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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25. 2022

꽃잎이 지기 전 너에게

미국의 묘지는 참으로 가깝다

높고 푸른 하늘이 울긋불긋한 잎들 사이로 깊고 짙은 가을을 알린다. 바싹 말라 잔뜩 성이 난 꽃잎, 나무와 나뭇잎 어느 것 할 것 없이 그 실 같은 등을 보이며 축축 땅으로 곤두박질치려 한다. 아직 떨어지면 안 되는 걸 아는 고목도 말라버린 앙상한 잎들을 붙잡고 있기에는 힘에 부치나 보다.


붉은 꽃잎들이 차곡차곡 푸른 잎을 앞서더니 이제는 원래부터 붉은 나무였나 아니면 원래 진노랑 나무였나 싶게 붉음이 진하다 못해 검붉은 핏빛이다. 툭 꽃잎이 떨어지기 전, 늙고 빛바랜 진 붉은 고꾸라진 꽃잎들이 서글퍼 보이는 이유는 우리 인생의 내리막길과 오버랩되기 때문인가 보다.


며칠 전, 1년 전쯤 부군이 돌아가신, 연세가 70이 넘으신 분을 만났다. 그분은 남편의 묘지에 있는 벤치 비석과 묘지 주변을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 그렇게 세상 떠나고 가장 후회되는 게 뭔지 알아요? 남편이랑 머리 맞대고 사후에 우리가 어디에 묻히게 될지 그리고 비석에 어떤 말을 남기고 싶었는지... 돌아가시고 난 뒤 급하게 묘지를 찾고 비석을 세우고 남편을 기리는 문구를 생각하다 보니 너무도 후회되더라고요. 꼭 알아둬요. 지금은 젊어서 생각할 수 없겠지만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하는 길이니 미리 생각하고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꼭 명심해요"



미국의 묘지는 참으로 가깝다


한 예로 가정집 아주 가까운 근처에 묘지가 즐비하게 있다 해도 무서워하거나 묘지 근처라 집의 가치가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생활하는 곳곳에 비석을 세운다. 살고 있던 집 마당도 좋고 교회 뒤뜰도 좋고 집 근처에 있는 공동묘지도 좋다. 한국처럼 산기슭에 있거나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가 아닌 생활 가까이에서 흔하게 보는 묘지라서 인지 사후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세상의 고리처럼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고 무서움보다는 사후의 안락한 안식처 같은 따뜻함이 엿보인다.


갑작스러운 그분의 사후에 관한 후회는 엉뚱하게 내 고민의 시작을 알렸다. 우연이 인연이고 필연이 되는 것인가? 매일 아이 등굣길에 만나는 묘지에서 세미나를 한다는 공지가 왜 하필 내 눈에 들어온 것일까? 주택가 길 한쪽으론 누가 누가 더 높고 더 큰지 빽빽하게 줄지어 있고 다른 한쪽으로 띄엄띄엄 비석이 누워있어 드넓은 잔디밭은 말할 수 없는 신들의 장관을 이루었다.


눈이 오면 커다란 소나무가 눈의 무게에 못 이겨 축축 쳐져서 하얀 눈의 왕국이 따로 없고 어스름한 새벽길에는 나무도 덮일 정도의 안개가 자욱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아스라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지금처럼 노란 단풍이 노란 천지를 만들면 신이 선사한 경외감이 들어 기어이 길 한쪽에 차를 대고 사진으로 남기고 마는 그런 곳이었는데...


그곳이 바로 사설 공동묘지였다니 믿기지 않았다. 세미나에 들어서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열심히 묘지에 관한 세미나를 경청하고 있었다. 각종 관의 종류와 모양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황금 모양에서 동으로 만든 관 현란한 문양부터 심플하게 디자인된 관 모양 자체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비석의 종류도 너무도 다양했다. 세워진 모양마다 그 크기와 두께가 천차만별이고 파우더를 담는 용기도 너무나 다양했다. 어리둥절한 채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한 분이 물어보셨다.


"어떻게 오셨나요? 너무 젊으신 분인데.."


"어떤 분의 소개로 왔어요."


"잘 오셨어요. 이 회사는 60년이 된 오래된 회사입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사놓으면 사후 걱정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되거든요. 오늘 세미나를 잘 들어보시고 남편과 잘 상의하시고 결정하세요."


"제일 중요한 묘지의 가격은 얼마인가요?"


"네, 한자리는 $4000이고요, 두 자리를 사시면 $8000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한자리만 사는 사람도 있나요?"


"네, 한자리를 사서 아래위 2층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두 자리를 사시면 자녀 6명까지 예약됩니다. 바디를 하실지 파우더로 하실지 그리고 비석을 세울지 바닥에 동판으로 세길 지도 미리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비석 대신 대리석으로 벤치를 만들어 방문할 때 편안하게 계시다 가실 수도 있어요. 지금부터 하나하나 함께 상의하셔서 결정해 놓으시면 편안한 노후가 되실 겁니다"


"그럼 우리가 이사 간다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한다면 이장을 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우리 회사는 미국 내 2,000여 개 장소가 주마다 분포되어 있어서 언제든 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있어요. 만약 여기에서 계약을 하고 다른 주에 묘지를 만들고 싶다면 다른 장소에서 장례절차를 진행하셔도 됩니다"


"그럼 만약 미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간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한인 모두가 염려하시는 일인데 묘지를 산다는 것은 내 개인 소유의 땅을 사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만약 여의치 않으면 다른 분에서 땅을 팔듯이 묘지를 파셔도 됩니다. 묘지의 땅값이 올라 되파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 그럼 안 살 이유가 없네요."


