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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21. 2023

우리 집, 주말 풍경소리

우리 집 주말은 일주일 중에서 가장 북적이는 날이다. 집 입장에선 조용하던 주중에 비해 급격하게 변해 바람 잘 날 없는 날이고 하루 종일 소리가 왕왕 나는 날이기도 하다. 뭐 대부분 집도 그러할 수 있겠으나, 우리 집의 가족 구성원이 살짝 특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남편, 남편은 사업을 하는 관계로 뉴욕에서 일하다 주말에 이곳으로 오는 일이 잦다. 우리 집 댕댕이들의 격한 환영을 받기 위해서라도 근무처를 옮기지 못할 정도로 녀석들의 주인을 대하는 격한 환영의식은 집안 온도를 바꾸어 버리기에 충분하다. 오자마자 시작되는 남편의 청소기 돌리는 소리는 녀석들의 환영 소리 만큼이나 힘차게 쌓인 먼지를 흡수한다.     


미국에 와 삐걱대는 낡은 아파트에서 어린아이들을 업고 안고 무거운 청소기를 들고 카펫을 미는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남편이 자청한 청소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아빠가 힘들어 보이는지 이젠 틈만 나면 힘센 아들이 바통을 받아 청소기를 돌린다며 야단법석이 난다. 강아지들도 이리저리 무서운 굉음의 기계를 피하느라 컹컹 소리가 나고 난 또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조금 쉬고 싶은 마음도 달아나고 화장실 청소라도 한다며 장갑을 끼며 소란을 이어간다. 한국 같으면 청소한다고 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고등학생인데 미국에서 학교 다니는 모든 아이는 천국행 열쇠를 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적인 면만 보면 미국의 앞날은 밝다.     

그리고 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멀리 대학을 가면서 자연스레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한 딸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시끌벅적거리는 주말엔 합체가 된다. 직장 일을 마치는 금요일,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온다. 집밥이 그리운 아이가 난 또 그리 고맙다. 막내가 아들이라 그런지 딸처럼 엄마와 재잘거리는 맛이 없고 타인의 등장으로 강아지들의 소란스러운 장면이 아니면 종일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그런 주중의 삶에서 180도 바뀌는 주말의 시끄러움이 얼마나 행복한 소란스러움인지 지금도, 나중에도 잊지 못할 명장면일 것이다. 뉴욕에 있는 우리 든든한 큰딸까지 오면 완전체가 되는 추수감사절이 벌써 기다려진다.     


누구나 그런다. 인생 뭐 있냐고, 사는 게 고만고만하다고, 


살다 보면 다 똑같아지는 게 사람 인생이라고...맞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계 어디서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 싶다. 어디에 살던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개척하며 사는 것이고 그 인생에 누구와 함께 걸어가느냐가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스스로 청소의 달인이라 말하지만, 한국에서 10년을 사는 동안 청소와는 거리가 멀었던 남편이었다. 부부가 싸우고 밖으로 나가보지만 1시간 이상 머무를 곳이 없는 밤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행복한 삶의 길은 무거운 청소기를 스스로 들어야만 한다는 걸 터득한 것이지 싶다.      


미국 땅에 떨어진 아이들은 얼굴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채로 성장기를 거치면서 느껴야 했던 다름의 인식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가족의 힘으로만 견디어 내야 했다.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국에 살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생활의 한 조각의 퍼즐이 내 노년의 삶까지 투영된다면 난 그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대견하다' 말해주고 싶다. 이민은 부모의 결정이었으므로 즐거운 일, 슬픈 일, 속상하고 기분 좋지 않은 모든 일을 감내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이민 1세대의 아픔은 타국 생활의 힘듦도 있지만, 책임에 따른 인내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이민 2세대의 아픔은 다르다. 


2세들은 언어가 미숙할 수밖에 없는 1세대 부모를 대신해 자신보다 어른다운 모습으로 사회에 대항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그러면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알게 되고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 빠른 성장을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립심이 강하고 뭐든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른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겪는 아픔이 한국의 일반 가정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것들을 알기에 밖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서로가 보듬고 행복을 찾아가려는 도약을 위한 조용하지만, 힘이 되는 안식처가 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맛난 집밥으로 대신해 주어야 한다. 갈수록 치솟는 물가가 주부들의 주머니 열기를 주춤하게 만들지만, 아직도 우리 집에선 20년째 '일요일 아침엔 떡볶이'가 유지되고 있고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맛나게 끓여줄 수 있음에 감사해서 주말의 북적임이 너무도 행복하다.      


아이들의 소란함이 끝난 고요한 밤에 뒷마당 넘어 깊은 숲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숲과 잔디 경계 언저리에 매일같이 풀을 뜯으러 오는 사슴 가족의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도 짝을 찾아 떽떽 울어대는 새들도, 심지어 가을이 어서 오기만을 초저녁부터 외쳐대는 귀뚜라미의 칼칼한 울음소리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숲속 동물 모두 그들만의 보금자리로 들어가 버리고 인간의 눈에는 그저 컴컴한 암흑의 세계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루 종일 힘들었던 세상의 모든 동물은 가정이라는 그 어떤 자리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으리라. 고요한 숲 언저리에 지친 나의 몸도 살짝 얹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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