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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21. 2023

빨간 떡볶이

어김없이 돌아오는 일요일 아침이다. 


코로나 이전의 삶이 어떠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의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이런 시국에도 절대 변하지 않은 우리 집만의 전통이 있다.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일요일에도 크리스마스가 낀 일요일에도 심지어 생일 당일인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먹어야 하는 일요일 메뉴는 떡볶이다. 어느 광고에서 '일요일엔, 짜~파게티'라는 로고송이 있듯 우리 집은 '일요일엔 빨간 떡볶이'다.     


그 시작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음식은 먹어야겠고, 거창한 전통음식을 만들자니 재료비가 미국 음식에 비해 비싸고, 매콤한 맛의 유혹도 충족시키면서 저렴한 음식으로 떡볶이만 한 게 없었다. 떡과 함께 부재료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 


첫째 아이에게 중요한 시험날이 다가오면 첫째가 좋아하는 어묵을 듬뿍 넣고, 둘째가 중요한 날이 다가오면 소시지와 만두를 넣어준다. 그리고 가끔은 남편이 좋아하는 북어포를 넣기도 한다. 요즘엔 막내가 합류되어 삶은 계란을 넣어주는 날이 빈번해지고 있다. 자기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들어있어 골라 먹는 재미도 있지만, 왠지 그날의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날이 되기도 해서 음식이 주는 행복이 그때그때의 추억으로 쌓여갔다.     


언제 어디서든 먹고 싶을 때마다 먹을 수 있는 케이크가 지금은 디저트로 알고 있지만, 그전의 케이크는 생일이나 기념일 때만 먹을 수 있는 귀중한 음식이자 선물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케이크라고 하면 귀중하고 특별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되었다. 김밥도 마찬가지다. 김밥도 지금은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충분한 영양이 들어있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단골 음식 메뉴가 된 지 오래지만, 예전의 김밥은 소풍 가는 날만 먹어 볼 수 있는 아주아주 귀하고 또 귀한 특별한 음식이었다.     


먹을거리가 귀한 그 시절에는 마른 사각 김 구하기도 어려웠을 테지만 소시지나 계란 또한 풍부하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재료가 아니었다. 일 년에 한 번 가는 소풍날 이른 아침부터 정성껏 한 줄 한 줄 싸시던 엄마들의 마음 또한 맛있게 먹을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들떴을 것이다. 그런 귀중한 음식이 이제는 분식 메뉴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가 되고부터는 그 전의 귀한 맛을 잃어버렸다. 희소성의 가치는 대중화가 되는 순간 그 가치와 희귀성은 소멸된다.     


떡볶이는 어떤가? 떡볶이는 출발이 다른 음식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떡볶이는 서민 음식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남녀노소 누구나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는 분식이다. 한 끼 식사 대용이라 하기엔 조금 부족하고 사이드 음식처럼 떡볶이에 김밥 아니면 어묵이나 순대를 곁들여야만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그래서 떡볶이는 귀한 음식도 아니고 특별한 날만 먹는 음식도 아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 살기 때문에 특별 대우를 받고있는 것이다. 음식은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른 대우로,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특히 그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음식의 척도를 가늠해준다.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그저 이름 없는 들풀이듯, 음식에 고유성을 부여할 때 음식이 빛을 발한다.     


우리 집 떡볶이의 위상은 어떤가? 


어른들 틈에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큰아이는 동생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렇다고 매운맛을 뺀 덜 매운 맛의 떡볶이를 만들어 주는 건 의미가 없다. 무조건 매운 떡볶이를 만들었다. 못 먹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러워만 했던 둘째가 조금씩 시도를 하고 고등학교쯤 되어서야 제대로 된 떡볶이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드디어 어른 대접과 함께 매운 한국인이 되어갔다. 희한한 건 음식의 성장과 함께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음식이 주는 문화 습득은 그 어떠한 행위보다 빠르다.     


떡볶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대화의 중심이 되고 그런 식사시간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의 정치 경제를 함께 논하고 한국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나아가 이민 1세대의 아픔과 더불어 2세대의 고충도 함께 고민하고 발전하는 대화의 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한국 드라마가 있었다. 한류에 대한 높은 위상이 아이들에게도 쉽게 한국문화를 접하게 하고 그 자신감이 아이들의 어깨를 높일 수 있었다.     


어느 가정이나 엄마만의 특급 메뉴가 하나쯤은 있다. 특급이라는 이름답게 거창한 메뉴들이 많을 것이다. 아귀찜일 수도 있고 어려운 갈비찜일 수도 있고 뭐 족발일 수도 있겠다. 아주 특별한 날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서너 개쯤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마로서 매우 큰 자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떡볶이는 특급 메뉴 축에도 끼지 못하는 하찮은 음식이다. 특급이 아닌 늘 먹는 음식으로 전통을 논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전통이 특별한 음악을 전수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근사한 독서 모임도 아닌 음식, 그것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소박한 떡볶이 하나로 가족의 우애를 다지고 우리의 문화를 습득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오히려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아이들 친구들도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참 별난 전통이지만 어느 가정이나 그들만의 습관 된 규칙으로 자신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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