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그까짓 게 뭔데?

#57ㅣ

by 멜랜Jina

생체나이가 실제나이보다 5살 아래로 나오곤 해서 건강체질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매일 하루에 최소한 대여섯 군데가 아프다 하고 어느 날은 정말 혓바닥까지 아프다는 말을 해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부르며, 아니 놀리며, 내가 더 건강하다며, 남편은 더욱 약해져만 갔고 나는 거기에 반비례해 더욱 강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살짝살짝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나의 갱년기에 맞추어 몸 어딘가가 삐걱거리는 신호를 받은 것이다. 먼저 발바닥에서 불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 첫발 디디기가 겁이 났고 급기야 집안에서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다녀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동갑 나이다 보니 여자가 남자보다 빨리 퇴화하는 점을 감안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데 발바닥에 이어 밤마다 왜 그리 온몸에 열이 갑자기 나는 건지.. 눈으로 확인되는 증상이니 도저히 갱년기를 속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노안은 정말 빨리 나에게 왔다. 자궁에 많은 혹들이 자리 잡았다 해서 몇 개 간단히 제거하는 수술 이후 후유증이랍시고 급격히 눈이 나빠졌다. 눈은 건강한 편인데 남들에 비해 노안이 빨리 와서 지금은 -2.0 이상의 도수 안경을 껴야만 보인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나마도 보이지 않아 두 개를 겹쳐 쓸 때도 있어서 놀림을 받기도 했다.


약간의 우울증세도 동반했다. 나는 워낙 젊었을 때부터 허무와 동반된 삶에 익숙한지라 갱년기로 인한 우울증세는 그다지 없었지만 주위를 보면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녀들이 모두 떠나버린 시점과 맞아떨어져서 외로움이 동반되어 갱년기의 우울증이 배가 된다. 거기에 남편에 대한 우울증도 가미된다. 아이들도 없으니 엄마로서 하는 일이 사라져 버리니 남편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아이들에게 쏟는 관심이 남편으로 바뀌어 사사건건 서로가 참견하게 되고 함께 하면 불만이 생기고 따로 하면 외로워지는 이중적 고통이 바로 이 시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갱년기가 꼭 내세워야 하고 위로받아야 하는 병인 것처럼,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갱년기 엄마도 사춘기 아이들처럼 호르몬의 영향으로 누구에게나 인정받아야 한다는 시각으로 보려 하지만 내 입장에선 굳이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생체현상이다 라고 치부하고 싶다. 내가 나이 듦으로 인한 증상이 꼭 나이를 증명하는 이슈로 자리 잡는 것도 싫거니와 그런 나의 모습을 측은히 생각해서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도 별로 반갑지 않다. 내 나이 듦을 왜 남들에게 위로받아야 하고 누가 그리 수선스러움을 반길 거라고...


생리를 한다는 것은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호르몬이 생기거나 바뀌는 일이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리현상이다. 요즘은 성장 속도가 빨라져 조기 성숙으로 조기 생리를 한다니 더 걱정이지만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자연히 아이를 늦게 출산하는 만큼 폐경기도 늦어져야 된다고 생각된다. 아마 하나님이 지금 시대에 사람을 창조하셨다면 분명 25세 정도에 첫 생리를 시작으로 적어도 60-70세 정도에 폐경이 되는 싸이클로 만드셨을 것이다. 40세쯤 첫아이를 낳고 곧바로 폐경이 되면 안 되니 말이다.

나이 50은 너무 젊다 갱년기라니... 말이 안 된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나이에


맞지 않은가? 첫 생리가 시작되는 나이가 평균 15세라치면 약 30년 이상을 하는 것인데 신의 영역이니 이 기간이 사람으로 아니 여자로 살아가는 자연적인 생리현상이라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생리 주간도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된다. 더군다나 요즘엔 100세 시대이니 인생의 반밖에 살지 않은 50세 정도에 폐경이 되고 갱년기가 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예전의 50이면 젊은 할머니 정도가 되었지만 지금은 천만의 말씀! 젊어도 너무 젊다.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나이이다. 폐경만 아니라면 갱년기로 인한 우울한다는 이상한 말도, 노안이라는 어이없는 현실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이다. 몸은 건강한데 노안이라니... 폐경이라니... 그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우울증이 급격히 생기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첫 생리를 시작하면 온 가족이 기뻐해 주었다. 여자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만큼 가족의 축하를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픔 또한 포함된 축하이다. 그와 같이 이제 우리는 폐경됨을 가족 모두 축하해야하고 축하 받아야 한다. 갱년기 엄마가 시시때때로 폭발하는 심리 현상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낸 무서운 히스테리병으로 가족끼리의 참음과 수고가 아니어야 한다. 오히려 갱년기는 생리가 시작되는 설렘처럼 생리가 끝남도 제2의 인생의 시작으로 설렘으로 받아드리게 될 것이다. 생리가 멈춘 꼭 1년 뒤를 폐경으로 인정하니 그날을 기념하는 게 어떨까? 폐경이란 여자로서의 기능이 멈춤을 뜻하는 게 아니다. 다만 생리가 멈춤으로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일임과 동시에 한 달에 한번 수고로움에서 벗어난다는 자유를 선사받은 것이다.


동시에 폐경됨을 축하받는다는 건 갱년기의 우울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선사 받음을 축복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생리에서의 아픔에서 벗어나고 아이들에게서 해방됨을 우리 모두가 축하해주면 그깟 발바닥이 무슨 대수며 그깟 노안이 무슨 대수겠는가? 발바닥에서 불이 나면 찬물로 식히면 되고 눈이 안 보이면 안경을 끼면 되고 우울하면 소리 질러 남에게 같이 하자 호소해 보면 되지 않을까?


다만 과학이 좀 더 발달이 되어 25세나 30세에 생리를 시작해 50년 정도 생리기간을 거쳐 75세나 80세에 폐경이 되게 하는 기막힌 신약을 개발 한다면 75세 이후에 갱년기가 시작되니 100세까지는 즐거운 제2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수명을 연장해 놓은 과학의 발달이 주는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 이면에 남겨진 인체와 뇌의 사이에 껴버린 몸의 건강 나이와 머리 노화의 거리감은 풀어야하는 숙제로 우리 각자의 고통으로 남겨졌다.


그냥 인간 수명이 길어졌다고 앉아서 좋아할 수만은 없다. 몸의 나이가 길어진 만큼 폐경 이후의 길어져버린 삶을 이른 폐경이니 이른 갱년기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우리 나이가 너무 젊다. 지금 당장 갱년기의 생리현상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갱년기의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 우울이나 그딴 거 집어치우고 기쁨으로 갱년기를 승화시켜보자. 70세에 아니 80세에 갱년기가 오는 시대를 꿈꾸며....



너무 황당한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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