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신대륙을 발견하다"

#29ㅣ

by 멜랜J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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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평 규모의 카페 인테리어 의뢰가 들어왔다. 맨 처음 내가 만든 찌라시를 보고 신발장 하나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신발장 하나 만들어 주고 내 손에 쥐어진 건 단돈 오만 원이었지만, 직장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고 버는 돈과는 비교되지 않는 성취감이었다. 그 뒤로 아파트의 방하나, 거실 벽면 하나, 베란다, 10여 평의 카페 등 작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던 중 받은 의뢰였다.


현장 경험이 풍부해야 의뢰인과 작업자의 절충선이 나온다.

우선 의뢰인에게 견적을 제출하기 전에 현장을 실측하는 일에서부터 도면 작업, 디테일한 자재구매 비용 산출, 일하시는 분들 컨택까지 규모가 커지면 해야 할 일이 규모의 두세 배가 된다. 견적을 친다는, 칠 수 있다는 건 가구에 들어가는 나사 하나에서부터 마감이 되는 나무 시트의 종류나 가격까지 디테일하게 꿰고 있어야 하고 벽지나 페인트의 스퀘어 미터당 가격은 물론 본드의 양에서 면적당 들어가는 인건비며 부대비용을 알고 있어야 견적 좀 친다는 말이 가능하다.


현장 일이 쉬워 보여도 공정 즉 일의 순서를 알지 못하면 뒤죽박죽 꼬여 결국은 인건비로 손해를 보기때문에 하나하나 꿰고 있어야 함은 물론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처 비용까지를 계산에 넣어야 하고 하다못해 하드웨어 즉 문손잡이나 경첩의 큰 나사, 작은 나사같은 자잘한 것까지도 빠져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은 공정마다 인건비가 얼마나 들어가야 하는지가 관건인데 같은 목수라도 오야지(대장)의 인맥관리에도 탁월해야 하니 한마디로 인테리어 현장 경험이 풍부해야만 의뢰인과 작업하는 사람 사이의 절충선이 적절히 나올 수 있다.


다녔던 회사가 수입 자재 인테리어 회사여서 국산 자재와 수입 자재를 적절히 이용하여 고객들의 입맛에 맞게 인테리어를 해주었기 때문에 일단 자재에 대한 선택의 폭은 다양했고 가격을 비교하는 눈도 틔인 상태였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모든 책임이 나에게 달려 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분명 의뢰인은 나한테만이 아닌 여러 회사의 견적을 비교하기 때문에 내 설계가 기막히게 좋지 않고 고만고만하다면 젊은 여자보다는 경험이 많고 견적가가 싼 쪽으로 마음이 기울 것 임이 분명하다. 인테리어 설계가 월등히 우수하던지, 견적가가 기준보다 싸던지 둘 중에 하나여야 살아남는다.


내 전공이 인테리어이기 때문에 설계 도면 작업 또한 내가 해야 했다. 그때 그러니까 2000년이 되기 전쯤 3D가 막 도입되던 시대라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컴퓨터에 직접 손으로 명령어 (command)를 타입 하고 실제 사이즈를 입력하면 아웃라인과 스케일로 줄여진 사이즈로 설계가 되고 엄청나게 커다란 프린터로 뽑아 마커나 색연필로 색감을 입혀 그럴듯한 도면이 되면 파일에 넣고 견적서와 함께 제출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설계도 다른 업체에 비해 경쟁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난 다행히 다니던 회사에서 3D를 사용했으니 다행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프린터로 뽑는 일이었다. 이런 프린터기는 너무 비싸 개인이 소장할 수는 없고 프린터 사용료가 장당으로 고가였다. 글을 쓰는 일이라면 원고지에 연필로만 써야 한다고 알던 시절과 비교하면 정답일 게다. 말이 옆으로 샜다.




100평의 카페는 그 당시엔 큰 사이즈였다. 가라오케도 아닌데 무대를 만들고 소파를 배치하고 칸막이마다 촛대를 세우고... 문제는 입구의 벽면이었다. 내 생각에 입구에서 임팩트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의뢰인이 내 견적에 손을 들 거 같았다. 누가 그랬던가?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 창작을 한다는 건 어느 한순간 한 찰나의 모방이 아니고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외국 잡지를 몽땅 뒤졌다. 순간 벽면에 흐르는 분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거야!! 난 벽면이 아닌 들어가는 입구 정면에 반타원형의 모양으로 분수를 최대한 얇게 만들었다. 이게 먹혔다.


