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인'이라는 말이 참 좋다

#16ㅣ

by 멜랜Jina

한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지인인데 그냥 눈인사할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이는 지인이라고 하지 않고 나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언제나 서로에게 도움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를 지인이라고, 언제부턴가 우리가 흔히들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나는 지인이 많지는 않다. 죽을 때 친구 세 명만 있으면 성공한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어릴 적에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설마 죽을 때 3명만 있을까? 했다.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수록 한 명씩 줄어듦을 아는, 지금 나이쯤 되어보니 죽을 때까지 진정한 친구나 지인이 3명이나 내 옆에 남아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기다렸다 떠났다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흔히들 이곳에선 이민 동기라는 말을 쓴다. 같은 시기에 이민 온 사람들이 만나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끼리 종종 쓰는 말인데, 나도 다른 사이들에 비해 이민 동기와 잘 지내는 편이다. 같은 시기에 한국을 떠나와서 그때 그 시절의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단절이 주는 외로움을 공감하기 때문인데, 나보다 더 먼저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나 나중에 온 이민자들은 각자의 떠난 시절에 멈춰서 버린 고장 난 시계처럼 사고가 멈춰 각자의 추억만을 회상하기 때문에 시기가 다르면 공감도 다르다. 그래서 이민 동기끼리 그때를 회상하며 맞장구도 치고 추억을 공유하며 친해진다.




3년 안에 영어를 마스터한다는 야무진 목표 아래 학교를 다니기로 했던 때 대학 Esol class(영어 미숙자를 위한 반)에서 빨간 립스틱을 하고 머리는 아줌마 파마를 한 전형적인 한국 사람을 만났다. 나는 남편의 취업비자의 배우자로 왔기 때문에 공부를 하든 집에서 아이를 키우든 자유로운 신분의 자유로운 학생이었지만, 빨간 립스틱 바른 여자는 학생비자로 왔기 때문에 반드시 학교에 다녀야 하고 학점도 B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진짜 학생이었다. 학생으로만 만났으면 절대 지금의 ‘지인’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난 빨간 립스틱을 싫어했고 그 여자는 말라깽이를 극도로 혐오해서 멸치 대가리라 나를 칭하며 그녀 또한 나를 싫어했다. 아이들의 나이가 동갑인 관계로 맺어진 인연이 지금까지 둘도 없는 지인이 되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빨간 립스틱과 멸치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았다. 일단 겉으로 보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유분방한 헐렁한 타입인데, 그녀는 뭔가 정형화된 미국 오기 전 공무원이었던 신분 그대로 왠지 딱딱하고 정확한 타입이었다. 성격도 달랐다. 나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는 우유부단한 팔랑귀에 누구에게나 친절한데, 그녀는 호불호가 정확해 아무나 접근해서 아무 말이나 주고받지 않은 약간은 불친절한 공. 무. 원 포스였다.


그랬던 그녀가 아이들 문제에서 나에게 무너졌다. 같은 데이케어를 다니게 되어 내가 그녀보다 시간이 많으니 동갑내기인 우리 아이와 그녀의 아들을 픽업해서 같이 밥을 먹이고 수영장에 데려가기도 하며 내 아이와 같이 보내는 날이 여러 날이 되었다.


자기 동생 집에 놀러 왔다가 단지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이뻐 이민을 결심했다는 초짜와,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에 어린아이 둘을 들쳐 메고 온 초짜 둘이 만났으니 서로 돕는다는 의미보다는 서로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세 살에 만난 아이들이 새내기 대학생들이 되어 지금도 서로의 애정 문제로 고민을 들어주고 살피는 다정한 남매처럼 빨간 립스틱과 멸치만큼이나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 이쁘다.




인테리어라는 직업이 공간 개념이나 사물을 예리하게 보는 시각이 조금은 남달라야 하는 일이라 나는 한번 갔던 장소를 정확히 기억해서 다시 찾는다거나 간단한 가구를 조립을 하는 일 등 일상생활과 연결되는 일에서 못하는 편은 아닌 거 같은데 이상하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얼굴과 이름을 매칭 하지 못한다거나, 한번 본 얼굴을 어디에선가 봤는데 라며 머리를 굴려 보는 정도라면 이해가 되는데 두어 번 본 얼굴인데도 아예 처음 본 얼굴처럼 생각되면 문제가 된다. 이런 나의 안면 기억상실증을 증명해준 지인이 있다. 몇 번을 만나도 얼굴을 기억 못 하니 나에게 화를 냈던 그녀가 지금은 절친이 되었다.


