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ㅣ나만의 놀이터는 어디일까? 드넓은 하늘일까? 커피 한잔의 여유일까
누구나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지칠 때까지 땀나도록 신나게 놀아본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방과 후에 학교 놀이터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뚫린 퍼즐처럼 생긴 사각형이 겹쳐져 있는 철재 파이프의 네모네모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놀기도 하고 역시 뻥 뚫린 둥근 지구 모양의 파이프를 잡고 뱅글뱅글 돌려가며 올라타기도 했다. 서로 먼저 올라타기 위해 최고 속도로 힘껏 돌려 잽싸게 올라타는 노련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매번 돌아가는 시간을 놓쳐 미끄러지기 일수인 친구도 있었다.
팔 힘이 좋아야만 가능한 멍키 바에서는 단연 내가 최고였다. 엄청난 피아노 연습으로 단련된 내 팔 힘은 팔씨름에서도 빛이 났지만, 사다리를 양 기둥에 얹어놓은 형태로 오직 팔 힘으로만 봉에서 봉으로 옮겨 가야 하기 때문에 힘이 없는 연약한 아이에겐 한 칸을 가기도 어려운 놀이였다. 난 처음에서 끝까지 단번에 갈 수 있었고 남자아이가 시합이라도 걸어오면 두 칸 정도는 기구의 이름에 걸맞게 원숭이처럼 날아다녔다.
내 큰딸의 놀이터는 아파트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였다. ‘본드걸’이라는 별명답게 데리고 간 첫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굳건히 집에 갈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이 붙여준 별명이다. 겁이 많은 아이가 울음이 많다고 한다. 자다가도 울고 먹다가도 울고 차를 타도 울고 울다 지쳐 자고 자다 또 울고.. 겁이 많아 놀이터에 가도 그냥 가만히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쳐다보는 게 아이의 놀이였다.
욕심이 많아서 울음이 많다고도 한다. 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울고 먹고 싶은데 못 먹어서 울고.. 그러다 어린아이 학습지를 시켜보았다. 누군가 학습에 대한 욕구불만이 있어서 그럴 수 있다기에 속는 셈 치고 시켜본 건데 우리 아이와 딱 맞아떨어졌다. 매일 학습지 오기만을 기다리고 ‘띵동’ 소리와 함께 현관문에 매달아 놓은 주머니에 학습지가 배달되면 부리나케 나가 얼른 학습지에 답을 채워 나가며 신나 했다.
빈 종이만 있으면 알 수 없는 글들을 꼬불꼬불 써 내려가서 부모님이 봐주시는 날이면 빈 종이를 많이 준비하시는 게 일이 되었다. 빈 종이와 연필 몇 자루만 쥐어주면 울보가 아니라 근사한 그림작가가 되니 큰아이에겐 빈 종이에 써 내려가는 알 수 없는 글들과 그림들을 그릴 수 있는 빈 종이가 아이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50이 된 나에게도 나만의 놀이터가 있다
아이들 세상에만 놀이터가 있는 건 아니다. 50이 된 나에게도 놀이터가 있다. 이른 아침은 아니지만 느지막이 예쁜 옷과 멋진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작고 조용한 낡고 오래된 곳에 가서 달달한 바닐라 라테를 한잔 마시며 전날의 일들을 정리하는 곳 바로 나의 일터이자 놀이터이다.
직장이 놀이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에 그보다는 미국에 왔으니 달러를 한번 벌어보자라는 생각이 먼저였나 암튼 예쁜 우리 언니의 지원으로 처음엔 내 집에서 아는 지인에게 한두 개 이쁜 옷을 오더 해 주는 차원이었다. 약간의 소문이 났는지 한인이 얼마 살지도 않은 이곳에서 나도 모르는 한인에게서 소개를 받았다며 한국에서 공수된 옷을 사기 위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남편은 연애 시절 대학을 다닐 때부터 직장 다니는 문제 제기를 끊임없이 했던 터라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더군다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침범하는 사생활 침해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더 이상 집에 사람들이 오게 할 수 없었다. 막내도 킨더가든에 들어가는 귀염을 토하는 동시에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긴 시기이기도 해서 일단 한인들이 모여있는 2층 건물의 이 층 한구석을 렌트하고 집에 있는 행거 두 개만을 들고 집에서 탈출했다.
이 층에 옷가게가 있다는 건 그냥 친한 사람들의 사랑방이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그때부터 나의 놀이터가 만들어진 시발점이 되었다. 오다가다 심심하면 들어와서 수다 떨고 그러다가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사 가지고 간다. 아무리 멋진 명품이라도 서양 사람 몸에 맞게 만들어진 옷들이라 동양사람 체격에 맞기는 쉽지 않아서 한국 사람 체격에 맞게 만들어진 바지며 티셔츠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지금은 좀 더 발전해서 1층에 작고 아담하게 조용한 위치에 자리 잡아서 아는 사람들만 올 수 있는 아지트가 되었다. 16년 전에는 한인이 지금처럼 많지 않은 때라 고깃집도 하나 중국집도 하나 마트도 하나만 있었지만, 지금은 Korean Way라는 중심거리가 생겼을 정도로 한인들의 위상이 커져 있다. 뚜레쥬르며 카페베네 등 한국에서도 알만한 가게들이 속속들이 오픈을 하고 고깃집도 여러 개 생겨 이제는 골라 먹는 재미도 생겼으니 한국의 로드 샵이라 하는 거리의 환하고 그럴듯한 옷가게들이 이곳에 오픈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놀이터는 그들에게도 놀이터가 되어 나와 함께 놀다 지치면 차 한잔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을 그럴듯한 환한 로드 샾들이 침범하진 못하는듯하다. 나의 느지막한 출근에 같이 출근하고 해 떨어지기 전에 엄마의 ‘얘야 어서 들어와 밥 먹어라’ 했던 우리 엄마네들의 추억 속으로 같이 퇴근한다.
인생에 나만의 놀이터가 하나쯤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그곳이 어떤 사람은 집 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나처럼 일터 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학교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집에서 여유롭게 사색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면 그곳이 놀이터이고 일하다가 잠깐의 여유로 커피 한잔을 음미하며 하늘을 보는 공간이 있다면 그 순간이 나의 놀이터일 것이다.
나만의 놀이터는 그야말로 내가 만드는 내 마음속의 놀이터인 셈이다. 오늘도 난 천천히 예쁜 옷을 입고 멋진 액세서리를 고르고 힐을 신는다. 나의 놀이터에 놀러 온 나의 멋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