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ㅣ미시족과 꽃중남으로 넘쳐나는 시대 소울 케어도 병행해야 한다
매 순간 우리는 다이어트에서 헤어날 수 없다
하루에 적어도 5번 이상 우리는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티브이에서나 책에서나 어디에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접한다. 내 직업의 특성상 여자들의 배가 등살이, 팔뚝이 하루하루 달라짐에 따라 민감하게 피부로 다가온다. 특히 갱년기에 접어드는 여자들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몸무게의 들쑥날쑥이 심하기에 모였다 하면 그 전날의 식사 칼로리에 따라 아침의 기분이 다르다며 수다를 떤다.
나의 어린 시절로 가보자 엄마, 아빠, 5명의 자녀와 할머니까지 8명의 대식구가 한집에 살았다. 둥그렇고 낮은 자주색 니스가 반질거리는 원탁상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본 그 원탁상에 식구 모두가 빙 둘러앉았으니 정말 크고 튼튼하게 보였다. 먼저 할머니가 숟가락을 드신 다음 엄마 아빠가 숟가락을 드셔야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엄격한 식사예절을 지키셨는데 그 예절에는 소식을 해야 하는 규칙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참기름을 한 장 한 장 기름 솔로 바르고 소금을 살살 뿌린 다음 석쇠에 구운 바삭하고 고소한 김이 귀한 반찬이었다. 아빠는 여러 장의 김을 두툼하게 겹쳐서 한 손으로 잡고 커다랗고 기다란 검은 가위로 쌀 뚝 잘라 꼭 5개씩을 각자의 밥 옆에 놓아주셨다. 할머니 옆자리 쟁탈전은 식사 전에 암암리에 끝나 있는데 왜냐하면 할머니의 김은 항상 우리들 것보다 더 많았고 할머니 옆자리에 앉은 손주에게 몇 개씩은 양보해 주신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계란을 삶아도 꼭 8개를, 감자를 삶아도 식구 수대로 8개를 삶아서 한 명에 한 개씩을 먹게 하셨다. 밥을 먹다 그만 먹겠다고 하면 주저 없이 말하셨는데 “그만 먹어라. 더 먹으면 배탈 난다”하시며 숟가락을 놓게 하셨다.
삶은 감자를 뒤뜰에 휙 버리신 아빠
보릿고개도 있었다는데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은 나쁘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된 사건이 일어났다. 아빠가 엄마에게 화를 내시며 삶은 감자 몇 알을 뒤뜰에 휙 버리시는 게 아닌가? 얘기 즉슨 8개만 있어야 할 감자가 더 있으니 화가 나신 거고 싸움 끝에 문제의 감자를 던져 버림으로써 아빠의 식사 규칙에 대해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보여 주시는 장면이었다.
집안 살림이 넉넉하다고 버릴 수 있는 시절도 아니고 먹는 거를 버리면 천벌 받는다는 말을 모를 리 없는 어른으로서의 아빠의 행위는 권위를 내세운 강하고도 강렬한 메시지였다. 몸에 많은 양으로 채워지는 영양보다는 일정한 양을 조금씩 섭취해야 건강하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이다.
이렇듯 소식을 원칙으로 하는 집에서 자라서인지 지금까지도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식들 모두 보통 몸매이고 다이어트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선천적으로 위가 작다는 진단을 받기 전까진 조금만 과식을 하면 배가 아파서 절식을 해도 믿지 않는 다른 여인네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곤 했는데, 위가 작게 태어난 게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요즘 세태로 보면 평생 축복임을 느끼며 산다.
소식이 대식보다 좋은 이유는 적게 먹으니 식비가 적게 들어서 비용 절감으로 가정경제가 좋아지고, 병이 줄어 나라 경제에도 좋고, 조금만 수고해도 되니 노동의 강도가 적어져 힘의 에너지 절감에도 좋으며 당연히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누구나 말한다. 소식하기가 쉬우면 무슨 걱정이냐고... 하지만, 내가 우리 아빠의 강력한 음식량 조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터 평생 다이어트의 고민을 아이들한테까지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생김새나 몸을 보는 관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뀐다.
