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ㅣ고등학생이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현실
미국은 15년 9개월이 되면 합법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다.
거의 9학년쯤 면허증을 따고 10학년부터는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건데 한국으로 치면 고1부터 자기 자동차로 운전해서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대중교통이 없어서 반드시 부모가 어디든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는데, 특히 학원이라도 보낼라치면 학원 버스라는 게 없기 때문에 데려다주고 1시간이나 2시간을 기다렸다가 데려와야 하니 사교육비가 터무니없이 비싸 보내지 못한다 쳐도 라이드 문제가 더 힘들어 못 보내는 경우가 많다. 양부모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면 아이들은 부모님이 귀가하기 전까진 절대 외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태다. 그래서 아이들이 운전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절대 권력이 통하는 나라가 또한 미국이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큰아이는 15년 9개월이 되기가 무섭게 운전면허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먼저 학교에서 들어야 하는 코스에 등록하고 필기시험을 본 후에 본격적인 실기시험 준비를 하는데 이제부터가 골치다. 한국은 자동차 운전학원에 등록해서 학원에서 연습하고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면허증이 나오는 반면 미국은 운전 학원이라는 시스템이 없고 필기시험 합격을 하면 실기시험을 위한 운전 연습만 할 수 있는 면허증이 발급되고 그 면허증을 소지하고 실기연습을 따로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학원이 없으니 집에 있는 부모님 차로 부모님과 동행한 상태에서 연습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없으니 방과 후 학교 주차장을 이용해 60시간 이상을 같이 운전 연습을 해야 한다. 필기시험 합격 후 6개월이 지나야 실기시험 등록을 할 수 있다. 부모의 차를 가지고 연습을 하니 무슨 장난감 차도 아니고, 연습 차량 조수석에 급정차할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도 없는 일반 차를 그 어린 내 아이가 어떻게 운전할지... 나무에 부딪치지나 않을지, 길을 따라 똑바로 갈 수나 있을지, 옆 차에 부딪치지나 않을지, 조수석에 앉아 창문 위 손잡이를 꽉 잡은 나는 초긴장에 운전하는 아이보다 후들후들 진땀이 날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진땀 나는 난관을 넘어 60시간 이상을 채우면 그제야 실기시험 실전 전 테스트를 받는다. 그제야 운전을 지도해주는 선생님과 그들의 연습용 차량으로 3번 정도 실전을 한다. 이때는 조수석에 브레이크 장치가 있어서 부모님과는 도저히 갈 수 없는 하이웨이와 어려운 코스 연습, 주차 연습 등 디테일한 수업을 받은 후 통과가 되면 실기시험에 등록을 한다.
수신호를 하지 않아 불합격, 4번 만에 합격했다
큰딸이 운전 면허장에 연습하던 내차(시험장엔 시험 볼 수 있는 차가 따로 없어서 자기 차가 없으면 시험도 못 본다)를 가지고 가서 실기시험을 보는데 다행히 코스 테스트 통과 후 주행시험을 보러 면허장을 선생님과 서서히 빠져나갔다. 내 손에 땀을 쥐고 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운전하는 내 차가 들어오는데 선생님이 운전석에 내 아이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운전석에서 먼저 내려 불합격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더니 사라졌다.
아이는 억울하다며 울고불고... 이유는 길가에 어떤 여자가 길을 건너려고 서 있어서 아이가 차를 멈췄는데 그 여자가 건너지 않아 다시 운전하려는데 선생님이 곧바로 “Stop” 하라고 했단다. 길에 서 있는 여자에게 손으로 건너라는 수신호를 하지 않고 출발했으니 바로 불합격 처리된 것이다. 내 경험을 고스란히 전해주어 STOP의 중요성을 그리 강조했건만 이번엔 수신호를 안 했다니...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메너도 있는 법!
