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행복!

#37ㅣ쏜살같이 지나가는 다람쥐의 떨림이 나에게 전해진다

by 멜랜Jina

허무의 삶이 나에게는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극에 달했던 몇 해 전 한국에서 피부과에 언니랑 진료 상담차 갔다. 이것저것 묻고 진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왜 그 의사에게 물었었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같다고 해서인지, 푸근하게 환자를 대해주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의사니까 혹시라는 마음에서였는지 그냥 물었다.


“선생님, 혹시 심리 상담하시는 의사분 아세요?”
“왜요? 상담이 필요하세요?”
“네... 온 김에 한국말로 상담 한번 받아 보려고요”
“우리 나이는 다 치료받아야 해요. 같이 손잡고 갑시다”


그러고 웃고 말았다. 그 말에 놀란 건 우리 언니였다. 나오는 길에 너무 기막혀하며 말을 이어갔다. 왜 이제 말했니, 언제부터 그랬니, 치료받으러 가자며 언니는 당황을 했는지 이말 저말 두서없이 묻고선 좋은 생각이 있다며 내 손을 잡고 일단 가보자 했다. 그렇게 해서 나의 마음공부가 시작되었다.



대학로 어디였다. 어느 카페를 빌려 선생님을 모시고 그분의 강의를 듣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였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 제일 앞에 앉는 거라며 선생님을 중심으로 둥글게 여기저기 앉았다. 웬만큼 안면식이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눈인사도 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조용한 첫 만남이었다. 우리 언니를 잘 아는듯한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물었지만, 왠지 언니는 대답을 피하는듯했지만 게의치는 않았다. 통성명할 그런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선생님이 날 한번 보시더니,


“하나 물어봅시다. 왜 여길 왔나요?”
“삶이 허무해서요”
“어떤 삶이 허무한가요?”
“모두가 같은 24시간이 주어지고 있는데 저한테는 하루가 빈 상자로 텅 비어 있는 거 같아요. 어릴 때 종이 인형 놀이하다 상자를 덮었다가 열면 또 다른 세상의 놀이가 펼쳐지는 것처럼 그냥 오늘 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데 텅 빈 상자라 내일 더 이상 놀이를 할 수 없을 거 같은 허무함이 있어요”
“자, 여기 컵이 있어요. 컵이 아니다고 생각하면 이게 뭐죠?”
“아무것도 아니죠”
“네, 그렇습니다”
“...”


그 뒤로도 이것저것을 물었고 답인 듯 답이 아닌듯한 대답을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문답도 아니고 알 듯 모를듯한 말들 선생님의 강의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지만 난 뭔지 모를 편안함은 있었지만, 솔직히 왜 이런 자리를 언니가 데려온 걸까 의아해하며 얼추 두어 시간을 보냈다.


어색한 자리는 그다음부터였다. 공부가 끝나고 식사 자리에 갔더니 아까 그리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고개만 끄덕였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떠드는데 온통 집중은 나에게 있다는 걸 눈치로 알겠는데 그들도 나를 약간 경계하는지 잘 묻지 않더니 언니가 정말 친동생이라 하니 경계가 한 번에 풀어졌다. 그다음엔 질문 공세 어디서 왔냐, 뭐 하는 사람이냐, 질문에 어찌 그리 답을 잘하느냐, 이런 마음공부는 언제부터 했냐, 급기야는 장학생이 왔다며 자기들은 나만큼 되려고 몇 년을 공부한 줄 아느냐며...


철학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토론에 직접 참여도 잘 하더만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자리만 지켰던,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거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다. 친한 친구였지만 나랑은 완전 다른 생각을 가졌던 한 친구는 아플 때에도 아픔을 즐긴다는 말을 해서 머리를 띵 정도로 놀라기만 했었는데 갑자기 심오 하다못해 영 못 알아듣는 질문과 엉터리 대답을 했을 뿐인데 장학생이라니? 도대체가 이상한 그룹이다.


그리고 집에 왔다. 선생님이 들려준 책 한 권을 가지고, 그날 저녁 그 책을 한 번에 읽었다. 철학책이라면 어려운 책이니 생각도 해가며, 천천히 이해도 해가며 읽어야 하는 건데 그 책은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도무지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라며 의문을 가졌던 모든 내용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의문이 풀릴 거 같았다.