의뢰인은 견적비용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타원형 분수에 꽂혀서 나를 선택했다. 건물의 맨 꼭대층인데다 번화가여서 모두의 관심 대상이 되어 신나게 작업을 했고 나름 멋진 카페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 의뢰인이 또다시 의뢰를 해왔다. 이번엔 500평 규모의 진짜 배 카페를 만들고 싶어 하셨다. 100평도 나에겐 벅찬 공사였는데 500평이라니!


김 지나씨가 안 해주면 집 근처를 폭파하겠다’는 어이없는 주격 다짐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갓 서른 즈음이었으니 어려도 너무 어린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예스를 했지만, 솔직히 앞이 깜깜했다. 일단 울산에서 배를 만들어본 경험자를 수배해 만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묻고 또 물었다. 건축과 인테리어는 다르다.


건축은 땅부터 파고 시작해서 지붕을 얹는 것까지의 외장을 담당한다면 인테리어는 지어진 건물의 내부에 실용적인 동선을 고려해 나누고 적절한 자재를 써서 최대한 편리하고 아름다운 내장을 담당한다. 이 사이에서 괴리가 생긴다. 건축에서의 구조적인 설계에 인테리어가 맞추면 건물이야 튼튼하겠지만, 디자인 요소가 부족해 멋스러움이 부족하고 인테리어적인 요소를 강조하다 보면 부실한 건축이 되던가 복잡하게 되어 건축비가 많이 드는 건물이 나온다.


배의 모양에서부터 부딪혔다. 배의 구조상 중간 부분은 넓고 아래, 지면 아래로 내려가면서 좁게 깎이는데 외관은 철판으로 마감해야 하고 내벽은 나무로 하다 보니 마감이 딱 떨어지지 않고 그러자니 내벽도 철판으로 해야 튼튼하겠지만 비용도 만만찮고 두께도 두꺼워져 실내면적이 작아져 난감했다. 사각으로 반듯하게 올라가는 건물이어도 시원찮을 판에 철판으로 용접해가며 짜깁기된 건물을 올리려니 인테리어는 둘째치고 건축하는 부분이 더 어렵고 힘들었다. 어찌어찌 한층 한층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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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일하시는 분들이 나의 어림에 반기를 들었다. 보아하니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도면 하나 들고서 지시하는 꼴이 영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툭하면 언성이 높아지는 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그분들과 바닥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농담도 하고 그러다 언성이 높아지면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해가며 나이 드신 분들을 제압(?)했다.


배 중앙에 들어가는 입구를 놓고 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층의 다른 레스토랑을 갈 수 있는데 처음 들어가는 문은, 육중한 철문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꺾어 높고 넓게 앞면과 뒷면 모두 가로로 기다랗게 방부목을 붙여 처음의 이미지가 고급스럽지만 거대함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1층과 2층은 가운데가 뻥 뚫린 복층구조로 무대를 중앙으로 1층은 무도회장처럼 동그란 원형 테이블이 놓여있고 2층의 양옆과 넓은 뒷면에 테이블이 놓인 중세시대의 오페라 하우스를 연상하면 되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커다랗고 동그란 낮은 펜던트를 기다란 카운터 위에 떨어뜨리고 왼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철재로 오픈되어 옆 벽면 천정에서 흐르는 물과 함께 시원함을 더했다.


1층에서 2층까지 높게 뚫린 천정은 커다란 세 개의 사각 패널로 짜고 하얀색 천으로 모서리에서 안쪽으로 주름을 크게 잡아 가운데에 샹들리에를 달았더니 거대한 구름 안에 불빛이 보이는 그야말로 레스토랑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뒷면 갑판은 전체 통창으로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좁고 길게 길게 커튼을 내려 나부끼게 해 고급 테라스를 연상케 하고 앞 갑판은 커다란 돛을 세우고 야외용 테이블을 놓아 라이브를 즐기게 했다. 화장실은 디자인 벽돌로 얇고 빈티지한 색감을 가로로 세우고 입구 위 부분은 물방울 모양의 위의 뾰족한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KakaoTalk_20191029_224232301 (2).jpg 빛바랬을 줄 알았던 도면이 파일에 그대로 보관된 게 신기하다. 아득하다...