그 뒤로 두 번을 더 떨어지고 4번째 합격을 했는데 한 번은 35마일에서 거리에서 40마일로 운전해서 떨어졌고 또 한 번은 STOP 싸인에서 3초 이상 고개를 좌우로 살피지 않았다고 떨어졌다. 이렇게 어렵게 하는 이유가 있다. 솔직히 15살이 얼마나 어린 나이인가? 한국 같으면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어린 운전자다. 운전만 할 수 있다고 운전을 잘하는 건 아니다. 운전은 메너가 중요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메너도 생기는 법! 그 어린 나이에 운전을 한다는 건 어른들이 면허증을 따는 기준으로 적용되면 안 되고 더욱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야 된다는 거에 동의한다. 어렵게 획득한 소중한 면허증인 만큼 우리 아이는 너무도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습관을 들여 다행이다.
면허증을 땄다고 마구 운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면허증 획득 이후 6개월 동안은 부모님과 동생은 같이 탈 수 있지 친구를 태울 수는 없다. 큰 아이가 운전을 할 수 있으니 내가 편해진 점도 많았다. 그전에는 방과 후에 이것저것 배우는 게 많아 매일 라이드를 해야 했고 고등학생이 되니 여기선 인턴이라고 말하는 대학 진로의 밑거름이 되는 대학교수의 일도 경험 삼아 해야 하기에 매일 다운 타운으로 라이드를 해야 했는데 그 모든 일을 알아서 하니 마음은 불안했지만, 몸은 편했다. 하지만 자동차 보험료는 매달 $200을 더 지급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그 넓은 주차장이 있는 이유를 그제 서야 알았다. 학생의 3/1 정도는 차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인데 12학년의 고학년부터 우선순위라 어린 10학년들은 자리 잡기가 어려워 선배들의 주차 티켓을 사려는 쟁탈전도 심하다. 주차장엔 보기 드문 럭셔리 차들이 그득한데 특히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이 기가 죽을세라 좋은 차를 사주기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제일 심각한 건 마약 문제이다. 오후 2시에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끼리 차를 타고 마음대로 이동을 할 수 있으니 (유흥업소가 없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어른들의 눈은 충분히 피할 수 있다. 특히 마약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이기에 담배는 피우지 않아도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약물에 노출되어 있다. 몸에 소지하고 있지만 않으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니 차에서 마약을 하다가 자기 자동차에 숨겨놓고 학교 안에 들어 간다면 차 안에서 뭔 짓을 하는지 그 누가 알까? 하긴 얼마전에 경찰이 경찰견을 대동하고 차에 있을 마약 수색으로 큰소동이 있었던걸 보면 학생들이 움찔하긴 했겠다.
내 미국 친구 Donna는 고등학생의 운전에 대해 피 토하듯 반대 입장을 토로한다. 그녀의 나이가 나보다 적어도 20살은 많은데 (그때도 지금처럼 어린 나이에 운전을 할 수 있었나 보다)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 차의 옆자리에 타고 가다가 대형사고를 당해 지금도 얼굴에, 몸에, 마음에 큰 상처를 가지고 살고 있다. 때문에, 그녀의 자식들은 성인이 된 후에 운전면허를 허락했다고 한다.
그렇듯 어린 운전자의 운전미숙으로 인한 사고율은 일반 사고율보다 높고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확률도 높다. 겁 없이 빨리 달리거나 너무 느리게 달리는 자동차의 십중팔구는 너무도 앳된 어린아이 얼굴의 어린 차다. 물론 고령자의 운전도 문제다. 고령이 되어도 차가 발이니 운전을 안 할 수는 없는데 (일본 같은 경우 일정 나이가 되면 면허증 반환제도가 있다) 차에서 내리는 데에만 10분 정도 걸리는 고령자도 보았고 산소 호흡 통을 달고 아주 천천히 너무도 위험하게 운전하는 모습도 보았다.
땅이 너무 넓어서, 집들이 넓게 퍼져 있어서, 또 다른 이유 들로 대중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지만 학교나 도서관,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 정도만이라도 운영되는 소규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소한 미니 버스 운행만으로도 어린 운전자가 없지 않을까? 가을비는 부슬부슬 오고 밤길이 어두운데 우리 딸도 조심 운전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