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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Oct 01. 2018

제발 내게 마법을 보여줘, 알치나!

헨델 오페라 <알치나>, 비스바덴 국립극장


지휘 - 콘라드 융해넬 Konrad Junghänel
연출 - 잉고 케억호프 Ingo Kerkhof
무대디자인 - 안네 노이저 Anne Neuser
의상 - 슈테판 폰 베델 Stephan von Wedel
합창 지휘 - 알버트 호어네 Albert Horne
조명 - 랄프 바스 Ralf Baars
드라마투르기 - 카탸 레클레억 Katja Leclerc


알치나 -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 Alcina Cristina Pasaroiu
룻지에로 - 레나 벨키나 Ruggiero Lena Belkina
모르가나 - 쉬라 파초르닉 Morgana Shira Patchornik
브라다만테 - 마리온 엑슈타인 Bradamante Marion Eckstein
오론테 - 율리안 하버만 Oronte Julian Habermann
멜릿소 - 플로리안 퀴퍼스 Melisso Florian Küppers

헨델의 오페라 <알치나 Alcina>를 비스바덴 국립극장에서 관람했다. 개인적 인연으로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Rinaldo (1711)>와 <아마디지 Amadigi di Gaula (1715)>를 이미 무대에서 경험한 바 있어 기대가 됐다. 나의 사랑하는 작곡가 헨델, 오페라는 46개, 오라토리오도 23개나 남기셨다. 즉 앞으로 내가 공부할 레퍼토리는 무궁무진하다는 것. 이 기분을 설명하자면, 아직 가보지 못한 맛집 골목이 있는데, '어느 집 먼저 방문할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목록을 작성하는 기분이랄까.  <알치나>는 Tornami a vagheggiar라는 아리아가 유명하기에 제목은 익숙한데 실제로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독일에서 보통 웬만한 규모의 극장은  바로크나 현대 오페라 같은 다소 비주류인 장르를 꼭 시즌 레퍼토리 안에 배려한다. 이 프로덕션은 2016년에 초연하고 이번 시즌에 다시 공연되고 있다.

티저 동영상 / 2016년 초연 당시 출연진이다. 출처: 비스바덴 국립극장 홈페이지

이 오페라의 초연은 1735년 런던의 코벤트가든. 당시 런던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열풍이 끝물이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파리넬리를 앞세운 경쟁 오페라단인 '귀족 오페라단(Opera of the Nobility)'과의 경쟁도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헨델은 합창과 발레도 삽입하고 새로운 극장 (코벤트가든)에서 흥행 연출가 존 리치와도 손을 잡았다. 헤어날 수 없는 마력의 소유자 알치나.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 공연 후 잊혀 버렸고 20세기가 돼서야 부활하여 지금은 헨델의 오페라 중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올려지는 작품으로 꼽힌다.


배경은 알치나의 아름다운 섬. 이 섬에는 마법사 알치나와 그 여동생 모르가나가 살고 있다. 이들은 남자를 유혹해서 섬에 눌러 앉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로 변신시켜 버리는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여인들이다. 현재 알치나는 마법으로 기사 룻지에로를 사로잡았다. 그는 마법으로 인해 기억도 모두 잊고 사랑의 늪에 빠져있다. 이때 종적이 사라져 버린 룻지에로를 찾기 위해 브라다만테와 그의 충복 멜릿소가 등장한다. 그 옛날 여자의 몸으로 그 험한 여행을 하기 힘들었을 테니, 브라다만테는 자신의 오빠 리까르도로 변장한 상태. 한데 이번에는 모르가나가 연인인 오론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장한 브라다만테를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들의 복잡한 삼각, 사각.... 아니 5각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룻지에로를 맞는 알치나, 니콜로 델라바테 1550년 (출처: 위키페디아)