3층은 일식집으로 양옆 룸으로 들어가는 길을 에스 자로 살짝 휘어지게 만들어 재미있기도 하지만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4층은 그때 한창 유행하던 고급진 bar인데 생긴 모양 그대로 기다란 통나무에 니스칠을 7번이나 해서 아크릴을 얹어놓은 듯 두툼하게 만들고 천정은 바리솔이라는 고무 재질로 된 신소재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KakaoTalk_20191029_225230529.jpg 3층 홀의 S자 곡선이 동선의 흐름을 잘 잡았다는 평을 받았다

2년 동안의 긴 공정으로 현장일을 하다 보니 임신도 하게 되고 배가 남산만 해져서도 현장을 뛰어다녔다. 대리석을 갈아내는 굉음 소리도, 철판의 쇳소리도, 인부들의 고함소리도 모두 태교가 되어 태어난 아이는 시끄러운 소리에도 꿈쩍하지 않고 잠도 잘 자는 무던한 아이가 나왔다. 삼칠일이 되기도 전에 펑펑 쏟아지는 눈에도 현장에 나가야 했고 체인도 감지 않는 차가 언덕에서 미끄러져 사고가 나기도 하면서 2001년 봄 드디어 안산 중앙역에 ‘콜럼버스’라는 이름을 달고 오픈했다.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20억 정도의 돈이 들어간 어마어마한 배가 지상에 뜬 것이다. 떠 있다는 게 나도 신기하고 감개무량해 셧터를 연신 누르고 내가 만들었다는 흔적을 1층 한쪽 벽면에 새김으로써 나의 임무는 끝이 났다.


만들어 놓으니 이제는 입소문이다. 에스 자의 홀이 누군가에겐 너무도 신기한 디자인이라 입소문이 되고, 누군가에겐 가운데가 뻥 뚫린 복층이 멋져 만들어보고 싶다는 입소문이 되어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일에 묻혀 머리를 흔들며 다니던 그때 미국 바람이 나를 흔들어 댄 것이다. 콜럼버스를 타고 진짜 대륙을 건너 버렸다. 3년만 쉴 요량으로... 3년이 지금 16년이 되었고 평생을 여기서 살 사람으로 되어버렸으니 인생은 요지경임에 틀림이 없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스멀스멀 일이 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여긴 몸으로 하는 인건비가 너무 비싸서 웬만한 건 직접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자재 가격이 일반인들에게 오픈되어 있어서 인테리어를 따로 할 필요가 없고, 한다 해도 디자이너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꿔주는 컨설팅 정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한국에서처럼 집 전체를, 오피스 전체를 턱 하니 맡길 일이 없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조언으로 각자 일하는 사람을 알아보던지 직접 하던지...


말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지 설계하고 지시만 했지 일하면서 직접 못하나 벽에 박아보지 못했고 페인트 한다고 벽에 붓 한번 칠하지 않았는데 이제 여기에서는 별거별거 다하는 여자가 되었다. 한 번은 문손잡이가 고장이 나서 남편과 내가 어쩌나 하고 있는데, 아장아장 걷는 우리 막내가 어디에서 가지고 왔는지 망치를 나에게 준다. 남편도 옆에 있는데 말이다. 이제는 벽면 페인트 정도는 거뜬히 칠하고 커튼 봉도 설치해서 커튼도 만들어 달고 천정에 커다란 등도 혼자 달수도 있게 되었다.

나의 기쁨인 나의 직업 '인테리어 디자이너'

인테리어에 관한 글을 쓰려니 가슴이 턱 막히는 먹먹함이 있다. 못다 한 일을,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기억해내고 쓰려하니 한쪽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쓰리고 아프다. 미국에 와서 미련이 남는 게 뭐냐 묻는다면, 난 가슴 아프게도 인테리어를 그냥 놔 버려지게 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젠 너무 세월이 흘러 내가 했던 일들이 흐릿해져 버리고 그렇게도 웅장하고 화려했던 배가 흔적도 없이(카페에서 웨딩홀로 바뀌고 화재 사건이 났다 함) 사라져 버렸지만,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있었고 가슴 벅찬 희열을 느껴본 적도 있었던 나의 기쁨인 나의 직업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참으로 그리운 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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