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8
하루해가 저물었다. 쌀쌀해진 날씨로 해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 아쉬움이 남아 간다. 아직 뒤뜰 단풍이 들지 않아 의아해지는데... 요즘엔 나의 계절감각이 되살아나고 있는지 전에는 언뜻 돌아보면 단풍이고 고개 한번 들어보면 낙엽이 쌓여있어 세월의 흔적이 한꺼번에 밀려와 실망하곤 했는데 아직은 짙은 초록빛이다. 다행이다.
나의 계절 변화의 가늠은 항상 간단하다. 넓은 옥수수밭이 그것인데, 노란 흙밭에 연 그린의 새싹이 돋아나면 봄이 왔다는 신호이고, 키가 한 자락 커져 진초록색으로 물들면 여름이 온 것이고, 연한 옥수수수염이 진한 노란색으로, 갈색으로 변하며 고개가 떨어지면 가을이 온 것이고, 어느 날 옥수수가 없어지고 바싹 마른 밑동 구리만 남겨져 있으면 겨울이 됨을 알려준다. 또 하나, 내 부엌 창 앞 커다란 나무에 노란 잎이 나불대며 물들면 가을의 끝을 알리는 아쉬운 계절의 신호다.
요즘의 계절 변화에 나의 계절 변화의 가늠이 달라졌다. 배꼽시계가 식사시간을 알려주듯 나의 피부 세포가 계절 변화를 느낌으로 전달한다. 세밀해졌다고나 할까.. 예민해졌다고나 할까 계절의 변화만큼 나의 모습도 세밀하고 조직적으로 변함을 느낀다. 단순한 립스틱의 효과가 나의 생활패턴과 사람들과의 미묘한 대화에서도 작지만 큰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시작은 간단했다. 누군가 빨간 립스틱을 한번 발라 보라 했다. 대학 다닐 때 아주 진한 초콜릿 색으로 립 라인을 먼저 천천히 정성껏 그리고 그보다 살짝 연한 색상으로 입술 전체를 발라주는 ‘신애라 립스틱’이 유행하던 시절에 친구 따라 몇 번 발라본 적은 있었다. 또 핑크빛이 이뻐 한 번씩 따라 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아 가뜩이나 외모에 자신이 없는 나로선 내 얼굴을 거울로 보기도 전에 지워내곤 했었다. 그랬기엔 빨간 립스틱의 권유는 나에 대한 도발이고 도전이었지만 이번엔 반응이 달랐다.
나이가 들어 얼굴색이 칙칙하게 변해서인지 빨간 립스틱의 효과는 가히 파격적이었다. 바르자마자의 반응은 예전의 시큰둥이 아니라 거의 환호에 가까웠다. 한두 명을 제외한 내가 아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훨씬 낫다, 어려 보인다, 섹시해 보인다, 밝아 보인다, 생기 있어 보인다 등 내가 태어나 생전 들어보지 못한 미사어를 그때 다 들은 거 같다. 일단은 성공이다.
빨간 립스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나에겐 딱 두 갈래이다. 고급진 하얀 피부에 조각처럼 빚어놓은 얼굴에 빨갛게 바른 입술이 더욱 빛을 발하는 연예인급 인물이나,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얼굴빛이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발악 비슷하게 입술만 동동 떠 보이는 거무스름하게 바른 빨간 립스틱 딱 두부류로만 정의하고 있었다. 내가 조각 미인도 아니고 아직은 최악이 아니니 웬만하면 감히 바를 수 없는 색이라 생각했다.
빨란 립스틱 하나가 '뭐라고' 50년을 밋밋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고 있었던 내가 180도로 외모도 성격도 바뀌게 만들었으니, 단순히 뭐라고가 아니라 '대단한 무언가'가 나에게는 발동한 셈이다.