키를 1센티라도 키울 수만 있다면 다리를 절단해서 나사를 박는 것도 불사할 만큼 키에 대한 지나친 열망이 있는 요즘이지만 예전엔 키가 큰 것도 여자에겐 단점이었다. 지금 같으면 그리 큰 키도 아닌데 예전에 나의 키는 평균 이상으로 큰 편이어서 교실 천정 거미줄 제거는 항상 내 몫이었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선생님 앞자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조금 논다는 친구들은 왜 그리 날 그룹에 넣으려 하는지, 교실 뒷자리는 소위 노는 친구들의 온상이어서 난 나의 키 큼이 싫었다.
키 큰 사람은 싱겁다느니, 야무지지 못하다느니, 남자 고르는 것도 힘들다느니 좋은 말은 하나도 없던 때였다. 지금이야 몸짱의 시대가 되어 못생긴 건 용서가 되어도 몸매가 나쁜 건 용서할 수 없다는 말도 있고 ‘미시’라는 신조어가 생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몸매 관리를 해야 하는, 다이어트를 안 하고는 못 배기는, 망둥이도 뛰고 꼴뚜기도 뛰는 모두가 뛰어야만 제자리인 세상이 되었다.
여자만 몸짱의 시대에 사는 건 아니다. 이젠 남자의 몸짱이 대세가 되어 ‘꽃중남’이라는 말도 생겨 미시처럼 중년남이 되어서도 몸에 신경을 써야 하니 늙지 않고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데... 이젠 겁이 난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여서 육순 잔치는 주위 사람들한테는 민폐이고 칠순 잔치도 없어지고 있으니 인생은 80부터라는 말이 생길 거고 80이나 90을 “노꽃남”이라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디케에어와 함께 소울케어를 병합해야한다
100세 시대니 건강하게 몸짱으로 바디케어를 열심히 해서 50살인데도 20대 몸매로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몸과 함께 마음까지 20대이면 어떻게 될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봐야 철이 든다고 하는데 결혼 연령대가 자꾸 높아져 이제는 40대 초 후반의 결혼을 당연시한다. 예전엔 20대 후반만 되어도 결혼을 안 하고 처녀로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노처녀 히스테리라며 개무시했는데 말이다. 당연히 아이를 낳는 나이도 그만큼 높아져 노산 기준 나이인 만 37세도 훌쩍 넘어 출산하는 가정도 많다 보니 2,30대와 4,50대가 같은 새색시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나이가 많아지면 몸은 늙어져 작아져야 하고 마음은 넓어져 푸근해져야 하는데 몸은 그대로 있거나 더 젊어지는데 마음도 몸의 나이처럼 작아지고 있다. 겉모습의 몸의 연령대가 낮아진 만큼 정신 연령대도 낮아지니 반비례되어야 할 몸과 마음의 나이가 정비례될 수밖에 도리가 없다.
'바디케어'에만 집중하는 우리가 이젠 '소울케어'와 병합해야 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 몸이 신경 쓰여 간헐적 단식이 좋을까, 그렇다면 몇 시간을 단식해야 효과가 좋을까 저녁은 뭘 먹어야 찌지 않을까, 쿠키 하나는 몇 칼로리일까 등등 다이어트로 고민하고 동안 얼굴 만드는데 마사지 팩은 매일 하는 게 좋을까, 하루 건너 하는 게 좋을까, 무슨 크림을 바르는 게 좋을까로 인터넷 서치에 온정신을 바디케어에만 집중하는 우리네가 이젠 소울케어를 병합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몸처럼 정비례되어 낮아지면 안 된다. 아빠가 될 나이에 청소년처럼 살 수 없고 엄마가 될 나이에 여학생처럼 살 수 없다. 바디케어만큼 소울케어에는 관심이 없으니 엄마가, 아빠가 되었어도 자기들도 어린아이 인양 자식을 버리기도 하고, 더 나쁜 짓도 하는, 몸과 마음이 모두 낮아져 아이가 아이를 케어하는 어른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이 아니고 나잇값을 해야 나이대접을 받는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닌 몸도 건강하게 유지하고 마음도 몸과 같이 건강한 사고를 하려는 노력은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일이다.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진다. 구운 김을 넌지시 건네주시는 할머니께 어린 손녀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몇 살이야?”
“응... 이팔청춘이지”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절대 모를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도 할머니도 똑같은 이팔청춘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