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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n 12. 2021

제일 늦게 쓰고, 제일 먼저 벗어 던진 ‘미국 마스크’

민낯이 고스란히 나오다 못해 모두 까발려져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창피했던 코로나 시대의 최대 후진국이 바로 미국이었다. 의료시설 빵점, 의료기관 빵점, 국민의식 빵점, 수준 낮은 대통령, 거기에 인종차별의 끝판까지... 뭐하나 건질 것 없는 2020년 최악의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랬던 미국이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지난 4월 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백신 접종자는 대규모 군중이 모이지 않은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한 이후 미국은 급속히 ‘정상 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이지만 백신 확보와 접종에 사활을 건 결과다. 그 뒤로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담을 가지면서 지금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라 일반인들은 무작정 정부의 말을 믿고 어디에서든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한국의 면적과 비슷한 메릴랜드주에서 하루 코로나 확진자수가 100명 미만이고 전체 미국으로 보면 평균적으로 주별 200명 안팎으로 일반 감기에 걸린 사람의 수보다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아직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많고 간혹 벗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정부에서 벗으라는데 벗지 못할 이유가 없어 쓰지 않는다 해도 이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한인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벗어던질 만큼 용기 있는 자들이 많지 않은 듯하다.


미국이 암흑의 늪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루에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온 지가 불과 몇 달 전이다. 세계 최강국은커녕 이렇게 후진 선진국이 어디 있나 싶을 만큼 후진성을 면치 못할 정도로 코로나 확진자수와 사망자수는 천문학적인 기록을 남겼고 나 또한 맹렬히 미국을 비난했다.  물론 거기에 기름을 부은 미친 또람프의 행동이 단단히 한몫했기에 가능한 비난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이렇게 긴 암흑의 터널을 뚫을 수 있을까 낙담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직후부터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조금씩 그 가닥이 잡혀갔다.


거기에 반해,


한국의 코로나 방역은 가히 발 빠르고 영민한 머리로 정부가 국민 통제를 가열차게 해서 사상초유의 결과를 냈고 세계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결과적으로 확진자나 사망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아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고 정부의 리더십과 정부를 믿고 따른 국민들은 박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흑과 백이 존재하듯 모든 게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닐까? 마스크를 쓰지 않은 방심으로 처절하게 방역에 실패한 미국은 백신 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다. 사람을 살리는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직까지도 감기나 에이즈의 근본 치료제가 나오지 않았고 전 세계인의 로망인 대머리 신약이 개발되지 않은걸 보면 알 수 있다. 알츠하이머에 그나마 효과가 있다는 신약이 18년 만에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을 오늘자 신문에 접할 수 있을 만큼 약 개발이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임상시험이 일단 5000가지 이상을 통과해야 하는 과정에서 그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함부로 덤빌 수 없다고 한다.


그랬던 신약, 코로나 19 백신이 미국에서 나왔다.


감히 셀 수 없는 숫자로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초유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백신을 개발하는 일밖에 없었다. 나라의 모든 기술을 동원하고 나라의 모든 돈을 들여서라도 이 난세를 극복하려는 미국인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나 또한 비난만 했던 일들을 후회하기를 간절히 빌었던 순간이기도 하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최고 맏형으로서의 체면을 사정없이 구겨버린 코로나로 인한 자존심을 백신 개발 하나로 '역시 미국이다'라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20여 년을 살면서 지금처럼 미국 정부의 빠른 대처를 본 적이 없다. 한국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의 속도로 매번 속이 터져 죽는다는 말만 되뇌며 살기를 몇십 년인데 미국이 달라졌다. 2월부터 시작된 백신 접종이었다. 처음부터 모두가 백신을 믿은 건 절대 아니었다. 의료 종사자들부터 맞기 시작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맞았다. 물론 100% 희생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 숫자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대중을 위한 소수의 희생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야 다수가 살아남으니 말이다.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공약을 했다.


이번 7월 4일 독립기념일까지 전 국민의 75%가 백신을 맞고 집단면역을 이루어 바이러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공헌했다. 현재 6월 11일 이미 거의 모든 주에서 이 숫자에 도달했음을 알리고 있는 고무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위험군에 속하는 12세부터 15세까지 청소년에게도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 이번 가을학기에는 반드시 모든 아이들이 학교로 복귀할 예정이다.


그렇게 무섭게 사람이 죽어나가 거리에 시신이 방치되었고 아직도 냉동차량에 시신이 보관되어있다는 뉴욕의 사망자 수는 전 미국에서 가장 낮은 숫자를 보이면서 이제는 백신 관광을 유치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도 백신 관광을 온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아찔했던 순간에 뉴욕을 봉쇄해 버린 쿠오모의 결단력에 지금의 문란한 생활을 뒤로하고 일단은 박수를 보낸다.


끝날 거 같지 않은 기나긴 터널을 거짓말처럼 빠져나왔다.


코로나가 상상을 초월한 일이라 코로나가 끝난다 해도 그 무서움의 기억으로 절대 이전의 일상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마스크를 벗어던지는 건 물론이고 그동안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던 울분으로 오히려 더욱 보란 듯이 파티와 여행 그리고 외모 꾸기에 나선 모양이다.


코로나19로 잃어버린 2020년을 보상받기 위해 '보복 여행'과 '보복 쇼핑'을 한다고 한다. 이는 상당수의 미국 가정의 재정 상태가 코로나19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것은 정부에서 돈을 천문학적으로 많이 풀어 개인 저축률이 급등하며 카드빚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몇 분의 이야기만 들어도 정부에서 돈을 받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고 그 액수도 상당하다.


그렇기에 여행업과 항공의 주가가 치솟고 있고 아마도 이번 여름의 여행은 상상 초월 정도의 기록적인 행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도의 변이 바이러스 '델타'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는 있지만 백신의 효과로 조금씩 전 세계가 안정화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곧곧에서 들려오고 있어서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백신 상황은 미국만큼 좋지 않다.


코로나 방역으로 엄지 척을 받았던 한국이 백신 수급에는 저조한듯하다. 다행히 한미 외교 공조로 101만 도스가 한국에 제공된다는 반가운 소식에 접종률이 좋아지리라 기대하고 있고 연말까지 집단면역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고 있다 해서 다행이다.


백신의 외교 공조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이 또 하나 있다. 한국에서 백신을 받은 사람은 외국에 다녀와도 자가격리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외국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은 나라 간의 백신 기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불확실을 내세워 입국 후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외국에서 출국 전 코로나 검사를 통한 PCR검사지에 음성반응이면 당연히 1차 확인이 되고 입국하자마자 또 한 번 테스트를 하기 때문에 염려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지금은 미국 일반 거리에서도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고 한인의 82% 이상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집단면역이 생기고도 남은 상황이라 이러한 정책은 경제적인 손실과 시간적인 손실로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나라마다 다른 상황을 일괄적인 잣대로 보는 통합된 외교는 지금 시대와 맞지 않고 유연한 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당장 여러 나라와의 교류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며칠 전 15살 아들이 백신 2차를 완료했다.


또래 아이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불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섰던 기억이 났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시커먼 팔을 양호 선생님에게 내밀면 알코올램프에 주사 바늘을 올려 소독을 하고 그 많은 아이들의 팔목을 찔렀다. 아마 주삿바늘 한 개로 전교생의 팔뚝을 간파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빨갛게 부풀어 오른 아픈 기억이 어느새 40년이다. 코로나 백신을 맞으며 팔을 비비는 내 어린 아들의 팔뚝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 덩어리를 집어삼켜 평생 다시는 이런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 추억으로만 남는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백신 2차 도스를 맞고 있는 15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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