먼저 난 무채색 옷을 좋아했다. 미국의 옷장은 남편 옷장과 여자 옷장이 반대편으로 나뉘어 있다. 모든 집 구조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나란히 있다 해도 충분히 구분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남편 옷장인지 여자 옷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내 옷장에 검정이나 회색 아니면 흰색 옷이 전부였다. ‘색’의 단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채색이 시크의 대명사라 생각하고 색이라고 하는 빨갛고 노랑 그런 유채색은 말 그대로 유치한 색으로 왠지 내가 입으면 더 촌스러워지고 눈에 띄어 나랑은 거리가 먼 거라 생각했으니 파스텔 색도 하나 없고 하물며 꽃무늬가 들어간 옷은 단 하나도 없었다.
미술을 전공했음에도 색에는 색맹이었나 싶을 정도로 색이 무서웠다. 인테리어를 할 때도 여실히 드러난 게 색감을 고를 때 참으로 난감했었다. 부드럽게 동그란 느낌도 싫어해서 직각으로 떨어지는 뾰족하고 딱딱한 느낌으로 설계를 했고 한 가지 색감으로 전체를 풀어가는 식으로 어우러지게 만들면 나랑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칼라풀한 색 하나로 포인트를 줘서 그나마 파트너의 힘으로 색이 입혀졌었다.
성격적인 부분에서도 사람마다 양면성이 있고 나 또한 어떤 부분에선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던 예민한 부분이 없으니 어떤 이는 나에게 우유부단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성격이 좋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오히려 도도하다 말하기도 했다. 예민하지 않으니 별로 화날 일도 없고 그냥 주워진 일에 내가 할 수 있고 할 만하면 해보고 안되면 말고.. 얼굴에 색이 없듯 성격에도 색이 없었다.
그랬었다. 그런데 립스틱을 바르고 그것도 눈에 띄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니 사람들의 반응으로 나의 양면성의 반대편 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머리가 짧아 여성스럽지 않고 보이시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터라 치마는 감히 입지 못했고 꼭 입어야 한다면 발목까지 오는 긴 원피스를 입었고 프린트도 꽃무늬가 아닌 기하학적인 무늬로 하늘하늘한 게 아닌 각이 잡히거나 허리에 벨트를 매는 스타일만을 고집했었는데, 이젠 짧은 원피스에 하늘거리는 시폰 소재의 파랗고 빨간 꽃무늬 원피스를 입는다. 그렇게 입어도 내가 어색하지 않으니 보는 사람도 이뻐 보이는 모양이다.
겉모습만 변하는 게 아니다. 고개 들면 계절이 바뀌어 있어 당황하던 내가 색을 디테일하게 관찰하게 되듯이 나를 뜯어보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물음까진 아니고 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면세계에서부터 내 몸의 구석구석까지 나를 관찰하게 되었다. 키도 크고 살집이 많지도 않고 다리가 짧지도 않고 팔도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내가 예민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민하다는 말이 나에게는 까칠하다고만 정의를 내리고 살았었던 모양이다. 예민의 반대가 덜렁이라는 말이 좋은 말이 아닌데 말이다.
또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왜 예민하지 않았을까? 왜 빈껍데기로 살았을까? 어릴 때의 못난이라는 말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 그 뒤로는 누가 아무리 이쁘다고 말해도 나를 위로하는 말처럼 들렸고, 내 얼굴을 거울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두려워 나를 그냥 무시해버린 결과였다. 내가 그리 못난 게 아니라는 걸 나이 50에 알았다면 설마 하겠지만 진실임을 나도 이해되지 않으니 누가 믿겠는가? 누구나 자기 잘난맛에 산다는걸 왜 믿지 못했을까? 이만하면 괜찮다고 자위해야만 이 험한세상을 꿀떡 넘기며 살아갈수있다는걸 왜 나만 몰랐을까?
이젠 시시때때로 변하는 날씨에도 예민해져 매일 아침 날씨도 체크하고 날씨에 따라 무슨 옷이 예쁠지 생각하게 되고 블라우스를 입을까도 고민하고 오늘은 커피에 샷 추가할까 말까를 운전하며 생각하고... 내가 나를 귀하게 생각되니 남들도 귀히 여기게 된다. 친구는 오늘 어떤 모습으로 이쁘게 나타날까? 어깨가 아프다 했는데 괜찮나 모르겠네. 꼭 이쁘다고 말해 줘야지... 근데 깜박했다. 빨간 립스틱 바르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