대단하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따위의 고차원적인 내가, 나에게 묻는 게 아니었다. 고작 낙엽이 떨어지면 나도 슬퍼지고 남들은 저리도 열심히 뭔가를 하는데 무엇을 위해 저러는 걸까? 나도 하루를 살긴 살았는데 왜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까? 자기 전에 허무해서 미칠 것 같은 그 정도였는데... 단지 이 허무함이 지속되니 누군가와 상담을 해보고 근본적인 내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러 훌훌 털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어떤 이는 믿음이 없어서 그리니 종교를 가져 보라 말하고 어떤 이는 이 나이가 되면 누구나 겪는 갱년기 증상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큰 걱정이 없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치부해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성경도 가까이해보고 가족여행도 가보고 갱년기에 좋다는 약도 꾸준히 먹어도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것저것 살아가며 힘이 되는 글들이 있다 싶으며 잠이 올 때까지 책을 붙잡고 책에 의지해 잠을 청했었다. 그랬는데 선생님이 주신 책은 나에게 허무함을 탈출할 수 있는 작은 빛줄기가 되어줄 거 같았다.

탁! 소리가 깨달음의 찰나


처음의 내용은 깨달음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깨달음이라... 무얼 깨달으란 말인가 내가 나도 모르는데 내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시고 타계하신 성철스님도 아니고 하나님이 남기신 '모두가 사랑이다'라는 계시도 아닌 깨달음의 경지를 어찌 알까 무얼까? 탁! 소리와 함께 그 자리를 알 수 있다는데, 졸고 있는 스님을 향해 큰스님이 죽비로 한번 내리치는 ! 소리가 깨달음의 찰나라는 데 그게 뭘까?


이상하다. 내 머릿속은... 내가 생각하는 내가 있고, 그 생각을 바라보는 내가 있으니 어떤 게 진짜 나일까? 내가 두 개인가? 책에는 내가 그런 나를 바라보고 '알아차리면 끝이다'라고 말을 한다. 그게 무슨 말일까? 그러다 꿈을 꾸었다. 또 하늘이다. 난 이상하게 하늘 꿈을 자주 꾼다. 어떤 커다란 빛이 어디 한 군데로 빛의 속도로 빠르게 날아가더니 한 점을 찍고 내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 나는 반듯하게 누워 있다. 그런 나의 몸에 내 빛이 말을 한다. ' 잘하고 있네. 참 괜찮은 사람이네. 지나는...' 이러다 깼다. 꿈인데 너무 생생한 나의 두 모습이었다. 내 몸은 죽은 것처럼 누워 있고 나를 바라보는 빛은 내 몸을 바라보며 말하며 괜찮다고 했다. 순간 내가 책에서 본 영상물 같은 것이 꿈으로 나타난 건지 나를 정말 깨달음으로 가게 도와주었는지 답을 찾기 어려웠다.


또 다른 책을 보았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글을 유시화 씨가 번역한 책이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번역했고 깨달음이 없으면 번역할 수 없는 심오한 철학적 내용 들이 많아서 힘듦의 시간들이 순간순간 글에서 내비쳐졌다. 공감되는 많은 말들이 있었다.


그중에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고 행복이다'라는 말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미래의 행복만을 위해 이 순간을 희생하면, 막상 목표가 달성되었다 하더라도 또 다른 목표가 생기므로 그 목표를 위해 계속되는 희생과 힘듦만이 연속되고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만 하고 행복함은 연속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먼저가 아니므로 행복의 순간순간을 살다 보면 목표 달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만약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행복이 연속되어 또 다른 목표가 있어도 행복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한마디가 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수도 있지만 내가 돈을 벌어도 내 돈 같지 않고 내 자식이지만 내 속으로만 낳았지 내가 아니므로 내 거가 아니었고 내가 내가 아닌 듯, 무심한 듯 살았다.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무심히 흘리면 걱정이 없어서 그렇다고 그럴 리가 있나 라고 아마 겉으로만 저렇게 말하지 싶다 정도로 정말 무심히 흘렸을 테지만 난 정말 그랬다. 그래서인지 모든 일에 그리 화도 나지 않고 내가, 내가 아닌데 누군가에게, 어떤 물건에도 욕심도 집착도 없었다. 한마디로 오는 사람은 와서, 좋고 가는 사람은 잡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지나가게 하고, 머물 사람은 잠시 쉬게 했다. 지갑을 잃어버려도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잘 쓰겠네 싶어 금방 잃어버린 것조차 잊어버리는 이상한 나였다. 그러니 허무했다.


