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쇼호스트의 막말이 이슈가 되어 이역만리 미국에까지 날아와, 그녀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증이 유발되어 인터넷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막말의 수준이 그저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말하고, 호통을 친다거나 마음에 거슬리게 하는 수준이라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지 않았을 터인데 무슨 일일까?
언제부턴가 티브이에서 상품을 파는 방송이 생겼다. 촌스러운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아주 희한한 방법으로 팔기도 하고 구매를 한다’는 20년 전에는 거의 신세계 개념의 별나라 이야기였건만… 이제는 이런 직업, 즉 상품을 파는 직업으로 사람 대 사람이 아닌 방송에서 대중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직업 선호도 순위가 거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상위 직업군이 된 지 오래다.
쇼호스트의 말 한마디에 상품의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누가 쇼호스트로써 적합한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쇼호스트의 몸값은 잘 나간다는 연예인 뺨치는 수준이라 한다. 지금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그 호스트의 연봉이 40억이라는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쇼호스트가 화장품을 파는 시간대에 조기에 완판되는 골든벨을 울렸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을 다 채우지 않은 채 판매가 완료되었지만, 판매를 위한 배정된 시간까지 줄일 수는 없었나 보다. 이 호스트는 남은 시간을 자기가 메워야 하는 시간이 싫었는지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순간적으로 열여덟이라는 욕을 흘리다시피 했는데 그 뒤로 두 어 번 연속으로 욕을 했고 마지막엔 정말 또렷이 **라고 말했고 내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상대 호스트에게 징징거리며 불평을 하는 수준을 넘어 욕을 하며 불만을 소비자 앞에서 한다는 건 어린아이라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요즘엔 티브이만 틀면 한국어든 영어든 입에 욕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건지 한 문장에 두세 번은 기본으로 섞여서 마치 욕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결코 긴 '문장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욕을 아무런 여과 없이 해대는데 어느 누가 물들지 아니할까? 그나마 다행인 건 예술의 자유성만을 존중하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무리다 싶을 만큼 예민하게 자제시켰던 방송 심의 규정이라는 걸 지켜왔다. 때문에 스펀지처럼 뭐든 흡수해 버리는 청소년들에게 언어의 폭력과 마약 같은 중독성 있는 많은 것들이 걸러져 왔다고 생각된다. 부적절한 행동이나 부적절한 내용에 대한 사과방송을 낸다거나 영화 같은 경우 대중에게 나오기 전에 자체 심의를 거쳐 필름이 삭제가 되는 진통을 겪는 경우도 허다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넷플릭스의 뜨거운 반응으로 여과 없는 언어와 여과 없는 마약 같은 중독성 강한 무언가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어? 저런 심한 욕을 영화에서 보여 준다고? 어? 저렇게 어린아이가 마약을 하는 모습이 영화에 나온다고?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평소에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주먹 세계의 긴 문장 안에 욕 빼면 그냥 단어가 없는 많은 말들이 거름망 없이 노출되었고 우리는 아무런 방비책 없이 채널만 돌리면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시청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보통사람 누구나 저러고 사나 보다. 나만 특별히 싫은건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곤 한다.
유튜브 같은 개인 방송도 아니고 넷플릭스처럼 이미 제작된 프로그램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정도 심의를 거쳐 방송되는 공중파도 아니고 정말이지 생방송 채널이었다. 한번 뱉은 말을 편집기로 잘라낼 수도 없고 자막처리를 할 수도 없고 흐릿하게 필름처리도 할 수 없는 노출 그대로인데, 그래서 쇼호스트의 인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순간이었는데,
물론 쇼호스트의 인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는 없는 일이다. 전에도 두어 차례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지만 무마시킨 과거를 탓할 수는 없고 대중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내보였다. 오히려 홈쇼핑 채널도 예능으로 봐달라고 한 것처럼 상품을 파는 자리를 조금은 느슨하게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살려 좀 더 많은 상품을 팔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섞는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때와 장소를 가릴 수 있는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하고 대중을 상대로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야말로 지성인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듯 말이다.
우리의 윤 대통령처럼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말인데도 불구하고 극구 우기며 국민 모두를 시청각 시험대로 몇 날 며칠을 올려놓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행여나 ‘욕설이 아니라 그냥 혼자 숫자를 센 거예요’라던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농담으로 한 거예요’라던가 '열여덟이 아니라 씨어머니라고 했다'며 듣는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했다면, 국민은 또 한 번 시청각 시험으로 골머리를 앓았을 텐데 그나마 대통령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한 건 나만의 웃긴 착각일까?
이런 사고가 발생한 홈쇼핑 채널에서는 대단한 결정을 내린 상태다. 영구퇴출이라는 카드로 회사에서 제일 잘 나가는 호스트를 한방에 버린다는 건 그만큼 그녀로 인한 소비자의 탈퇴를 막고자 하는 대단한 결단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동안 그녀는 다른 어떤 홈쇼핑 채널에서도 기피 1 인자가 될듯하다. 나 또한,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비속어는 말실수가 아니다. 비속어를 대중 앞에서 사용했고 즉시 욕설을 한 자신을 인지하지도 못해 댓글로 자신을 옹호하며 일반인과 설전을 벌이고 몇 번이고 자신의 영상을 돌려본 후에야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했다면 그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쓴다는 확증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50살이 넘어도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나의 말이 전파를 타고 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말로 상대에게는 오해되는 말이 되어 서로가 얼굴 붉히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는 지성인을 운운하지만, 댕댕이가 실수를 하면 이성을 잃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막말을 하는 나 자신을 보며 한참 어이없어한 적도 있다. 어디 50세뿐이겠는가? 인간은 70,80세 그리고 죽음에 임박했다 해도 말로 자신 주변의 사람들과 정다움을 나누기도 하지만, 때론 섭섭함으로 가슴에 상처가 나기도 해서 말의 위력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머릿속에 맴도는 목소리를 그대로 내뱉으며 혼잣말을 하면 우리는 흔히 정신이상자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퍼트리면 우리는 사기꾼이라고 말한다. 또한, 말끝마다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위아래 없이 버릇없게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심하면 천박한 사람이라며 가까이 두기를 꺼려한다. 말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이 표출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입으로 내뱉는 ‘말’이지 싶다.
손으로 쓸 수 있는 '글'은 열 번이고 백번이고 고칠 수 있고, 다듬고 다듬으며 나를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재탄생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한마디로 어른스러운 무기다. 하지만 '말'은 머리에서 생각하기도 전에 순간적이고 습관적으로 노출되어 버리는 어린아이 같은 무기라고 말할 수 있다. 평소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항상 정돈되고 가지런하게 놓여 있을 때 갑작스러운 말에도 흔들림이 없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목소리가 말로 나오기까지의 여정은 오로지 나만의 길이다. 나의 입이 진정한 나의 무기임을 인지하고 조심하자. 우리도 언젠가 한방에 그녀처럼 날아갈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