이런 질문이 오가는 사이 옆에 앉아 계시는 분이 작은 목소리로 건네신다.


“젊은 분이 잘 왔어요. 20년 전에도 이런 세미나가 있었는데 그때 살걸. 난 그 나이에 죽는다는 생각을 못했었나 봐요. 그때 사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돼요. 그때는 $500 정도였어요. 너무 많이 올랐네…”


'그 나이에 죽는다는 생각을 못했다'는 그 말씀이 이상하리만치 내 뇌리에 꽂혔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반드시 한 번은 죽는 것이고 사후의 슬픔은 뒤로하고 반드시 3일 안에 남은 사람이 치러야 할 장례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해가 되었으니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 우리는 동갑내기 부부다. 묘지를 구매하기엔 아직 젊다는 전제는 남편 또한 강할 것이고 갑자기 이런 말이 씨가 먹힐지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첫마디부터 코웃음을 쳤다.


"엥? 우리 나이가 얼만데 벌써 묘지를 산다고? 말도 안 돼. 그런 말 하면 못써!!!"


"물론 당황스러울 텐데 나도 처음엔 그랬어. 하지만 그분 말씀이 남편이 돌아가시고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함께 묻힐 자리와 그 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상의하고 하늘에 가셨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하시는데 난 마음에 확 와닿았어. (이러면서 아내가 남편을 기리기 위한 글귀를 새긴 벤치 겸 비석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마음이 조금 동했나 보다)"


"난 한국에 있는 가족묘에 묻히고 싶은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가족묘에 묻히면 아이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러 와?"


"어?... 그럼 화장해서 반반으로 나눌까?"


"어?... 그럼 되겠네. 아이들도 좋아하고 한국에 계시는 가족도 좋아할 것이고 아이들도 여행 삼아 한 번씩 가는 것도 좋을 거고 결정했다. 반반!!"


나 또한 아직은 사후를 대비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는 나이니 아이들이 출가할 때까지의 시간은 마치 신으로부터 보장받은 것 같은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 아이를 나에게 보낼 리 없다는 막연한 생각까지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엉뚱하지만, 나로서는 당연한 나의 목숨에 관한 나잇값을 아이의 잣대로 산정해 버렸으니 신이 있다면 어이없다고 말할 것이다.


더구나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할 텐데 무슨 사후를 걱정하는가? 걱정한다고 일이 잘되면 가만히 앉아서 걱정만 하면 될 일인데 그게 아니지 않은가? 간단히 가루로 만들어 하늘에 뿌려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든지 아니면 나무 아래 묻어 자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세미나를 듣고 난 후 아이들이 성장하고 아이들의 측에서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타국에서 우리 가족만 생활하다 보니 끈끈한 가족애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언어나 인종의 다름으로 조그마한 상처에도 서로 보듬고 격려하고 응원하다 보니 가족의 강한 힘으로 험한 세상을 버티고 있는 셈이다. 그런 가족에게 부모의 부재는 그 어떠한 상황보다 클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랬다. 마음으로 의지하고 싶을때 부모가 곁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이들이 나 같은 마음이 들어 부모를 찾는데 내가 아이들 옆에 없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 누구는 그런다. 묘지가 근처에 있으면 때가 되면 꼭 가야 하는 죄책감이 들 수도 있으니 되도록 사후에 존재의 잔재를 남기지 않는 게 남아있는 자식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덜 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묘지를 만드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차피 아이들에게 알려야 할 일이니 넌지시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고 되돌아온 답은,


"꼭 지금 준비해야 해요? 언니랑 우리가 다 할 건데 왜 엄마가 준비하려고 해요? 꼭 어디를 선택해야 한다면 엄마는 35년을 한국에서 살았고 우리 때문에 미국에서 사셨는데 사후에라도 한국 땅에 있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가족묘에 있어야 할거 같은데.. 난 엄마 보러 한국에 자주 갈 수 있는데..." 하며 둘째 딸이 눈물을 훔쳤다.


"준비는 하는  좋을  같아요. 엄마 아빠가 좋으신 대로 하면 되겠지만 저도 한국에 있으면 자주   같아요. 하지만   모르겠어요" 아직은 나이가 어린 막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떤 일이든 좋고 나쁨은 없다. 결국, 다름의 문제이고 결정에 따른 과정의 다름이니 결과적으로 어떤 게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묘지를 사는 일은 아직 미결에 그치고 있지만, 오늘일지 내일일지 오십이 넘으니 지금 당장 죽는다 한들 그리 큰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다. 평소에도 크게 욕심내는 일이 없어 당장 한 줌의 가루가 된다 한들 세상에 미련은 남지 않지만 내 손길이 가야 하는 아이가 있어 그거 하나만은 걱정거리로 남을 거 같다.


묻힐 장소와 비석의 종류 그리고 지상에서의 삶을 한 줄로 남길 문구에 장례식 준비까지 함께 상의하며 준비해 놓으면 사후에 일어날 부산함은 줄어들 것이다. 슬픔과 애도만으로도 얼마나 당황스럽고 벅찰 일인가? 그것으로 만족하자. 눈 꽃송이 하나도 이미 지정된 자리를 알고 하늘에서부터 내린다는데 기껏 저만치 높은 꽃잎 하나 자기 자기를 모르고 떨어질까? 젊은 날엔 이해되지 않았던 아줌마들의 단풍여행을 이번 가을엔 나도 한번 가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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