아이 친구 엄마로 몇 번 인사를 했었나 보다. 3번쯤 만났나 본데 나에게 아직도 기억을 못 하냐며 화 아닌 화를 냈다. 빨간 립스틱처럼 특별한 무언가가 없으면 지나가는 1인이 되는데, 그녀는 화를 냈기 때문에 나에게 각인되었다. 그만큼 그녀는 단아하고 차분한 천생 여자의 모습이었다. 눈에 띄는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안면 기억장애인 내가 못 알아볼 수밖에.... 겉모습만 단아한 게 아니다.


성격 또한 나랑은 정반대여서 난 생각나면 곧바로 앞뒤 재지 않아 실수투성이인데 그녀는 차분히 오랫동안 생각하고 결정하면 오랫동안 지속하는 롱텀의 힘을 가지고 있다. 부부도 성격이 반대 라야 잘 산다고들 하는데 친구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하지만 성격은 반대여도 키나 몸집은 비슷해서 동양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미국 사람들은 우리가 자매냐는 말도 가끔 하는데 그럴 땐 눈 마주치며 키득키득 웃는다 뭐지? 둘 다 웃는 속마음은??


그녀가 못 하는 한 가지와 내가 못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먼저 내가 그녀보다 못하는 건 음식이다. 난 음식을 잘 못한다. 음식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가끔 하는 편이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장아찌 같은 오래 두고 먹어도 되는 반찬은 음식을 잘하는 분들께 공수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남편의 아내답게 음식을 잘한다. 한식 중식 서양식 모두를 쉽고 간단하게 맛을 낸다.

밥 먹으러 우리 집에 가는 셈


그래서 그녀가 ‘밥 먹으러 와라’ 하면 다른 일은 다 제쳐두고 달려간다. 내 생일상을 누가 이 미국 땅에서 그녀처럼 챙겨줄까? 음식을 그리 맛나게 얻어먹으니 내가 잘하고 그녀가 못하는 인테리어를 내가 도와야 한다. 그녀의 모든 음식이 나에게는 100%이듯이 그녀는 나의 인테리어에 관한 한 100%를 믿어준다. 그래서 그 집에 가면 내 집인 양 나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편하다. 밥 먹으러 우리 집에 가는 셈이다.




내가 막내인 관계로 동생이 없다 보니 언니라고 불러주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언니들로부터 받기만 했으니 동생을 챙겨주는 살뜰함이 부족할 터인데 손이 참 많이 가는 언니라면서도 나의 아바타를 자청하는 그녀는 내 동생이자 지인이다. 모든 여자들의 공공의 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뭐든 잘하면서도 이쁘다.


보기에 화려하고 싱그럽고 상큼한 꽃다발보다 묵직하고 투박하고 소박한 화분이 선물로 받았을 때 더 좋을 수는 없다. 꽃다발은 젊음인 양 화려하게 그 자체로 빛이 나지만 화분은 오래된 묵은지처럼 선뜻 손이 가지 않지만 질리지 않은 소박함이 있다. 꽃이니 화분이니 이런 것도 나이가 드니 생각나는 것들이고, 나보다 더 어린 그녀가 꽃이 아닌 조그만 화분 2개를 가지고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첫 방문의 화분 선물이 나에게는 알뜰함으로 비친 아직은 철없는 나이였다. 15년 전이었으니까....


그녀의 Deck(베란다)은 쓸모가 많다. 나의 덱은 관상용으로 일 년에 몇 번, 햇볕이 너무 맑고 따스하면 차 한잔 마시며 하늘을 한번 보거나 운동화를 빨아 물을 빼기 위한 장소(?) 정도로 쓰이는 곳이라면, 그녀의 덱은 일단 작은 전구가 줄줄이 천정을 따라 매달려있고 프로판 가스를 쓰는 이중 그릴과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덱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노란 전등에 취한다


화단에는 방울토마토며 호박에 깻잎까지 갓 따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채소들이 계절마다 바뀐다. 덱 중앙에는 예전에 엠티에 가서나 볼 수 있는 화로가 있어서 장작을 넣고 불을 피워 장작 안에 고구마나 옥수수를 포일에 감아 구워낸다. 타닥타닥 타는 그곳에서 우리 지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술 한잔을 기울이며 노란 작은 희미한 전구에 취한다.




지인이 많다고 좋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하나둘 떠났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시나리오 대본의 ‘지나가는 사람 1’이나 ‘들어오는 사람 2’에서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나 들어오는 사람이 대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 아는 사람이 지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서로의 노력과 인내와 믿음으로 이어가야 한다. 내 지금의 지인들이 내가 죽을 때 ‘지인’으로 내 옆에 있어 준다면 성공한 삶을 살다가 가는 건데.. 이런 말이 부담이 되면 안 되는데... 벨이 울린다.

‘지금 갈까?’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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