 그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고 에크모가 그 사람과 맞는지의 여부도 달려있는데 삽입에 성공했고 정상적으로 피가 원활히 돌고 있다는 건 결과가 아주 좋다는 말로 간주 되어야 맞는 말이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만약 미국에서 에크모 치료를 했다면, 아니 치료 자체가 불가능해서 사용해보기도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에 한 표! 미국에 사는 어떤 분도 중환자실에서 비슷한 증상으로 계셨지만, 에크모 한번 사용해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 계신다. 에크모를 삽입하고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미국에서 받았다면, 아마 개인 파산 수순을 받을 것이고 빚더미에 앉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랬단다. 12억이 나온 병원 청구서를 보고 왜 살려놓았는지 한탄스럽다고...


한국에선 코로나 덕(?)에 무료인 에크모로 몇 주 후 일반병실로 옮기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내 친구는 남편의 얼굴을 거의 두 달 만에 봤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예전의 얼굴이 아니었다. 살이 너무 빠져 거의 알아보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약해 있었다. 면회는커녕 아무것도 반입이 안 되는 상황이 생각보다 너무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간간이 간호사가 보내주는 영상을 보긴 했다지만 아픈 사람을 그것도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병문안도 못 가고 병원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는 상황을 당해보지 않으면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끝을 알 수 없는 생과 사를 넘나들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한번 만져보지 못한 채 차가운 병실에서 하루를 그리고 몇 날을 어찌 보냈을까? 갈 수 없는 것과 가지 못하는 상황은 분명 너무도 다른 일이다.


그런 억울하고 힘든 아픔을 이겨내고 일반병실에서의 재회는 아마 죽었다 살아온 병사의 처절한 환희였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의 잉꼬부부라고 말한다면 그 재회의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거의 30킬로 이상 몸무게가 빠졌고 폐에 이상이 생겨 말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모든 기관이 저하되었음은 물론이었을 것이고 몇 달 동안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서로가 마음 고생한 그 마음을 눈물로 그 긴 대화를 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친구는 그 뒤로 남편의 병실을 지켰다. 코로나로 간호하는 아내도 바깥출입이 금지되었다. 그렇게 달콤한 상봉도 잠깐.. 폐의 악화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또 다른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권유로 수술대에 올랐다. 그 예후에 문제가 생긴 게 지금 현재의 상태다. 수술 뒤로 남편은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가고 생존은 했지만, 이제는 폐 이식만을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오늘은 아주 슬픈 문자를 친구와 주고받았다. 남편이 말을 못 하니까 친구의 손바닥에 겨우 이렇게 글을 썼단다.


'꼭 살게'


난 여기에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요즘 자기의 몸이 눈물과 한숨으로 만들어진 거 같다고 했다. 아무리 잉꼬부부라 한들 어찌 부부싸움이 없었을까? 자기가 남편을 미워해서 이런 병에 걸린 거 같다며 그렇게도 자책을 할 수가 없다. 돌아서면 남이 되는 게 남편이라고, 왜 저렇게 미운지 모른다며, 내가 아는 부부인가 싶을 만큼 심한 말을 한 적도 있지만, 결코 진심 일리 없는 부부였다. 그런 부부에게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들이친 것인데 왜 하필 내 친구인가?


실제로 한국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미국의 일일 사망자에 미치지도 못하는 1천 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아마 주위에 코로나 확진자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고 사망자는 티브이에서나 보는 먼 나라 이야기로 가까이에 코로나로 이렇게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만큼 방역이 철저한 나란데...


나는 미국에서 너무도 많은 코로나 확진자를 보았고 실제로 아주 가까이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계신다. 이제는 '에구 또...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네'라며 넘어갈 수 있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사실이 지금의 미국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지 않은가? 왜 하필 내 친구가 코로나에 걸렸고 친구의 남편이 이렇게 힘들어졌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냥 한마디로 재수가 없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 남편은 기저 질환자도 아니었고 나이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 50대 중반이고 술 담배도 안 하는 극히 건강한 50대 한국 남자였다. 어떠한 변수에도 걸리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감염이 된 걸 보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 내가 이런 마음이니 친구는 어떻고 그 가족은 어떨까 싶다.


요즘 코로나로 모든 게 엉망이 되어 살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엉망진창이 되고 이때다 싶게 서로를 힘들게 생채기 내려는 인간들이 들썩거리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장막을 드리우고 사주를 경계하며 살고 있다. 백신을 서둘러 맞아서 안심이다 했더니 이제는 3차를 맞아야 한다니 언제나 이 코로나부터 자유로워질지 앞이 깜깜하다. 정말이지 오지 않을 거 같았던 찬란한 봄이 기어이 왔다고 글에, 유튜브에 떠든 날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거의 영하 날씨처럼 바람이 쌩쌩 불어 온몸에 한기가 들까 옷으로 언 몸을 꽁꽁 싸맸다.


누구는 남편으로 모든 감각 기관이 얼어붙어 손 하나 까닥할 수 없을 만큼 기가 빠져 있는데 그래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나는 살아보겠다고 서둘러 백신을 맞고 춥다고 몸을 패딩으로 감싸고 기운을 업시킨다며 막걸리까지 기울였으니 한치 걸러 두 치라고 이럴 수가 있나? 부모가 돌아가신 상에서도 산자는 살아야 한다며 그 밥이 넘어가고 아내가 죽어 함께 따라 죽을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가도 일 년도 채 가기 전에 새장가를 간다는 남정네도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미친 듯 돌아가는 세상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본다.


하지만,


그 무섭다던 스페인 독감(그때는 왜 나라 이름으로 감기 이름이 남겨졌는지 지금도 억울할 일이지 싶다. 스페인으로 봐서는)도 세월이 지나서 없어졌으니 우리 같은 후손이 지금껏 대를 이었고, 세계대전으로 많은 사람이 총 앞에 무릎을 꿇어가며 이 지구를 지켜 살아남았고, SF영화에서나 실감 나게 그려진 화면에 설마 했던 내용이 현실이 되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낯설어 보이는 지금의 현실이 암담하기 그지없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없어질 이름이다. 


그 이름 앞에 하필 내 친구의 남편이 있을 뿐이다.


산사람은 살아야지, 그래야 남편도 힘이 나실 거야, 그래 그렇게 살아 야지라고 말하고 있는 내가 그 친구에게 얼마나 죄스러운지.. 내가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과연 옳아 보일는지 모든 게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운 한 밤이다. 내일이면 또 태양이 뜨고 그 태양 빛에 취해 커튼을 열며 기지개를 켜겠지.. 나만 말이다. 친구야 미안하다.


https://brunch.co.kr/@jinanamoo/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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