이런 비슷한 플롯은 바로크 오페라에 너무나 흔하다. 주인공 남자 역은 당시는 카스트라토들이 불렀고, 요새는 메조소프라노 혹은 카운터테너가 부른다. 아무튼 직업은 일반적으로 기사, 장군. 요새로 따지면 실장님, 대표님이라 불릴 수 있는 완벽남이다. 그리고 원래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도 꼭 마법사들이 반해서 기억삭제시키고 자기 곁에 둔다. 마치 유혹에 빠지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오. 그대의 사랑의 마법이 너무 강해 거역할 수가 없었소..라고 강변하는 것 같다. 자, 그리고 마법사가 등장한다는 것은 무대 위에서 현란한 마법 볼거리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지금 영화관에 가서 블럭버스터를 보며 느끼는 즐거움이 당시의 청중들에게는 이런 오페라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비스바덴 프로덕션에서 잉고 케억호프의 연출과 안네 노이저의 무대, 그리고 슈테판 폰 베델의 의상은 너무나 단조로웠다. 재작년인가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도 <알치나>를 했는데, Arte 방송에서 중계해주는 걸 우연히 보게 됐다. 그때 부분적으로만 봤지만 연출이 너무 좋아서 정말 재미있고 기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비스바덴에서 본 프로덕션은 기대에 비해서 너무 실망이었다.

https://youtu.be/RxUCCuB8Xu4


1막은 높다란 계단, 2막은 칠판 같은 벽, 3막은 앞서 그 벽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 게 다였고, 조명의 변화도 몇몇 순간들 빼고는 거의 없었다. 의상도 바로크 스타일인데 아주 심플하였다. (바로크는 항상 '화려하다'는 형용사가 연관검색어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연출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집중하고자 했는가 했는데, 그러기에는 두 메조소프라노의 역할, 하나는 바지 역할인 룻지에로, 또 하나는 극 중 남장여인인 브라다만테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가끔은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두 사람의 키 차이를 가지고 구분해야 했다. 원작에는 발레가 있지만, 역시 전혀 등장하지 않는 건 이해한다 치자. (심지어 비스바덴 국립발레단이랑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데도!) 하지만 주인공 알치나가 마법사이고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료인데도 연출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또 5 각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감정의 온갖 변화도 설명이 부족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공감이 많이 되지 않는다. 합창 조차 무대도 아닌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측면 2층 발코니 객석에 등장에서 오페라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에 등장하고는 끝. 심지어 공연이 마치고 무대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내가 내린 추론은 이렇다. 극장 측이 이 프로덕션에 돈을 투자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을 잊은 룻지에로에게 다가가는 브라다만테, 누가 누구? 출처: 비스바덴 국립극장 홈페이지

다만 가수들은 절창과 호연을 보여줬는데, 이는 순전히 바로크 오페라의 진행이 아리아로 이어지기에, 연출과는 별개로 가수의 개인적인 역량으로 그 순간들이 채워졌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특히 알치나 역의 루마니아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루이우는 극을 이끌어가는 타이틀 롤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녀가 부르는 Ah, mio cor!라는 긴 아리아에서 이 가수가 가진 성악적, 또 극적인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공연 전 프로필을 찾아봤더니 바로크 오페라 경력보다는 미미, 비올렛타, 데스데모나, 혹은 미카엘라 등으로 경력을 쌓아왔기에 어떻게 노래할지 궁금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이 날 밤 최고의 박수를 받아 마땅한 호연을 보여줬다. 또 모르가나를 노래한 이스라엘 소프라노 쉬라 파초르닉도 이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통통 튀는 역을 맡아 생기발랄한 매력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콘라트 융해넬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도 안정적이었고 섬세한 바로크 음악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한국에서 학교 오페라로 바로크 오페라를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었다. 현재는 많은 바로크 아리아들이 Arie antiche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이태리 가곡으로 분류되고 막상 극으로 접할 기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크 오페라는 목소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대부분 아리아로 이루어져 있다. 합창이 없는 오페라도 많다. 즉 많은 인원을 동원하지 않고도 올릴 수 있다. 학생일 때 바로크 아리아를 공부하면 좋은 점은 여백이 많기에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떠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낭만주의나 베리즈모 오페라에 비해 너무나 단순해 보이지만 이 단순한 멜로디를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아리아로 만들어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겠는가 라는 고민은 한 음악가의 인생에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 싶다. 낭만주의 이후 오페라를 공부하면 이미 작곡자가 많은 것을 악보에 요구해놓았고, 또 그에 걸맞은 발성이 있다. 그러면 많은 학생들이 그 소리를 추구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음악은 정답이 없는데, 가끔은 정답 아니면 오답으로만 나뉘어 버리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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