이러면 남들은 '한 수'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이 장학생이라 했나 보다. 그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나 같은 마음을 가지려고 마음공부를 한다고... 내가 없어야 진정한 깨달음이고 그래야 행복하다고... 하지만 난 허무만 하지 행복하지 않다. 그게 문제다. 한 수 하면 뭐하나 허무함이 내 세상을 지배하는데, 그 허무함을 떨치려 무언가에 집중함이 필요해 팔랑귀처럼 펄럭이며 헤매었는데...


고요하라를 대뇌였다. 그러자니 내 안에 침전되어 잠잠하던 고통 들이, 내가 미워했던 나 자신도 더불어 아빠의 모습도 내 친구의 모습도 내 남편도 모든 것들이 표면에 버블처럼 떠오르기 시작하다 침전된 모든 것들이 점점 사라지더니 깨끗하고 맑은 물로만 채워졌다.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리 못나지 않았다. 나는 피아노를 잘 친다. 그림도 잘 그리고 디자인도 잘한다. 아이들과도 잘 소통하고 내조도 잘한다. 강아지도 잘 키우고 화초도 잘 키운다. 뜨개질도 잘하고 재봉질도 할 수 있다. 내 손으로 한국식 밥도 아이들에게 건강식으로 해주고 청소도 잘한다. 글씨도 예쁘게 쓰고 커피도 잘 탄다. 참 내 머리도 잘 자르고 아들 머리도 깎아준다. 잘하는 게 너무 많은 나였다. 사람들과도 관계 지속형이라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시어른들의 사랑도 듬뿍 받은 착한 며느리였고 날 원수로 여길만한 일도 하지 않았고 경찰서에 갈 정도의 법도 위반한 적 없고 이율배반적인 사소한 일도 하지 않은 착한 사람들 축에 속한다. 그래! 이만 하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네 꿈속의 내가 맞네!



이제 다른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아이들의 고통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나 같은 어른도 힘들었을 신세계의 혼돈에 내동댕이쳐진 외로움을 혼자 이겨 내야 했고 그들과의 경쟁에 학연 지연 하나 없는 맨땅에 헤딩하는 외줄 타기를 해야 했던 아이들이 대견했다. 그리고 남편도 보였다. 단 한 사람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가장으로서의 어깨가 무거웠으리라. 내가 한동안 착한 며느리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게 하셨던 시어머님의 모습도 사랑하는 아들을 멀리 뺏겨버린 외로운 어미 새였으리라.


나를 사랑하니 가까운 가족의 모습이 먼저 보이고 친구들의 모습도 강아지도 심지어 굳건히 앞뒤 마당을 몇십 년 지키고 서 있는 우람한 나무들도 그 힘듦이 느껴지고 집 앞길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다람쥐의 떨림도 나에게 전달되었다. 둘러보니 하늘의 구름도 사랑이고 구름에서 떨어지는 비나 눈도 사랑이고 비를 맞는 나무와 꽃도 사랑이고 눈을 피해 앙상한 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슴도 사랑이다. 또한 나를 싫어하는 어떤 이는 그로 인해 내가 살펴야 하는 스승으로 사랑이고, 나의 인내만을 시험하는 어떤 이에게는 고뇌의 쓴맛은 맛보게 해서 달콤함의 끝을 상상하게 해주는 스승으로 사랑이다.

'거울을 사랑 삼아 행복으로 비춰보자'

나의 허무함이 완전한 사랑으로의 치유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금은 집중할 수 있는 거리로 글을 쓰다 보니 허무란 놈이 맥을 못 추고 있지만 또 잠깐의 틈을 타 스멀스멀 피어오름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내 몸 어딘가에 장착되어 있긴 한데, 내가 볼 수 없는 곳에 있으니 확인할 수도 없고 거울로 비추어봐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잠이 확 깨듯 허무란 놈이 확 달아나 버릴 거 같다. 거울을 사랑 삼아 행복으로 비춰보자.


인생이 길다지만 겨우 난 50번의 겨울을 보았다. 매년 다른 색깔의 겨울이었는데 기적 같은 겨울도 있었고, 깊은 슬픔의 겨울도 있었고, 허무함에 달랑거리는 끈을 부여잡은 겨울도 있었다. 내가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허무함이 사랑으로만 채워진다면 지금 이 순간만이 행복이라는 깨달음으로 연속되지 않을까? 내 옆에서 긴 쿠션을 베개 삼아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티오와 발라당 하늘 보며 큰 대자로 자고 있는 테디를 본다. 꿈속을 헤매고 있을 이쁜 내 강아지들... 산은 산이므로 물은 물이므로 그대로의 사랑이고, 하나님 말씀의 마지막도 사랑이듯 깨달음이 별거겠어? 너희들도 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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